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 탑지기 올레의 이삿날
동화 인류학_안데르센
탑지기 올레의 이삿날
2024. 11. 6. 정혜숙
주제: 올레의 ‘큰 이삿날’에 대한 단상.
요즘에는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합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현대화되고 도시화된 우리 사회의 2년이라는 이사 주기는 1년에 한 번 이사를 했던 안데르센의 시대보다는 조금 나아진걸까요? 200년이 흐른 뒤에도 사정에 맞춰 옮겨 다녀야 하는 이사는 매번 힘이듭니다. 그리고 이사를 가면 많은 쓰레기가 남겨지거나 버려진다는 화자의 묘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통 우리는 이사갈 공간이 작아져서 혹은 낡아서 때로는 새 것을 사기 위해 버리기도 합니다. 올레는 이사를 사람들이 자질구레한 일상 용품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서로 집 바꾸기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사를 가면서 쓰레기 버리듯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슬픔, 걱정, 고통은 함께 그리고 그 집의 요정도 낡은 집에서 새 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합니다.
화자가 탑지기 올레를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올레는 마침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올레는 성탄절 후에 자신이 목격한 ‘폐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난주 강의 시간에 나왔던 안데르센이 주목하는 ‘폐허’는 <이삿날>에서도 발견됩니다. 올레는 쓰레기 수거 수레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버려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주웠습니다. 쓰레기 수거 수레에 모인 버려진 크리스마스 트리와 옆에 있던 숙녀용 장갑 한 짝 그리고 깨진 도자기 등 버려진 사물들은 올레의 상상속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사물들은 폐허 속에서 화려했던 과거의 어느날 축제나 성탄절에서 쓰였던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지위를 회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와 가치에 대해 다른 사물과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가 더 낫다고 여기는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올레는 세상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며 호젓하게 살지만 사물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의 마음속은 여전히 이것저것 따지고 신경쓰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레는 ‘이사’에 대한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은 ‘죽음이라는 큰 이삿날을 생각하라!’ 라는 구절과 함께 이어갑니다.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마차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올레. 하지만 죽음의 과정에서 마시게 되는 ‘망각’과 ‘기억’이라는 술은 양심과 죄책감을 깨우고 형벌과 재판의 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고합니다.
올레의 말에 따르면 양심과 죄책감은 삶이라는 은행에 저축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큰 이삿날에 죽음의 마차를 타고 가는 장엄한 여행에서 어떤 행위(대가)가 꺼내어지며 그때가 언제 일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올레가 말하는 ‘큰 이삿날’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죽음의 마차를 기다리며 온갖 재미와 고통, 기쁨과 슬픔, 욕망과 좌절, 오만과 겸손을 반복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세상에 영국 구두약을 요구했지만 그 요구를 좌절당하자 탑으로 은둔했던 올레. 무엇이 올레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집을 필요로 하게 했을까요? 누구에게나 화려한 한때가 있고 그것들로 멀어진 또는 버려진 잔재들을 보며 여전히 쓸모가 있음을 발견한 올레의 마음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희망을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