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미야자와 겐지(2)] 태양 마술
미야자와 겐지 소모임(2)/240807/강평
태양 마술
무엇이 더럽고 무엇이 나쁜가
분뇨통을 어깨에 메고 20분을 내려가서 보리밭에 국자로 푸는 일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다리를 짓누르는 무거움과 머리까지 아프게 하는 불쾌한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한숨부터 나오는 일이다. 눈앞에 파란 하늘이고, 노래하는 새고 뭐고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매일 몸에서 오줌, 똥이 나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분뇨가 있어야 밭의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 시켜준다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오줌, 똥은 내 일상과 분리될 수 없지만 위생이라는 이름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처리’된다. 덕분에 똥이 땅으로 가 식물의 영양분이 되어 다시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경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싫든 좋든, 인정하든 안하든 피하고 싶은 더러운 똥과 얻고 싶은 소중한 보리는 분뇨통을 맨 사람을 통해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하토브농업학교의 봄>은 분뇨 세례를 받은 보리밭이 목마른 아이가 물을 마시듯 분뇨를 빨아들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것이 유일한 길이니까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한다. 농업학교 학생 중 아베 도키오는 분뇨 작업을 하기 위한 집합 장소에서 새파란 하늘을 보고 가슴이 뛰고 나무, 풀, 새의 생기에 절로 웃음이 난다. 셔츠가 한 벌밖에 없고 난로와 멀리 떨어진 곳에 앉는 바람에 겨우내 추위에 떨 수밖에 없었지만 새싹 돋는 봄이 오면서 환한 웃음을 짓게 된다. 때가 되면 저절로 되는 ‘태양 마술’이다. 분뇨를 목마른 아이가 물 마시듯 빨아들이는 대지나, 봄이 와서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학생이나 모두 ‘태양 마술’이다. 자연이 베푸는 아낌없는 증여이다. 반면 태양 마술을 받고 있는 인간은 자기 입장에서 좋고 나쁜 것을 끊임없이 구분하려 한다.
보이는 것은 부분
<이기리스 해안>에 나오는 이기리스 해안은 해안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제 강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해안이라는 여러 증거가 있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건물 건축으로 스카이라인이 바뀌는 정도이지만, 장시간에 걸쳐 바다는 강이 되고, 산은 위치를 바꾸고, 바다는 육지가 되는 등 ‘지형’이 바뀐다.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니, 본 것만 믿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내가 볼 수 있는 시간과 장면은 극히 일부분인 셈이다. 인문세가 답사를 갔던 울산 반구대도 지금은 태화강 지류이지만 태화강 인근에서 발견된 지층 분석에 의하면 먼 옛날 바다였다고 한다. 또 연천 전곡리 선사 박물관 인근 재인폭포도 먼 옛날 대비 300미터 가량 폭포가 후진했다고 한다. <이기리스 해안>에는 해수면이 높아지는 장면이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 옛날의 하늘에서 끊임없이 구름이 흐르고 사라지는 동안 바다의 한 곳이 점점 얕아져 마침내 물 위로 얼굴을 내밀었고 그곳에 풀과 나무가 자랐습니다(204페이지)’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이후 그 풀과 나무가 우거지고 화산이 혀를 내밀고 다시 물이 덮이고 점토가 쌓여서 지금 보고 있는 강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보이는 것은 있는 것의 극히 일부분이다.
<이기리스 해안>에는 강에서 수영하는 학생들 주위로 쇠막대기로 돌을 뒤집는 등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구조대원이 등장한다. 학생들은 다음 날도 그 강에 가서 벌써 강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더 깊은 상류로 더 지칠 때까지 수영을 한다.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고, 그런 경우 대처가 어렵다는 것을 잊는다.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만류하는 구조대원의 지도를 피하기 위해서 숨으면서까지 스릴을 즐긴다. 이때 구조대원의 이상했던 행동이 정체를 드러낸다. 그 구조대원은 수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다른 용무가 있는 척 위험한 상황을 대비하고 대처하기 위해 조용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쇠꼬챙이로 큰 돌을 뒤적이던 이상한 행동은 구조 인원이 부족한 가운데 돌로 부표라도 만들기 위함으로 밝혀졌다. 이때 인솔자인던 화자는 ‘바늘로 찔리는 느낌’, ‘태양의 하얀 햇살에 야단을 맞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보이는 것은 ‘지금’의 강이고, 드러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구조대원을 속으로는 우습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사실은 그 강은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의 강이 되었고, 구조대원은 ‘알고 보니’ 사려 싶은 배려를 하고 있었다. 화자는 ‘경솔함’을 이야기한다. 경솔함이란 사건의 일부만을 보면서, 자기 입장에서 상황을 재단하는 일이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를 읽으면서, 1권에서는 내가 사냥감, 요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번 편에서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일부이고, 이를 경솔하게 말할 수는 없다는 윤리가 떠올랐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가 이솝우화처럼 교훈이 담긴 교과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야말로 ‘바늘로 찔리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슴이 뜨끔해지는 이야기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