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 행운의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
행운의 안데르센
2024.11.20. 최수정
주제문 : 자기 그림자를 뛰어넘었다
『안데르센 동화전집』 168개의 동화 중 163번째 이야기 「행운의 피어」는 ‘행운의 안데르센’이라 읽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도시 부르주아 계급인 상인의 집에 세 들어 살며 자기 주변 신분들과 동등한 사람, 또는 귀족(피어)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행운의 피어’라는 한 예술가의 삶은 그 자체로 안데르센의 삶이다.
유리 벽으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부 공간은 빛에 의해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것처럼 보여 부(富)를 과시한다. 그 부유한 저택에서 똑같은 시간에 아이가 둘 태어나는데 하나는 눈부신 빛 속에서, 다른 하나는 아주 높은 다락방에서 태어난다. 같은 날 같은 시간 태어난 두 아이는 빛과 그림자의 쌍둥이 같다. ‘피어’라는 이름을 가진 다락방 소년은 눈이 어두워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할머니의 미신을 믿고 자란다. 그 믿음 덕분인지 피어에게는 언제나 행운이 따라다닌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가 성악가가 되었다가 언어와 과학을 배우며 배우가 인생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언제나 더 높이 올라가는 예술가를 꿈꾸던 피어는 ‘각본도 쓰고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천재적 예술가로 승격되던 완벽한 순간 무대 위에서 심장의 동맥이 파열되어 죽는다. ‘지상에서의 모든 임무를 완수한 채’.
안데르센 동화에 연극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행운의 피어」도 주인공이 극을 감상하거나 직접 무대 공연을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안데르센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극이란 삶의 각 구간에서 주어진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안데르센이 이야기 속에서 연출하는 연극은 유리성으로 만들어진 ‘마치 완벽한 동화의 나라’처럼 보인다. 연극이라는 투명한 유리로 자신의 배역을 비춰보는 것 같다.
「그림 카드」에서 ‘가슴에 유리가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 카드 왕과 여왕(1160)의 몸을 사람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이 스페이드 왕과 여왕의 가슴에도 유리가 박혀 있지만 아무도 그 유리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하는 일이 잘못됐는지를 보거나 꾸짖을 만한 이유를 찾을 때만 들여다본다.(1161) 안데르센에게 ‘유리’는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장치인데, 그것이 어떤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언제나 ‘자기 그림자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피어(안데르센)는 귀족의 집에 초대 받은 후 ‘행운의 램프’, 알라딘을 떠올린다. ‘피어는 알라딘처럼 행운아였다. 그 행운이 그의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1242) 피어는 그것을 극으로 형상화했다. 오페라 「알라딘」이 탄생했다. “사람들은 그의 역할 속에서 살아 있고 숨 쉬는 듯이 보였던 젊은이가 그보다 더 강렬하게 삶을 살았으며 오페라가 끝난 후에도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영혼에서 분출되어 나온 강력한 작품 속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1243)
피어는 언젠가 할머니가 한 말을 떠올린다. “그 애(알라딘)는 피어와 다를 바가 없어. 다락방에서 스토브와 서랍장 사이를 뛰어다니며 노는 피어와 말이야. 그의 영혼은 피어와 다를 바가 없어.”(1245)
무대 위에서 알라딘의 독백 노래가 아리아로 울려 퍼지고 알라딘이 정령들이 감싸고 있는 행운의 램프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을 때 정점에 달했다. 남작 부인의 딸이 던진 화환이 불길이 되어 피어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는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행운의 피어는 그렇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