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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작은 것이 아름답다] 나의 손으로 하는 일_내 손에 활기를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11-21 15:47
조회
52

기술인류학 / 나의 손으로 하는 일 / 2024.11.21. / 진진

 

내 손에 활기를

내 손으로 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러다 문득 내 손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에 참 그럴 만한 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손으로 뭔가를 하고는 있지만, 잘 들여다보니 그 일들이 너무 단조롭고 단편적이어서 손의 입장에서는 매일이 무척이나 지루한 시간일 것 같았다. 검지로 마우스를 클릭하고, 키보드 위에서 자판을 누르고, 세탁기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고 밀어 올리는 일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나는 대충 뭔가를 누르는 식으로 많은 일들을 처리한다. 이보다 손을 좀 더 다채롭게 움직이는 일이라고 해야 고작 숟가락을 들고 젓가락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몸을 씻고, 펜을 잡고 책에 줄을 긋고 뭔가를 쓰는 정도다.

이전에는 어땠을까를 떠올려 보았다. 아이들이 어려 옷에 여기저기 얼룩을 묻히고 다녔을 때는 손으로 빨래도 하고, 건조기가 없을 때는 빨래도 널고, 양말도 깁고, 다림질도 했다. 요리를 할 때도 재료를 다듬으려면 손을 다양한 방식으로 써야 했다. 그런데, 요즘엔 가사일을 도와주는 기계들이 다양하게 잘도 나오고 마트에 가면 깨끗이 손질된 식재료들이 말끔히 포장돼 진열되어 있어 그럴 필요가 없다. 계산을 할 때도 이전에는 돈을 세어 내고 거스름돈을 챙겨 받던 것이, 이제는 카드를 기계에 넣거나 핸드폰을 터치하면 된다. 코로나 이후로는 장보기도 손가락 터치로 해결하고, 물건을 들고 나를 일도 없어졌다. 어제 저녁에는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거지를 하면서도 나는 식기세척기를 들여 놓으면 어떨까 고민하며 손과 몸을 덜 쓸 방법만 궁리했다.

몇 달 전 집에 로봇청소기를 한 들였다. 물걸레 청소까지 해주는 그 녀석은 걸레까지 알아서 빨고 말려준다. 덕분에 나는 걸레를 손에 쥘 일이 없어졌다. 핸드폰으로 연동된 앱을 터치하고, 로봇청소기에 깨끗한 물을 채워 넣고 더러워진 물을 가끔 비우기만 하면 된다. 세상 참 편해지고 좋아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심심할까 싶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들의 손가락은 참 가늘고 매끄럽다. 내가 매번 고생 한번 안 한 손이라고 놀리는데, 그렇게 생긴 손은 심심하고 지루한 손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혼 전에는 이상형이 손이 예쁜 남자라고 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난 참 지루한 사람을 좋아했구나 싶기도 하다.

나의 손으로 하는 일에 대해 짧은 글을 쓰며 손을 위해서라도 편리한 기계들을 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이 다채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그로부터 내 신체가 세상의 많은 것들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제는 아무리 찾아도 고무장갑이 눈에 안 보여 설거지를 맨손으로 하게 됐다. 맨손에 수세미를 들고 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고 헹궈낼 때의 느낌은 고무장갑을 낄 때와는 또 달랐다. 그릇에 붙어 있는 음식물 찌꺼기, 미끌거리는 세제와 물의 온도, 그릇 종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재질의 차이들, 뽀드득 거리는 느낌도 그릇마다 달랐다. 손을 보호하기 위해 고무장갑을 낄 게 아니라 손의 활기를 위해 고무장갑이라도 한번쯤 벗어보기를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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