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
한강, 『채식주의자』 감상문/최옥현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
『채식주의자』에 영혜의 시점은 없다. 그녀의 남편과 언니과 형부의 시점에서 조각조각으로 만들어진 영혜를 우리는 만난다. 영혜의 몸짓은 광합성하는 동물 되기, 나무 되기, 인간의 가치를 내려놓은 그 무엇 되기로 보인다. 세속 가치를 아무 의심 없이 몸에 새겨 사는 일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훼손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스스로에게 생경한 울부짖음, 괴성, 신음을 만난다.
1. 광합성하는 동물에서 나무로!
영혜는 자신의 꿈 이미지에 집중한다. 그녀에게 그녀에 대한 가족의 요구는 작동하지 않는다. 와이프로서 사회적 역할 수행 요구, 고기를 먹으라는 사회적 명령, 생명을 연명하라는 병원 권력의 요구가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움벨트를 가진 한 마리 짐승처럼 존재한다. 동물 신체의 훼손에는 무감각하면서, 자신의 입에 들어온 미세한 칼조각에는 펄펄 뛰는 인간의 모습에서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녀는 공격성을 갖지 않은, 무해한 인간이 되길 꿈꾸었다. 그래서 젖가슴을 내놓는다. 손과 발과 머리와 다리 등 인간 신체의 모든 부분은 타인을 공격할 수 있지만 오직 젖가슴만이 생명을 기른다. 그녀는 젖가슴을 내놓은 채 햇빛을 쐰다. 그러나 그녀는 포식자의 공격 때문에 상처 입고 고통 속에 있는 새를 죽인다. 젖가슴을 내놓고 엄마 새의 마음으로 상처 입은 새의 고통을 단축시키기 위해 새의 목을 누른다.
형부의 예술 퍼포먼스는 그녀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의 집과 가정에서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면 자신의 몸이 꽃과 잎과 줄기로 변신하는 순간 그녀는 그녀가 누운 바닥의 따뜻함을 느낀다. 그리고 생명의 활기가 차올라 음부가 촉촉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일회성 이벤트일 뿐이었다.
서울 종합병원의 폐쇄병동에서 축성산의 정신병원으로 옮기면서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그녀의 언니가 정신병원의 쇠창살을 보면서 동생을 가두는 죄책감을 느꼈다면, 영혜에게는 쇠창살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쇠창살 사이로 느티나무가 보인다. 느티나무처럼 자신도 물구나무를 서서 머리와 손으로 뿌리를 내리고 생식기에서 꽃이 피길 꿈꾼다. 이제 그녀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가 없다. 오직 물과 햇볕만 있으면 된다.
2. 자살 충동과 생경한 동물적인 소리
영혜의 남편은 특이한 사건에 대응할 어떤 내성도 갖고 있지 않은, 세속 일반의 평범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영혜를 와이프로 선택한 것도 그녀의 평범성과 자신을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성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는 영혜가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으로부터 멀어지자 바로 이혼을 택한다.
하지만 영혜, 영혜의 언니, 영혜의 형부는 모두 자살 충동을 한 번씩 느낀다. 영혜는 가족들이 폭력적으로 자신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하자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살 시도를 한다. 영혜의 형부는 긴 공백기의 시작 전에 했던 마지막 비디오 작품을 마무리하고 자살 충동을 느꼈다. 마른 빨래를 쥐어짜듯 마지막 작품을 끝내고 그는 다른 작품을 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고 삶에 넌더리가 났고 죽고 싶었다. 영혜의 언니는 집에 책임감이 없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 지치고 늘 집안의 장녀로서 엄마로서의 책임감으로 살아오느라 지쳤다. 남편이 그녀에게 잠깐만 참으라며 섹스를 강요했을 때 그녀의 인내력은 거기에서 무너졌다. 그녀는 아이의 모빌 장난감에 달린 끈을 가지고 산에 올라가 죽으려고 한다.
인간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영혜는 늘 동물 소리를 내고 있다. 영혜의 언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영혜에게 진정제를 놓으려는 간호사의 손길을 막으면서 자신에게도 생경한 ‘귀를 찢는 울부짖음’의 소리를 낸다. 영혜의 형부는 자신의 예술 퍼포먼스에서 한 번도 내어보지 못한 ‘짐승의 헐떡이는 소리, 괴성 같은 신음’ 소리를 낸다. 자신이 헤어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고통은 자살을 불러온다. 이 작품에는 자신을 죽이는 자살 충동의 반대편에 한 번도 내어보지 못한 동물의 소리가 위치해 있다.
3. 나무불꽃
영혜 엉덩이의 몽고 반점을 중심으로 그려나가는 꽃은 푸른 꽃이다. 나무 불꽃의 불꽃은 빨갛게 활활 타는 것이 아니다. 활활 태워 재가 되는 불길이 아니다. 활활 태우는 것은 생명의 불길이 아니다. 나무 불꽃은 푸른 생명의 불꽃이다. 나무의 푸른 불길은 영혜 언니의 죽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곳의 모든 나무는 영혜 언니의 목숨을 앗아갈 끈이 묶이는 것을 거부하였다. 푸른 불길은 생명의 불길이고 생식기에 꽃을 피우는 불길이다.
4. 사회적이고 공적인 가치를 벗은 몸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같은 책,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