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까마귀 농부의 동화 읽기(마지막)] 겨울 축제 이야기
겨울 축제 이야기
현대 기독교 문화권에서 가장 큰 겨울 축제는 아마도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새 명절이 다 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길거리 건물 벽에 대형 트리가 곧 설치될 예정으로 안다. 예기치 않게 강한 바람이 며칠째 불고 있어서 야외 설치 작업반의 사기를 꺾고 있을 것 같다. 바람의 영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아닐까? 날씨의 신이 노하셨나? 동화 인류 연구회에서 상반기에 푹 빠져 있었던 애니미즘의 관점이 슬그머니 머리를 든다. 만물에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숭배해 온 인류의 공동 종교인 애니미즘의 관점으로 현대의 겨울 축제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에 알맞은 시기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 파티와 장식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전형적인 것들이 있다. 크리스마스트리, 선물, 파티, 케이크, 행사 등등 떠올리기만 해도 아이들과 젊은 연인들의 마음은 들뜨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행해지는 활동과 사용되는 사물들은 기독교 이전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애니미즘적 숭배 의식의 잔존물이다.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원시 문화』에서 인류 공통의 종교적 예식 행위의 하나로 희생제의를 꼽았다. 희생제의란, 신격에게 선물을 바치는 의식이다. 다양한 공물을 바칠 수 있겠지만 전형적인 선물은 음식 선물이다. 예식은 제단에 음식을 차리는 행위와, 바쳐진 음식을 모두 함께 먹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희생제의는 사실상 항상 잔치가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모든 잔치는 근본적으로 음식을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며, 신과 함께 먹는 일이다.
희생제의는 잔치의 기원일 뿐 아니라 축제의 기원이기도 하다. 지역 축제만 해도 먹을거리, 구경거리, 즐길 거리로 한 주간이 흥청망청 지나간다. 선사 시대의 희생제의와 고대의 종교적 축전들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나와 집단으로 비일상적인 활동을 벌인다. 사제는 요새로 따지면 퍼포먼스 예술가에 해당할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애니미즘적 희생제의에서 유래한 축제이자 잔치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자. 나무를 세우고 장식물을 주렁주렁 매다는 관습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타일러에 따르면, 5세기에 기독교 성인들에게 치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금과 은으로 눈이나 발 등을 만들어 바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관습이 사회 하층으로 내려가면서 모조 은으로 바뀌었다지만 반짝인다는 속성은 남아 있다. 16세기 초에는 교회에서 “시길라리아”라는 작은 밀랍상이나 도자기 인형을 바쳤다. 그것은 고대 로마의 “오스킬라”와 같은 말인데, 신격을 달래거나 속죄하기 위해 나무에 걸어두던 작은 형상들을 뜻한다. 크리스마스트리의 오너먼트의 기원은 나무에 인형(effigy)을 매달아 사람, 동물, 신체 등의 제물을 대체한 관습의 흔적이다. 모형은 반죽으로 훼손과 섭취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트리에 매다는 진저맨 생강과자를 떠올리게 된다.
봉헌물
오스킬라
먹을거리 이야기로 넘어가서, 크리스마스 파티 음식으로는 케이크를 빼놓을 수 없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꼭 챙기는 케이크는 희생제의에 바쳐진 “음식 선물”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희생제물을 대체할 반죽 모형이라고 볼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멧돼지 모양의 케이크를 굽는다고 한다. 이것은 북유럽 종교의 프레이 신에게 멧돼지를 바치던 종교적 의식이 살아 남은 것이다. 프레이는 바다 신의 아들이며 다산의 여신의 쌍둥이 오빠다. 황금 멧돼지 굴린부르스를 타고 다니며, 조그맣게 접을 수 있는 배를 휴대한다. 프레이는 비와 햇빛을 다스리며 풍요를 주는 날씨의 신이다. 스웨덴만의 관습은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타일러 당시에도 동일한 예식이 대대로 지켜지고 있어서, “주님을 찬미하며, 멧돼지의 머리를 바칩니다.(Caput apri defero, Reddens laudes Domino.)”라는 캐롤을 부르는 가운데 멧돼지 머리를 크리스마스 잔칫상으로 옮긴다고 한다. 제사상에 돼지 머리를 올리는 한국의 관습과 일치하는 것이 흥미로운 한편, 만약에 크리스마스 파티상에 돼지 머리가 올라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무에 공물을 매단다는 것은 자연에서 신성을 감지하고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는 의미이다. 자크 브로스에 의하면, 신화적 사고에서 자연은 식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식물은 인류에게 자연의 대표물인 것이다. 자연물에 제물을 바치는 관습으로 보헤미아인들이 물 속에 제물을 넣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에서 접시마다 한 숟가락씩을 따로 덜어 두었다가, 식사 후 정해진 문구를 읊으면서 우물에 음식을 던진다고 한다. 기도 문구는 다음과 같다.
가장이 당신께 인사드립니다.
당신께 간청합니다.
작은 샘이여, 우리의 율 잔치를 함께하소서,
오직 우리에게 물을 가득 주소서.
땅이 가뭄으로 괴로움을 겪을 때
당신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 가뭄을 쫓아내소서.
“율”이란 게르만족의 겨울 축제의 이름이다. 12월에서 1월 사이에 지내는 축제인데, 그리스도교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를 지칭하기도 한다. 작은 샘물로 가족과 가축들의 목숨을 의탁하고 있는 농가에서 온가족이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캄캄한 밤 등불을 켜고 우물 앞에서 기원하는 장면이 아름답고 성스럽게 느껴진다.
자연물로서 불에 바치는 희생제의도 있다.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모닥불 곁에서 이루어진 원시적 태양 축제로 여겨진다. “율 로그”라고 부르는 크리스마스 장작이 유럽인들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온다. 독일의 “바움쿠헨”이라는 크리스마스 음식은 크리스마스 장작의 나이테 모양을 살려 구운 케이크이다. 산타 할아버지의 통로인 굴뚝과 양말이 걸린 벽난로 역시 불 숭배의 흔적이다.
지금까지 축제와 파티 일반이 원시 희생제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했고, 아울러 크리스마스트리 장식과 파티 음식이 희생제물의 흔적이라고 소개했다. 끝으로 겨울 축제의 계절적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겨울 축제
겨울 축제의 의미 탐구는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 제전에 대한 설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크 브로스는 인류의 거의 모든 종교에서 신성한 나무에 올리는 제의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수목 숭배라는 주제로 인류의 종교를 두루 살펴보는 작업을 해왔다. 인류의 무의식에서 나무는 자연적인 동시에 초자연적이고, 물질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우주를 지배하는 수직의 축으로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기둥이다. 인류는 우주목이 인간의 삶터 아래 깊고 깊은 땅밑과 하늘 위 가장 높은 곳을 연결하는 통로라고 상상했다. 세상의 수목 숭배는 우주목이라는 원형적 사유를 공유한다. 크리스마스에 마을과 집에 나무를 세우는 행위는 우주목을 세우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둘둘 감는 덩굴 모양 장식을 기억하시는지? 요새는 리본이나 꼬마전구의 전선이 덩굴 모양 장식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덩굴 식물은 수목과 초본의 중간적인 존재인 담쟁이 덩굴로서 디오니소스 신의 나무이다. 원뿔형으로 우뚝 선 상록수가 제우스적인 중심 질서를 표상한다면, 덩굴은 그 질서를 휘감고 올라가며 공존하는 카오스를 상징한다.
고대 아테네의 겨울 축제들은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졌다. 12월 경작이 종료된 들판에서 시작해서 겨울 내내 이어져 봄의 제전 직전인 2월까지 여러 형태의 디오니소스 제전이 잇달아 벌어진다. 왜일까? 디오니소스는 식물의 피에 해당하는 수액의 신으로 태어났다. 식물의 수액은 겨울이 오면 수액은 공중의 가지를 떠나 밑동이 있는 땅 아래 깊숙한 곳으로 모여서 머물러 있다가 봄이 되어 꽃이 필 때 온 나무에 물을 댄다. 나무의 겨울잠이라 할 만한 계절성 죽음으로부터 부활에 이르는 주기적인 순환에 따라 수액은 움직인다.
겨울 축제는 죽은 자들의 세계 속에 생명의 근원을 잘 보존했다가 봄에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끌어 올리는 힘을 가진 제의다. 솟구치는 생명력은 나무를 휘감아 오르는 덩굴식물의 모습으로 표현되며 이것은 신화 속에서 나무를 칭칭 감은 뱀의 역할과 동등하다. 덩굴에 달린 담쟁이 잎사귀들에서 나무 줄기를 힘차게 달려 올라가는 말의 발굽 자국을 연상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씨앗이나 나무와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이나 계절성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어둠의 시기를 견뎌낸 소생을 기원하며 담쟁이, 뱀, 말을 상징적 주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디오니소스는 살아있는 나무의 껍질의 신이기도 하다. 겉보기에 말라 죽은 듯한 껍질 아래에 생동하는 생명이 있다는 사유는, 제우스의 넓적다리, 강보, 바구니 속에 담긴 채로 자신을 받아줄 곳을 찾아 여행했던 어린 디오니소스 신의 서사를 담고 있다. 강보에 싸인 아기 이미지에서 우리는 다시 크리스마스로 돌아오게 된다. 여행 중에 태어나 나무로 된 말구유에 눕혀진 고요한 밤의 아기는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새벽, 한겨울에 전망하는 봄,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부활하는 생명의 힘을 표상한다.
이상으로 애니미즘적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탐구해 보았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흥미로운 부분이 한 가지라도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참고도서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의『원시 문화(2) 』(아카넷 2018) 중에서 18장 “의식과 예식”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이학사 2016) 중에서 제4장 “마법의 수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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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과 감사의 축제 시즌이 다가오고 있나 봅니다. 유리샘은 올 한해 공부했던 애니미즘과 나무신화를 다시 떠올리며 한 해를 마감하는 의식을 치르고 계시네요. 애니미즘의 자취로 남아있는 크리스마스 나무 이야기로 저도 다시 한번 만물에 담긴 신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