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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생각>에서는 만물이 하나임을 통찰하는 오강남 선생님의 ‘아하’ 체험을 매월 게재합니다. 비교종교학자이신 선생님께서는 종교란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고 의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의 연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하’ 체험이 가능하도록 깊은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요. 오강남 선생님은 캐나자 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로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의, 강연을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저서로는 『예수는 없다』,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세계 종교 둘러보기』, 『종교란 무엇인가』,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등이 있습니다.

속담으로 보는 세상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11-30 00:40
조회
49

 

지도자의 자질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苛政猛於虎〕>


 


오강남 선생님(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


기원전 6세기에 중국의 노자가 썼다는 <도덕경> 17장에 보면 정치 지도자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 겨우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송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 “내성외왕(內聖外王)”, 곧 속으로 성인 같은 자질을 갖추어야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훌륭한 왕이 된다는 도가(道家) 특유의 정치철학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밑에서부터 한번 생각해 보자. 최하질의 지도자, 즉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지도자는 스스로 도덕성을 상실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 정의니 공정이니 인도주의니 하고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믿지도 않고, 부산하게 조석으로 법령·훈령을 내려도 사람들이 콧방귀를 뀔 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불신 사회, 혼동과 혼란의 사회가 있을 뿐이다.

 

그 다음 유형의 지도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법치주의(法治主義) 지도자이다. 법과 형벌로 다스려 백성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지도자들, 진시황제나 히틀러, 비록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는 독재형 정치 지도자들이다. “데려가서 맛을 좀 보여 주라.”는 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유형이다. 공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런 가혹한 정치 지도자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이 사람들이 친근감을 갖고 찬양하는 지도자들이다. 이른바 덕치주의(德治主義) 지도자다.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왕들이 지향하던 지도자 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이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도덕경>에 의하면 이런 덕치주의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지도자도 최상의 지도자는 못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칭송하고 좋아한다는 자체가 벌써 그 지도자를 의식하고 산다는 뜻이다. 사람이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든지, 자식이 어머니의 사랑을 의식하지 않고 지낸다든지, 무엇이나 너무 크고 자연스러운 것은 우리의 일상적 감지 대상 밖이다.

 

그뿐 아니라 신발이나 안경이 꼭 맞으면 내 몸의 일부처럼 되어 별도로 의식되지 않는다. 의식된다는 것은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불완전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최상의 지도자는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마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지도자, 백성들의 필요에 따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이슬처럼 다스리는 이른바 무위자연의 다스림, ‘가만둠의 다스림을 실천하는 지도자, 그래서 뭐든지 잘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하게 하는 지도자라는 것이다. 


장자라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노자에게 명왕(明王)의 다스림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요즘 우리가 쓰는 말로 바꾸어,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떠받드는 강력한 지도자, 민첩하고, 박력 있고, 두뇌 회전이 잘되고, 사물의 앞뒤를 훤히 뚫어 보고, 때에 따라 정의니 평화니 하는 말도 섞어 쓸 줄 알고, 적절히 자기 선전에도 신경을 쓰는 그런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냐 하는 질문에 노자는 이런 지도자는 잔재주를 부리면서 부산하게 설치느라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정치 기술자나 정치꾼일 뿐이지 결코 참된 지도자, 명왕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런 지도자는 제 꾀에 넘어지고, 자기 방귀에 자기가 놀라는 사람,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도가사상에 의하면, 결국 지도자가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은 한마디로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 무명’(無名),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난 무기’(無己), 자기의 공로를 의식하지 않는 무공’(無功)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다스림을 영적 정치’(spiritual politics)라 하고 이런 지도자적 자질을 변화형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라 하는 서양 학자도 있기는 하지만, 오늘 같은 각박한 정치 현실에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모두 잠꼬대 같은 일이 아닌가? 도대체 지금 이런 지도자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생각해보게 되고 그리워지는 지도자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 1

  • 2024-12-02 09:24

    자기 삶을 하나의 정치 영역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내 인생의 어떤 주군이 될 것인가? 역시 마지막, 내가 나를 다스린다는 생각조차 없는 상태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품은 도리를 따르고, 칭찬과 원망에도 흔들림없이 매일을 자연스럽게 살기. 그러나, 그 전에 일단은 덕으로 나를 돌보고 다스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없심여김’을 받는 지도자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 냉소하고 비웃게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아찔한 지도자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