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인류학
[길가메시 서사시] 두려움이 고개를 들 때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신체를 쓰고 생각하면서 그 사이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고통과 두려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어떤 인간도 이 진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본다. 서사시는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의 용맹함과 현명함을 찬양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칭송받을 정도로 훌륭한 왕은 아니었다. 오히려 포악한 군주에 가까워 참다못한 백성들이 신들에게 일러바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달라지기까지 큰 공을 세운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를 위해] 엿새 낮[과 이레 밤을 통곡했소]
[내가 그의 시신을 매장하지 않자]
결국 [그의 콧구멍에서 구더기가 나왔소]
그러자 [나 역시 죽을까 봐] 겁났소.
[점점 죽음이 두려워졌고 그래서 야생을 방랑하오.]
욕망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감당해야 할 타격, 확실하지 않은 그것을 미리부터 상상하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는 동안 이 고뇌를 반복한다. 고뇌하지 않기 위해 욕망하지 않으면 될까? 아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는 욕망과 같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길가메시는 영생을 꿈꾸었다. 불로초를 얻기 위한 그의 목숨을 건 고군분투는 성공으로 끝나는 것 같았지만 허무하게 뱀에게 불로초를 빼앗기고 만다. 그다음 길가메시의 선택은 자포자기가 아니라는 것이 감동적이다. 자신이 그간 살아온 의미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구한다. 두려움은 그를 끝까지 걷게 했고 마침내 왕으로서의 모습이 완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내 안에 두려움은 하루에도 여러 번 고개를 든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일은 꼭 무용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