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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관계를 소유한다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12-01 17:52
조회
78

 

2024.12.1. 최수정

 

관계를 소유한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분법으로 나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 위와 아래, 좋은 것과 나쁜 것, 삶과 죽음 등. 이분법적 사고체계는 세계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며 세계 속 인간의 위치를 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고방법이었다. 그러나 물론 이로 인해 인간이 만든 질서 밖에 있는 혼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은 질서 속에 언제나 혼돈이 함께 있음을 의식하기 위해 야생의 사고를 통한 신화를 만들고 전승하며 이를 기억했다.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에서 보듯 인간은 지속적으로 이분법적 사고체계에 의해 일시적으로 배제된 사고 저편에 있는 대칭성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초의 이분법을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쪼개 모든 사물에 빈틈없는 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이분법 사고에 의해 밀쳐두었던 세계가 질서 바깥에 있다는 사실은 점점 잊혔다. 인간의 편의에 따라 절단한 사고체계에 어느새 너무 익숙해져 세계를 단순한 인과관계로만 바라보는 것이 당연해졌다. 견고하게 분리된 관계 너머를 보지 못하고 사고의 한계에 갇혔다.

 

마르셀 모스의 몸 테크닉에 의하면 문화는 인간의 총체적 신체와 같았다. 한 사회의 행동 제약과 규칙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이라고 생각했던 감정들과 표정들도 사회제도에 의해 규정되었다. 하나의 문화에 속한 우리는 문화의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각 문화에 따라 존재하는 사물을 각기 다른 양식으로 파악한다. 지배적 문화의 관점에 따라 사물과의 상관관계가 변하고 그에 따라 개인의 주관성도 확립된다.

고립되고 안정되어 보이는 이런 문화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 자기 문화의 관점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답을 브로니스라브 말리노브스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을 통해 이야기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서 진행되는 쿨라는 해외, 바다 너머 다른 섬으로 향한다. 선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기 위해서 떠나는 위험한 항해다.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를 여행을 위해 목숨을 건 항해를 떠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관계다.

쿨라의 관계에서 팔찌(음왈리mwali)는 서에서 동으로, 조개목걸이(술라바soulava)는 동에서 서로 순환한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서로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운동 속에 그들이 소중하다는 어떤 것이 있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은 쿨라의 범주 안에서 인격적 유대를 만든다. 팔찌와 목걸이를 통해 자기를 확장해서 바다 건너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쿨라를 통해 얻는 것은 어떤 상품의 가치가 아니라 명성이다. 쿨라가 돌면 돌수록 쿨라에는 그것을 잠깐 소유했던 사람들의 사회적 명성이 위대해진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는 쿨라의 팔찌와 목걸이는 그것을 소유했던 사람들을 대신해 명예와 위신을 전달하기 위해 서로를 향한다.

내 손을 떠난 팔찌와 목걸이는 이야기를 싣고 나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나를 떠나간다. 이것은 물건에 내 영을 실어 보내는 애니미즘적 의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일부가 나를 떠나 바다 너머 멀리까지 가서 다채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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