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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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기행문] 동물원 안과 밖
동물원 답사기/최옥현
동물원 안과 밖
어른들과 함께 동물원에 갔다! 인문공간세종 화요인류학팀의 동물원 답사에 따라나섰기 때문이다. 연아 선생님의 딸인 바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른이었다. 어른들과 동물원은 처음이다. 어른들끼리 모여 미술관이나 영화관은 가면서 왜 동물원에 갈 생각은 한 번도 못해 보았을까? 동물원은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겸 놀이겸 가는 곳이었다. 자식들 없이 홀가분하게 동물원에 온 나는 열심히 동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동물원에 간 우리는 동물들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동물원 폐지론자가 되고,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안타까워 그들에게 어떤 연유로 동물원에 살게 되었는지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과연 동물원 바깥에는 동물들의 파라다이스가 존재할까? 동물원 바깥은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동물들의 생존 공간은 점점 줄고 있다. 동물원 안도 동물원 바깥도 정답은 없다. 어느 곳이든 동물들과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동물원 안의 망토개코원숭이
동물원을 돌면서 제일 눈에 띈 것은 망토개코원숭이(이하 망토원숭이)의 붉은 엉덩이였다. 붉은 엉덩이 부분에만 털이 없었다. 털이 없는 붉은 살결이 드러나 있는데 그 부분으로 땅에 앉는다. 털이 없어 연약해 보이는데 저렇게 바닥에 앉아도 될까? 그런데 알고 보니 붉게 보이는 것은 굳은 살이고, 이 굳은 살 때문에 경사진 높은 바위에서 살 수 있다. 엉덩이의 털을 없애서 바위와의 마찰력을 높인 것이다.
사육장 옆에는 망토원숭이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 제목은 ‘가지 많은 망토네, 바람 잘 날 없다’이다. 망토원숭이 각각의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서열 1위 수컷, 나이가 많고 이빨이 부러졌지만 그래도 지위 있는 수컷, 별일 아닌 것에도 소리 지르며 편들어주길 바라는 암컷, 엉덩이가 부푼 암컷은 인기쟁이’ 등 재미있게 망토원숭이의 개체 성격이 표현되어 있었다. 힘이 없는 고령의 수컷 망토원숭이가 존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힘이 없지만 무리 안에서 어떤 조정 역할을 하는 것일까? 소리 지르며 편들어주길 바라는 암컷의 행동은 축구 선수들의 헐리우드 액션을 연상시킨다.
동물원 밖의 망토개코원숭이
나는 망토원숭이의 고향이 궁금해졌고 그들의 동물원 밖의 삶이 궁금해졌다. 유투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망토원숭이는 아프리카 지역에 사는데 강가와 바닷가, 사막과 고산지대 등에 무리를 지어 산다. 서열 1위 수컷이 4-5마리의 암컷을 관리하면서 교미하고 새끼를 낳는다. 서열 1위 수컷만이 암컷과 교미할 수 있는데 서열 1위의 수컷이 이런 혜택을 받는 이유는 무리를 보호하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포식자들이 나타나면 가장 앞에서 싸우고, 먹이를 찾아 전체가 움직일 때는 위험 상황을 파악해가며 무리를 이끈다. 강력한 가부장적 사회를 이룬 무리생활이 그들의 생존력을 높였을 것이다. 1위 수컷에게 선택된 암컷은 다른 수컷에게 한눈을 팔지 않고 1위 수컷에게 충성을 다한다. 어린 망토원숭이들은 친구들과 싸우면서 놀기도 하는데 이런 훈련들 때문에 포식자가 나타나면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인해전술로 포식자를 쫓아낸다.
해변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망토원숭이는 인간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 해변으로 향한다. 해변으로 가는 길에 도로를 건너기도 하는데 자동차와 부딪칠까봐 아슬아슬하다. 배고픈 표범이 망토원숭이의 새끼를 노린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큰 적은 인간이었다. 망토원숭이에게 야자나무 열매는 주요한 식량인데 인간은 야자나무 잎을 채취해 간다. 망토원숭이가 어느 부족민의 삶을 방해한 것인지 망토원숭이에게 총을 쏘는 부족민들도 있었다.
동물원의 한계
동물원에 있는 망토원숭이들은 인간에게 의식주를 제공받고, 다치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표범과 싸울 일이 없고, 인간과 먹이를 두고 경쟁할 일이 없다. 그래도 망토원숭이들은 1위 수컷의 뒤를 따르면서 사육장을 분주히 빙빙 돌고 있었다. (영상에서 보면) 먹이와 물을 찾기 위해 야생의 망토원숭이들은 늘 움직이고 있었는데 비슷한 활동의 일환으로 동물원 안에서도 늘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동물원에서 사는 일은 안전하고 편하지만 수만 년간의 시간이 만들어온 빼곡한 유전자 정보를 못 쓰고 묵혀두는 일처럼 보인다.
또한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동물들은 동물원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 중 일부는 새끼를 키우지 못하고 생식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성과 생식의 유전자는 가장 기본적 본성이라 학습 없이도 발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하마의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한 동물원 태생의 하마는 자기 새끼를 물에 데리고 들어갔다가 익사시키고, 동물원 태생의 엄마 침팬지는 자기 자식을 보고도 공격성을 드러낸다. 동물원 태생의 수컷과 암컷 고릴라(우지지와 고리나)는 함께 노는 방법과 짝짓기하는 방법을 몰라서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유령처럼 대한다. 아무래도 동물원이라는 환경이 여러 마리의 큰 동물들을 보호하기 어렵기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
엄마의 보호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새끼들은 동물복지사들이 키운다. 그래서 새끼들은 사람을 어미라고 생각한다. 침팬지 어미에게 3년 이상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기 침팬지는 무리 문화를 배우지만 동물복지사에게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아기 침팬지(관순이)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본능은 타고난 것이지만 집단의 생활 속에서 문화적 경험이 없으면 쉽게 발현되지 못한다. 우리도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의 모습이 얼마나 생경했는가! 인간인 우리도 아이들을 낳기만 했지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어르는 것은 모두 엄마에게 배웠다.
암울한 동물원 밖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 때문에 고릴라의 서식지가 급속도로 없어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핸드폰 생산에 필요한 ‘콜탄’이라는 광물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카후지–비에가 국립공원에서 대부분 채굴되는데 이곳이 고릴라의 주요 서식지이다. 콜탄의 채취 경쟁 때문에 인간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전쟁을 한다. 그리고 고릴라에게 먹거리와 주거를 제공하는 숲은 갈아엎어지고 불태워진다. 이런 환경에서 먹는 풀의 양이 상당한 채식주의자인 고릴라가 그만큼의 먹이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숲이 훼손되면 고릴라는 결국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올 수 밖에 없다.
과연 전기차는 기후 위기의 대안일까? 전기차 배터리의 주원료인 니켈의 1위 매장국인 인도네시아 술라웨이섬에서는 원료 채굴을 위해 축구장 1천개(약 10㎢) 규모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숲에서 쫓겨나고 절멸되는 동물들의 희생 위에 탄소배출이 없는 ‘친환경’ 전기자동차가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좁은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들을 불쌍히 여기며 동물원 밖이라는 대안을 생각하지만 지구라는 공동의 환경에 군림한 인간들 때문에 동물들이 살 곳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노력 중이지만
어미의 돌봄과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새끼들은 인공포육된다. 동물 복지사들은 엄마 하마를 대신해서 아기 하마에게 물과 친해지는 연습을 시키고, 동물 복지사를 엄마로 착각하는 침팬지 관순이도 무리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는다. 번식을 위해 합방을 했지만 서로에게 대면대면했던 고릴라 우지지(수컷)와 고리나(암컷)의 새끼 낳기는 결국 실패했다는 소식을 동물원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 그래도 그들은 동물원 안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힘껏 노력 중이었다.
동물원은 돈을 벌기 위해 동물을 전시하는 곳만은 아니다. 동물원은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치료 여부에 따라 그들을 야생으로 방사하거나 동물원에서 보호한다. 그리고 야생에서 멸종된 동물의 종 보존을 위해 노력한다. 불법 포획된 돌고래 제돌이를 제주의 바다에 돌려보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청주동물원의 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원은 신기한 곳도 슬픈 곳도 아니라고 한다. 동물원은 진귀한 볼거리가 즐비한 공간이거나 혹은 갇혀 있는 동물의 슬프고 안타까운 풍경을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 아니다. 번식, 사육, 진료, 수술, 방사, 청소까지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상이 이어지는 공간이라고 전한다(출처:경향신문, ‘동물원은 신기한 곳도 슬픈 곳도 아니다’, 2024년 5월 25일 기사).
작년 인문공간세종은 홋카이도 시레토코 국립공원을 방문하였다. 그곳은 국립공원 전체가 불곰의 서식지로서 인간이 방문할 수 있는 장소를 단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불곰을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불곰 보호는 관광자원이 된다. 앞에서 얘기한 망토원숭이 영상에서도 망토원숭이 거주지를 관광지화하여 부족민들과 망토원숭이가 서로 상호부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관광 자원이 되든지 되지 않든지 동물들은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들의 환경파괴 속에서 동물의 관광 자원화는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작은 방편일 것이다.
동물원 안이든 밖이든 동물들에게 그리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구라는 환경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물원은 신기한 곳도 슬픈 곳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중간의 실험일 뿐. 욕현샘이 강조점을 찍으신 부분이 감동적입니다. 동화인류학의 입장에서 본 ‘동물원’을 그 지점에서 가져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