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마음 인류학 에세이] 조작하다
2024.12.07. / 손유나
조작하다
우크라이나,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지구 각지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폭격이 자행되고 있다. 폭격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미사일이 자신이 있는 곳을 비껴가기를 기도한다. 기도는 폭탄의 궤도를 바꾸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일종의 주술이다. 유사하게 어부들은 농부, 광부 등 다른 생계 수단을 가진 이들보다 강하게 미신을 믿고 지키는 경향이 있다. 바다의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언제 파도가 크게 일어 자신들을 집어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과 바다와 같은 불확실한 환경에 처해있을수록 미신과 주술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주술은 합리성으로 무장한 근대 과학과 같은 동기를 지닌다. 인간은 불안정하고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이든 인간은 자연의 이치를 파악하고, 질서에 개입하여 인간의 의도에 맞게 조작하려고 시도해왔다.
조작하고 조종하고 함은 인간의 본성의 일부이기에 현대 문명에서도 도처에서 발견된다. 행운의 네잎클로버, 걱정을 대신 품어주는 걱정인형, 사주, 타로점, 신점과 굿, 긍정의 힘을 믿는 태도. 이 모든 것이 주술이다. 단지 문명권 내의 사람들은 이성과 합리성을 전면에 내세워고, 약간 뒤로 물러나 있는 주술적인 측면을 미신, 위로, 가벼운 심리술로 생각하거나 혹은 인식의 표면에 떠올리지조차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인간의 특성을 조각내어 편향되게 인식하고 있다. 인간이 가진 주술적인 부분을 생각해보는 시간은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을 총체적?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의 질서를 파악하려는 시도
주술의 위상은 과학과 다르지 않다. 주술과 과학 모두 자연의 질서가 존재하며, 이 질서는 인간의 바깥에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은 질서의 원리를 이해하고, 기술을 통해 그 힘에 개입하여 조작할 수 있다. 주술은 ‘제멋대로’로 보이지만 결코 한 인간이 제멋대로 행하는 일이 아니다. 인과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 위에 인과를 보충함으로써 자연의 힘을 유도하고 조종하려 한다. 인과의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는 과학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주술은 과학보다 포괄하는 범위가 더 크다. 인간, 동물, 사물, 태양과 달, 돌, 바람 등 지구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 함께 인과의 고리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햇빛을 쬐어 임신한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인과가 성립한다. 반면 과학은 물리학에 바탕을 두고 지엽적으로 인과를 파악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주술과 현대 과학은 모두 ‘과학’이라는 한 범주라고 얘기한다. ‘과학’의 목적은 실용성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 야생의 사고와 과학 둘 다 질서를 찾아 구조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2. 작동원리
주술과 과학은 모두 기술이다. 주술은 주문과 기술이 합쳐지고, 과학은 자연과학과 기술이 합쳐졌다. 하지만 그 기반 원리는 동일하다. 『황금가지』의 저자 프레이저는 주술의 원리를 접촉과 감염의 원리로 설명한다. (추가 설명)
과학은 여러 개의 차원을 구분하고, 그중 일부에만 결정론적 형식을 부여하는 반면, 주술은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결정론을 전제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느껴진다. 현대 과학은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건을 파악하고 자연을 여러 개의 차원을 구분하여 일부에만 결정론적 인과를 부여한다. 반면 야생의 과학은 야생의 과학은 감각적 직관을 이용하고 경험을 통해 구조를 도출한다. 그래서 야생의 사고로는 담배 기를 구운 고기와 구운 빵 질을 한 묶음으로 혹은 치즈, 맥주, 꿀을 한 묶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질소로, 후자는 디아세틸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인데 둘 다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3. 구술문화에서 말의 힘 (주술문화의 세계관?)
주술은 구술문화에 속한다. 논리는 문자문화의 속한다. 구술문화는 논리보다는 개연성에 따라 생각한다. 그래서 화물신앙 말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말에는 힘이 담겨 ‘조용히 해’하는 똑같은 말이라도 누구의 말은 청중들이 들은 척도 안하고, 누군가는 한순간에 좌중을 침묵하게 한다. 구술문화권으 사람들은 현대 우리들보다 더욱 기운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 큰 효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부정탄다며 부정적인 말을 쉽사리
성경이나 불경을 암송할 때 특유의 고저와 리듬이 있는 것처럼 주문은 원형의 문구를 정확한 발음과 강세, 리듬으로 암송해야 한다. 서태평양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카누’가 불가능한 이유는 주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정확한 주문만 복원해낼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주술의 효력이 약하다면 주문을 제대로 읊지 못한 것이다.
4. 주술의 사회성
주술의 힘을 믿는 건 사람의 본성의 일부를 이룬다. 현대 과학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믿는다. 모 정치인이 대선을 앞두고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등장해서 지탄받았다. 해당 사건은 주술을 바라보는 우리 문화의 태도를 뚜렷히 드러낸다. 우리는 주술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공감하고 이해받을 수 있으나 공적인 영역에서 드러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태평양의 사람들, 야생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술은 자연법칙의 질서에 근간한 것으로, 주술은 절대적이며, 공동체의 질서이고,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 해야 하는 책무가 따라오는 것이다.
5. 인간 중심적이되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
6. 효용성이 극대화하면 인간이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