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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미야자와 겐지의 과학관]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4-12-08 14:52
조회
49

우주는 137억 년 전 대폭발로 시작되었다. 원시 태양이 만들어지고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이 차례로 만들어졌다. 46억 년 전 활발한 용암 활동으로 뜨거웠던 최초의 지구는 행성 테이아와 격렬한 충돌로 위성 달을 갖게 되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달은 지구 주위를 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밤하늘 달은 한 달 주기로 그 모양을 바꾼다. 달이 일으키는 힘으로 지구의 바다는 밀리고 당겨진다. 별은 핵융합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로 빛을 내고 사람들은 무리지어 나타나는 별들에 이름을 붙였다.

내가 알기에 과학의 세계는 드러나는 현상과 수치로 설명되는 분명하고 물질적인 세계이다. 그래서 실재를 증명하는 과학은 진리인 듯한 믿음을 갖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역사를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서 이해한다. 나는 종종 하늘과 땅과 바다의 풍경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취해 감탄하곤 했다.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그 감동의 이유를 알 길이 없어 안내된 자료들로 과학적 사실을 짐작하거나 이해하려고 했었고,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로 지났었다.

동화 인류학 세미나에서 미야자와 겐지의 책을 읽으며 내가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던 경이감의 이유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선이 현재를 향한 듯하지만 그 안에 과거와 미래가 함께 드러난다. 그의 이야기는 모든 존재가 다르지 않고 서로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가 지금 여기에서 함께 존재함을 끊임없이 전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에 드러나는 과학적 세계는 물질성을 가진 존재들이 여러 층위의 시공간에서 존재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하모니를 이루며 묘사된다. 이러한 통합적 시공간은 이라는 개념으로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현재의 관점으로 환상이 아닌 듯하면서 마치 환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통합된 세계, 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통합된 세계

미야자와 겐지의 이기리스 해안는 기타카미 산악지대를 가로지르는 사루가이시 강이 기타카미 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해안을 닮은 강가를 주목한다. 푸르스름한 응회질 이암층이 넓게 드러나있는 이곳을 걷다보면 영국에 있는 이기리스 해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에 화자는 이기리스 해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강가나 절벽에 보여지는 이암층과 땅을 파면 계속 발견되는 이암층들은 신생대에 이 지역이 바다 둔치였다는 과학적 사실을 증명한다. 현재 해안에 쌓인 모래와 점토를 통해 그 아래 지층으로 더 길고 먼 시간으로 시선을 이동하여 상상하게 한다. 그가 자연을 바라볼 때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만드는 시간이고, 다가오는 미래는 현재가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실재하는 여기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존재함을 계속 전달한다.

나는 강가에 쓰러진 갈대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도 통합적 관점을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오면 강가는 더이상 강가가 아니라 깊은 강이 된다. 햇볕을 보며 살았던 갈대들은 갑자기 물속으로 생활 공간이 달라진다. 잔잔하게 흐르던 강들은 갑작스럽게 하늘과 땅에서 많은 물들이 합류하니 몸집이 거대해지고 흐르는 힘이 거세진다. 거듭된 물살은 돌들의 위치를 바꾸고 갈대들을 쓰러뜨린다. 미야자와 겐지는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 여기 풍경을 맡고 있는 다양한 시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또 각 존재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한다.

미야자와 겐지는 거대한 자연의 풍경으로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가 곧 이암의 성분, 모양, 맛 등 물질성을 묘사하며 우리의 관점을 전환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빨려들어가는 듯한 관점의 전환은 익숙하지 않고, 갑작스러운 전개 또한 어질어질함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 익숙치 않음과 혼란스러움에 대한 자각은 미야자와 겐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통합된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가 통합적 세계를 놓치고 현재만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다이가와 강이라는 작품에서 그런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솔 교사는 학생들을 데리고 숲을 지나 숙소로 가야했다. 11시까지 도착해야 하는 미션으로 그는 마음이 초조해 보인다. 그는 표정이 좋지 않고, 숲이 보여주는 단편적인 이미지에 집중한다. 책을 읊는 식으로 학생들에게 절벽을 이루는 암석을 설명하고, 숲을 이루는 나무 수종을 이해시키려 한다. 그에게는 인솔 교사로서 해야 하는 정답 같은 말이 따로 있다. 꼭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고 틀려서도 안된다. 자칫 말을 잘못해서 정보가 이상하게 전달될까 전전긍긍하는 그가 걱정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곧 그의 관점이 바뀌는 지점이 찾아온다. 일행이 강물을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 돌은 유문암이라는 이름을 넘어선다. 돌 입장에서는 징검돌이라는 다른 상황을 맞은 것이고, 인솔 교사 입장에서는 정해진 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건널 보다 좋은 길을 고민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에는 도처에 알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린다.

미야자와 겐지가 그리는 세계에서 인솔 교사의 책임은 과학적 사실과 정보를 알려주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드디어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거기에서 한발 벗어나, 돌들을 옮겨 일행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을 때이다. 일행이 폭포에 도착했을 때 이제 의 절정이다. 철퍽철퍽 아이들의 신발 소리, 졸졸 떨어지는 물, 돌 위에 자라난 이끼, 매끄럽게 깎여진 돌, 그리고 폭포를 만든 물과 그 물이 만든 침식. 누구 하나가 특출나지 않고, 각각 다른 시공간을 살아온 존재들이 숲을 가득 채운다. 모두가 어우러진 통합된 숲에서 어떤 정답도 들이댈 여지가 없다. 이제 인솔 교사는 학생들의 질문에 걱정이 없고 여유로워 보인다. 이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보여지는 인솔 교사의 표정이 상반된다. 통합된 세계를 이해한 그에게 세상은 좀 더 느긋하고 그럴만한 곳이 되었다.

 

가득한 이유를 품은 자연

나는 한 가지 질문에 머문다. 미야자와 겐지는 세상을 왜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기를 권유할까? 나는 그의 작품에서 말하는 과학관에 대해 고민하면서 막막함을 느꼈다. 내가 알던 과학과 그가 말하는 과학이 다르긴 다른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문득 어쩌면 내가 품고 있는 과학에 대한 전제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을 세계와 별개로 이해했던 전제 말이다. 그의 작품에서 과학은 어디 따로 떨어져 있거나 단절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 눈으로 포착되는 저 위의 하늘은 하나의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 수많은 행성과 항성들은 가득한 이유를 품고 하늘을 꾸미고 있다.

우주가 있기에 별들이 있다. 지구가 있기에 달이 있다. 나 역시 다른 존재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내가 될 수 있다. 미야자와 겐지의 과학적 관점으로 보니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고 존재하고 있음을 배운다. 이곳에서 과학적 진리는 따로 없다.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뒤섞여 있는 세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진리라는 고정된 프레임을 만들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계속된 변화와 함께 통합된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유연하게 그 세계를 더 잘 넘나들 수 있다면, 어디든 서서 다른 각도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면 나는 조금 더 가볍고 상쾌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답사팀은 지진과 태풍의 위험으로 인해 계획되었던 일본행을 미루고 국내 루트로 변경했다. 다른 루트를 걸으며 조몬 시대의 사람들, 선사인의 삶에 접속이 가능할까하는 질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미야자와 겐지라면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기타가미 강가를 이기리스 해안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나도 후포리 이중 매장 유적에서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상상할 수 있을까? 다이가와 강의 인솔 교사처럼 남겨진 선사인의 흔적에서 그 너머를 가득하게 상상해보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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