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마음인류학 에세이(1)] 번역하다
번역하다
주제문: 오염시키고 조율하다
번역은 문화와 기억을 가진 패치들로 발생한 주체가 한다.
번역에서 순도는 중요하지 않고, 변역하는 행위가 중요하다.(?)
나는 <인문공간세종>의 영어 번역 코너에서 필리프 데스콜라의 『자연과 문화 너머』를 번역하여 함께 읽는 세미나를 담당했었다. 세미나 참여자들과 서문, 추천사를 포함해서 3장의 앞부분을 1년 10개월에 걸쳐 번역했었다. 세미나를 시작할 때는 6명이었는데 마지막에는 3명의 사람만 남아 있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바꾸는, 『자연과 문화 너머』의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100여 쪽의 페이지를 무려 8번의 시즌에 걸쳐 세미나를 해야 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버거웠다. 번역은 영어 단어를 단순히 그 의미에 대응되는 한국말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의 사고 체계에 한국어 사고 체계를 억지로 애써서 끼워서 맞추는 일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 매번 수고롭게 애를 쓰고 노력해야 번역할 수 있었고, 번역문도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제일 나은 선택의 구성된 결과였다.
『세계 끝의 버섯』에서 사쓰카 시호의 정의에 따르면 번역은 하나의 세계–만들기 프로젝트를 또 다른 세계–만들기 프로젝트에 끌어당기는 것이라 한다. 만들어 가는 과정 중의 하나의 세계를 다른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또 다른 세계와 마주치게 하여 오염시키고 오염당하는 것이 번역이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바꾸는 언어적 번역에서 하나의 세계(영어)가 또 다른 세계(한국어)를 끌어당겨 부분적인 조율이 일어난다. 조율과 오염이 번역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면, 원작 또는 번역하고자 하는 대상과 100% 순도로 같게 번역되는 결과물은 없을 것이다.
『세계 끝의 버섯』에서는 미국 오리곤주의 숲에서 폰레도사소나무가 벌목으로 사라진 폐허에서 자라난 전나무와 로지폴소나무에서 새롭게 창발된 가치인 송이버섯을 이야기한다. 송이버섯은 숲이 폐허가 된 후에 나타난 산업 풍경, 한편으로는 폰레도사소나무가 잘려나가는 오염된 숲의 풍경의 다양성이 만들어낸 현상이다.(애나 로웬하웁트 칭, 노고운 옮김, 『세계 끝의 버섯』 (현실문화), 69쪽)
애나 칭은 미국의 산림에서 채취되는 송이버섯이 일본의 송이버섯 상품 시장으로 변환될 때 ‘공급사슬’을 통해 가치가 기업을 위한 이익으로 번역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가치의?) 차이가 존재하는 장소를 교차하며 번역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