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마음인류학 에세이] 소유한다
<2024 인문세 학술제 에세이>
2024.12.9. 최수정
소유한다
“모든 성스러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야생의 사고』, 62쪽)
이 ‘제자리’란 어떤 것일까? 나는 이 제자리라는 것이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쿨라의 서로 밀고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지켜지는 자리라고 생각해 본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두 힘의 형태가 함께 묶여 제자리를 잡게 한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동시에 작용하며 떠 있는 우주의 별들처럼 서로를 단단히 묶는 보이지 않는 매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태평양의 트로브리안인들은 선물을 주기 위해 ‘쿨라’ 여행을 떠난다. 선물을 끌어당기는 힘을 쓰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그 반대 힘의 추동력을 얻는다. 나 바깥의 힘으로 나를 구성한다는 우주 질서를 기억하고 재현하기 위한 의례를 행하러 자기 세계의 바깥으로 항해를 떠난다. 이는 이들이 수확이 많은 해에 쿨라를 떠난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자연이 그들에게 준 많은 선물은 그들이 그것을 받을 만큼 ‘주었다’는 사실을 유추하게 만든다. 때문에 그들은 의무 이행을 요구하러 당당히 나설 수 있다.
트로브리안인들은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계를 모방하고 있다. ‘선물’이라는 형식으로 반복하며 세계의 질서를 기억하고 유지하려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이 질서에서 탈락할 때 따라오는 위험이 무엇일지 예감하고 있다. 그들에게 ‘소유’란 자신의 자리에서 휩쓸리지 않기 위해 다른 존재를 붙잡는 일이다. 서로에게 주어야 할 의무를 지우며 견고히 붙잡아 총체성에 합류하는 일이다.
정기적 쿨라를 통해 바다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에게 받은 선물로부터 내 삶이 꾸려진다고 생각하며 사는 삶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사고 체계와 확연히 다른 것이다. 나 바깥의 것들이 나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때 나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사회적 인간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사회를 만든다. 우리가 인류학 시간에 읽었던 마르셀 모스의 『몸 테크닉』에서 보았듯, 개별 인간은 사회의 테크닉으로 만들어진다. 자연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감정이 실제로 사회의 전통 행동 방식에 의해 학습된 것이거나 전승된 것이다. 이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붙들어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기능을 찾았다.
‘쿨라’는 트로브리안인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소유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 소유 관계에 따라 자기 정체성이 결정됐다. 바이구아를 받거나 줄 때 그것을 교환해주려는 상대가 없을 수도 있다. 상대방을 찾지 못할 때 위험이 되는데, 자신이 엮일 사회적 관계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그들을 선물 주고받기에 열성적으로 매달리게 한다. 그들에게 제자리란 주고받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 있는 자리다.
쿨라는 개인의 탄생, 혼인, 죽음, 풍요의 경우에 행해진다. 쿨라의 목적은 약해진 관계를 강화하고, 관계를 재생산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바이구아라는 사물은 인격적 유대를 강화할 수 있다. 사물이 인간을 대체하고 인간들의 관계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고는, 그들이 살고 있는 풍경에 인격을 부여하는 그들의 사고와 일맥상통한다.
주기 위해 소유한다
브로니스라브 말리노브스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은 소유를 탐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그것을 나눠주면서 관대함의 느낌을 향유하기 위해서다. 자신들을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고 자연의 관대함을 흉내내어 자연의 풍요를 나눠준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들은 밭 작업을 인내와 목적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열심히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잉여분은 다른 삶을 준다. 그런데 그 잉여에는 자연에 주는 잉여도 포함되어 있다. 잉여를 생산하는 노동에는 많은 부분이 실용적인 생산보다 ‘심미적인 측면에 투입된다.’ 자연은 이미 모든 것이 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이 자연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가공하는 아름다움뿐이다.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이 가공한 아름다움이 선물이 된다. 쿨라의 소재가 되는 바이구아 또한 자연이 선물한 조개에 인간이 손으로 가공해 아름다움을 입힌 것이다. 자연에 심미적인 측면이 투입되어 더 높은 가치를 얻게 된다.
쿨라는 해외, 바다 너머 다른 섬으로 향한다. 선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기 위해서 떠나는 위험한 항해다.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를 여행을 위해 목숨을 건 항해를 떠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관계다.
쿨라의 관계에서 팔찌(음왈리mwali)는 서에서 동으로, 조개목걸이(술라바soulava)는 동에서 서로 순환한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서로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운동 속에 그들이 보는 것이 있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은 쿨라의 범주 안에서 인격적 유대를 만든다. 팔찌와 목걸이에 자신들의 영을 실어 자기를 확장하고 바다 건너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쿨라를 통해 얻는 것은 어떤 상품의 가치가 아니라 ‘명성’이다. 쿨라가 돌면 돌수록 쿨라에는 그것을 잠깐 소유했던 사람들의 사회적 명성이 위대해진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는 쿨라의 팔찌와 목걸이는 그것을 소유했던 사람들을 대신해 명예와 위신을 전달하기 위해 서로를 향한다.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대대로 평판이 좋다는 점에서 그것이 얽힌 역사적 감상의 내력 때문에 중요해졌다. 역사와 내용이 담긴 이야기가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을 생산한다.
이들 사회에서 부의 상징은 선심을 쓰는 것이고 인색함은 최대의 악이다. 인색함으로 쿨라의 순환을 멈추게 하는 일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균형을 깨트리는 일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손을 떠난 팔찌와 목걸이는 이야기를 싣고 나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나를 떠나간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일부가 나를 떠나 바다 너머 멀리까지 가서 다채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다.
선물이 무엇이길래
쿨라의 순환 안에서 팔찌(음왈리mwali)와 조개목걸이(술라바soulava)는 서로를 끌어당긴다.팔찌와 조개목걸이 중 하나를 받았으면 다른 것을 줘야 하기 때문에 주고받는 관계는 처음부터 서로를 향해 있다.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는 선이 더 단단히 서로를 붙들게 만드는 그물망의 방식으로 묶여있다.
이때 이 바이구아는 인간을 대체하는 사회적 관계의 도구이다. 자연물을 인간이 가공하며 인간은 자연물 안에 자신의 힘을 넣었다. 최초의 선물은 인간의 노동이 들어있고, 만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들어있다. 인간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사물이 선물이라는 형식으로 작동한다. 바이구아는 장식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소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몸을 장식하는 특권이 소유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다. 장식품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자신이 자연과 맺은 관계를 사물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자연에 처음으로 가치를 더한 명성 있는 사람이 되어 그 이력을 순환시키며 위세를 키운다.
나를 통과한 바이구아가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돌며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 힘을 얻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나의 힘이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바이구아 자체가 인격적 힘이 되어 자신을 그 사회에서 강한 일원으로 만들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쿨라는 팀 잉골드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에서 모스의 『증여론』을 빌어 이야기하듯 영원히 지속 가능한 조건으로 상호침투의 가능성을 시연한다. 선물을 통해 나의 영은 너의 영을 뚫고 들어간다. 즉 나는 너의 사고 속에 너와 함께 있다. 또 네가 답례한 선물을 통해 너는 나의 사고 속에 나와 함께 있다. 그리고 선물을 주고받는 한 이 상호침투는 계속 수행된다. 팔찌(음왈리mwali)와 조개목걸이(술라바soulava)는 맛잡은 두 손처럼 서로를 함께 묶거나 맞당긴다.(『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29쪽)
질서의 관계를 소유
‘쿨라’는 트로브리안인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관계의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 선물이라는 형식으로 전달되는 사물의 인격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확장이 되는 사물의 인격이 연장되어 내가 거주하고 있는 사회를 넘어 돌아다닌다. 나를 떠났다 돌아오는 선물은 그것이 거쳐온 인격들의 세계 전체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며 서로 밀고 당기는 바이구아처럼 세계 질서는 한쪽에서 행해지는 어떤 행위도 다른 한쪽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 전체가 주술에 걸린 것처럼 멈출 수 없다. 서로가 선물을 주고받는 관계에 결부되어 그 관계 속에서 순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