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동사 탐구-싸다] 싸다, 존재 양식을 선택하다
기술 인류학 / 동사 탐구-싸다 / 24.12.12 /붱붱
싸다, 존재 양식을 선택하다
“우리는 도기와 도기 사이에 존재합니다. 인간의 신체는 음식의 통과점에 지나지 않습니다.”(후지하라 다쓰시, <전쟁과 농업>, 158쪽)
후지하라 다쓰시는 인간의 몸이 ‘음식의 통과점’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밥뿐만 아니라 똥 역시 아직 ‘음식’이라는 것을 뜻한다. 똥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위가 미처 소화하지 못한 것들의 집합이다. 그것이 싸는 행위를 통하여 변기에 들어간다. 어딘가(대개는 하수처리장 및 정화조) 있을 미생물들은 인간이 다 먹지 못한 것(유기물)을 받아먹는다. 이때 변기는 미생물의 밥 그릇이다. 똥을 싼다는 건 밥을 뜨는 일이다.
우리가 뜬 똥-밥을 먹은 미생물들은 바다와, 대지와 한몸이 된다. 이 세계가 우리가 싼 것들을, 미처 소화하지 못한 것들을 다 받아먹고 품어준다. 그리고 이 세계 역시 배설물을 내보낸다. 대지의 배설물은 농작물이다. 우리는 ‘똥을 먹는다’고 하면 “으악” 싶지만, 모를 일이다, 세계 역시 우리가 농작물을 먹을 때 “으악”할지. 그런데 마법 같은 일은, 이 세계는 우리에게 ‘영양가’ 있는 것을 먹여준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미생물들은 단순히 우리가 싼 것을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분해하면서 이를 정화한다. 그런데 이 분해의 과정 자체가 미생물들 몸에서 배출된다는 점에서 미생물들의 ‘쌈’이기도 할 것이다. 미생물들에게는 그러니까 싼다는 행위가 ‘정화한다’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정화는 대지와 바다, 생태계가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게 한다.
<전쟁과 농업>에서 언급되는 차페크 형제가 인간을 지렁이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지렁이는 지나가는 자리에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지나간 자리에 땅을 더 비옥하게 할까?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음식의 통과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음식의 어떤 통과점’이 될 것인가는 생각, 선택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어떤’이야말로 존재 그 자체이다. 세계는 우리에게 영양가 있는 것을 싼다(먹인다). 세계는 영양으로 풍부하다. 미생물은 세계에게 깨끗한 것을 싼다(먹인다). 미생물은 깨끗하다. 싸는 것은 곧 존재 양식을 선택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