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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에세이] 마음의 종소리

작성자
남연아
작성일
2024-12-11 15:53
조회
32

마음의 종소리


  아이의 성장에서 가장 놀라고 기뻤던 순간은 바로 아이가 두 발로 일어섰을 때였다. 기어다녔던 아이가 무언가를 붙잡고 서려고 시도하다 자꾸 꽈당 넘어져서 헬멧을 씌워주었다. 나의 몸을 잡고 조금씩 몸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두 손을 내 몸에서 떼었다. 아이는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의 두 발로 서 있었다. 5초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우주가 멈춘 것 같았다. 나는 너무 경이로운 마음에 탄성이 나왔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이제 엄마 품에서 조금씩 벗어나서 자신의 길을 가는 출발 같이 느껴졌다. 아이의 몸이 성장하는 것을 보니 성장이란 엄마의 품을 떠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과연 이 아이는 자신의 두 발로 어떤 길을 갈지 궁금해지면서 성장하더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안데르센의 「종」은 성장한다는 동사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동화다. 도시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리는데, 이에 대해 1부는 어른의 반응과 행동을 보여주고, 2부는 종을 찾으러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과 아이의 반응은 상반적이기도 하고, 또 닮아 있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는 어른과 아이에 대한 안데르센의 관점을 볼 수 있다.

  안데르센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면 소설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는 장르를 강조했다. 안데르센에게 동화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볼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를 발표했다. 많은 비평가에게 왜 이런 글을 쓰냐며 비판을 받았지만, 안데르센은 매해 크리스마스에 동화를 발표했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는 민담이 전부였던 시대에 아이를 위한 창작물을 만든다는 건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안데르센에게 동화가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견신례를 받는 아이들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의식이 끝나면 아이들의 영혼을 가진 그들은 옳고 그름을 아는 어른의 몸이 되는 것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 현대 지성, 312쪽) 안데르센에게 성장은 단순히 몸이 커지는 것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알아야 하고, 마음에는 ‘아이들의 영혼’을 간직해야 한다. 안데르센은 정신적 성숙과 동시에 순수한 영혼을 강조한다. 상반되는 두 개의 가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성장과 관련이 있을까?


제자리를 돌고 있는 어른과 아이

  「종」의 1부에서 어른들은 마음속에서 아이들의 영혼이 사라졌다. 그들은 종소리를 찾기 위해 도시에서 숲으로 떠나지만, 그들은 숲으로 가면서 우왕좌왕한다. 종소리는 이제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었다. 아무도 종은 찾지 못했지만, 숲에서 빵 장사를 하기도 하고, 숲을 관광지로 생각하기도 하고, 종이 시의 소재가 된다. 왕이 종소리를 알았을 때는 ‘세계의 종지기’라는 벼슬이 내려지기도 한다. 부엉이 소리가 종소리라고 찾아낸 사람은 결국 ‘세계의 종지기’로 임명을 받았다. 그는 도대체 그 소리가 부엉이의 머리인지 몸통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고, 매해 부엉이에 대한 논문을 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어른들의 종소리를 찾아 숲으로 떠났지만, 도착한 곳은 종소리를 잊은 도시였다.

  2부에서 14살이 되어 견신례를 받은 12명의 아이들은 모두 종을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세 명의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여자아이는 무도회에서 입을 옷과 신발에 마음이 뺏겨 집에 가고 싶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물질 때문에 다시 집에 돌아간다. 반대로 한 아이는 물질적으로 가난해서 돌아가야 했다. 주인집 아들에게 빌린 신발을 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아이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이 아이들은 떠나지 못했고, 아직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어른의 몸이 되지 못했다. 9명의 아이들은 숲으로 향했지만, 중간중간 뿔뿔이 흩어졌다. 숲길은 험해서 옷들이 찢어지고, 피가 나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들이 온 곳이 숲의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종은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 다섯 아이들은 작은 은종 앞에서 의견이 갈린다. 네 아이들은 이것이 자신이 찾는 종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아이만 소리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 아이는 왕자였다. 왕자는 아무리 봐도 그 은종은 작아서 자기가 들은 감동적인 소리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아이들은 왕자가 잘난체한다고 생각했다. 즐겁게 종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머물렀다.

  10명의 아이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몇몇 아이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죄책감을 가졌을 수도 있고, 몇몇 아이는 다시는 그 험난한 숲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결심한 아이도 있을 수 있다. 작은 은종을 보면 종을 찾았다는 성취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 아이들 또한 숲으로는 떠났지만, 종을 잊은 아이들이었다. 


끝까지 가는 아이들

  왕자는 혼자 길을 떠났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고, 아직도 종을 찾았다며 즐거워하는 소리만 들렸다. 왕자의 마음에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숲속에서 더 큰 종소리가 울렸다. “이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꼭 종을 찾고 말 테야” (같은 책, 312쪽)라며 굳게 다짐한다. 숲속에서 왕자는 도시로 돌아간 가난한 아이를 만난다. 가난한 아이는 종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왕자는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가난한 아이는 자신의 나막신을 내려다보면서 왕자처럼 빨리 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둘이 생각하는 방향은 반대였다. 결국 둘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왕자가 가는 숲속에서는 다양한 생물과 풍경이 펼쳐진다. 못생긴 원숭이들, 이상한 꽃들, 백조, 징그러운 뱀, 개처럼 짖어대는 두꺼비 등등. 안데르센은 숲을 거칠고, 험난하고, 기괴한 생물이 사는 곳으로 묘사한다. 왕자는 여기서 어떤 생물한테도 관심이 없다. 심지어 존재하지도 못한 채 지나친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벼랑 끝까지 올라간다. 결국 꼭대기에 다다르고, 거기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무척 아름답다. 거대한 파도, 눈부신 빨간 노을, 초롱초롱한 별, 꽃과 풀. “이 모든 자연이 하나의 거대한 성당”(같은 책, 312쪽)이라고 말한다. 반대편에서 가난한 아이가 나타났고 둘은 부둥켜안았다. 너덜너덜한 옷과 나막신을 신은 가난한 아이도 자신이 믿는 길을 끝까지 갔고, 결국 그 꼭대기에 도착했다.

  왕자와 가난한 아이는 안데르센의 성장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다. 옳고 그름을 아는 어른의 몸이라는 말은 어떤 유혹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아무리 피가 나더라도 참아내는 힘이다. 어린아이의 영혼을 간직한 마음은 절대 종소리를 잊지 않는 마음이다. 안데르센의 성장 메시지는 우리에게 너무 친숙하다. 많은 유명인들은 어렸을 때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런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메시지를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지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꿈을 잃고 현실과 타협해 살아간다는 사실에 공허함을 느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꿈이 없다며 걱정한다. 하지만, 과연 꿈을 이루는 것, 끝까지 가는 것,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성장일까?

동화적 성장

  어른들에게 종은 수단으로 바뀌었고, 왕자와 가난한 아이는 종이라는 목적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절대 한눈을 팔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종 말고 다른 모든 것은 수단이 되었다. 의견이 다른 친구들은 걸림돌이 될 뿐이다. 숲은 종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배경일 뿐이다. 가시나무 또한 종을 위해 겪어야 하는 성장통일 뿐이다. 다양한 생물들이 숲속에 우글우글 존재하지만, 왕자는 존재 자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앞만 보며 이 세상에 오직 자신과 종밖에 없다. 왕자와 가난한 아이는 같은 목적을 가졌지만, 서로를 돕지도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왕자와 가난한 아이가 서로 만나 손을 잡았지만, 그 외로움은 여전히 외로웠을 것이다.

  종은 안데르센이 말한 ‘아이들의 영혼’을 의미한다. 동화를 읽으며 그 영혼을 일깨워야 한다. 하지만, 동화적 성장의 관점에서 종은 수단도 아니고 목적도 아니다.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떠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어디 위치에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종은 그 위치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동화적 성장은 어떤 것일까? 일단 몸이 자라야 하고, 집을 떠나야 한다. 떠난 다음에는 도착지로 바로 가지 않고 주변을 바라보며 어슬렁거려야 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뺏기고, 머물러야 한다. 나와 다른 존재에게 눈길을 주고, 소리를 듣는 것이다. 집을 떠남으로써 많은 존재를 만나고, 대화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렇게 하다가 샛길로 빠지고 길을 잃을 수 있다. 어디서든지 누군가와 함께 있던지 종가 들린다면 있다면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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