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인류학 에세이] 관으로서의 인간
아직 마무리가 안 되었습니다. 세미나 전까지 더 쓰고 수정해보겠습니다.
관으로서의 인간
먹는다 – 자연의 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주제문 – 먹는다를 싸는 일과 함께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먹는다. 먹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어렵다. 물을 마셔야 체내에 수분을 공급할 수 있고 음식을 먹어야 에너지를 주입할 수 있다. 이렇게 먹는 일은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일이다. 나 또한 먹는 일을 내 입으로, 몸으로 먹거리를 넣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술인류학에서 함께 읽은 『전쟁과 농업』에서 후지하라 다쓰시는 먹는 일을 입으로 음식을 넣는 일로만 보지 말고 항문으로 배설하는 일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자고 한다. 싸는 일도 먹는 일이라고? 그는 왜 먹는 일에 싸는 일까지 넣어서 얘기하고 있을까?
그는 네가 먹는 일이 너를 살리는 일뿐만 아니라 자연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내가 먹어서 배설하는 똥과 오줌이 자연으로 돌아가 그들의 먹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내 몸은 먹거리가 다른 형태로 자연에 놓이게 하는 관으로서 역할을 한다. 내 몸이 자연 생태계를 위한 관이라니 나는 어떻게 먹어야 할까.
내 입으로 들어와서 항문으로 나간다
후지하라는 어느 날 산오징어를 먹으며, 과연 그 오징어가 언제 사체가 되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는 그 경험으로부터 먹는 행위가 단순히 음식을 입에 넣기만 하면 끝나는 일일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식도를 거쳐 위, 십이지장, 대장을 거쳐 항문으로 나온다. 이렇게 보면 먹는 일은 내 입안으로 들어가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의 배설물은 하수관을 통해 정화조와 같은 처리를 해서 자연으로 흘러간다. 그것을 먹고 자란 벌레나 미생물이 식물과 동물의 먹이가 되고, 그 생명들은 다시 내 식탁 위에 놓이게 된다. 내가 싼 오줌과 똥이 언젠가 내가 다시 먹을 음식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다른 모습이지만 자연의 일부로 이미 존재하고 있고, 자연의 수많은 생명들 또한 다른 모습으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자연 안에 나 아닌 것이 없고 내 안에 자연이 아닌 것이 없다. 외부로부터 경계를 치고 있던 나를 뚫려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자, 협소하고 갇혀 있던 내가 광대하고 풍요로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는 일이 나를 살리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세상의 생명들을 연결하는 일이 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 몸으로 들어가는 것에만 집중해서 먹었다. 어떤 맛일까, 어떤 영양소가 들어 있을까, 건강에 좋을까를 생각하며 말이다. 편식하지 않고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는 것을 여러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고르는 것은 내 건강을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잘 먹고 잘 싸기
먹는다는 것을 내 몸에 먹거리를 집어넣는 것이 아닌, 먹거리가 내 몸을 통과하는 일로 생각하면, 여기에는 책임도 따르게 된다. 내 몸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명이 내 몸을 통과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내 몸을 통해 다른 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많은 생명들이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먹거리가 통과하는 내 몸의 관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것이 생태계, 자연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가 있다.
또한 나만 잘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의 먹음뿐만 아니라 내 옆 사람의 먹음도 내게 중요하게 된다. 그가 먹고 싼 것 또한 내 식탁에 올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후지하라는 잘 먹는 일을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먹는다는 게 내 몸에 들어오는 것에서 끝나지 않기에 나가는 것까지 고려해서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 몸으로 들어온 것이 나를 통과해 다른 것들과 연결되니까 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잘 먹고 잘 싸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후지하라가 이 시스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먹는 일로부터 생각해보자고 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