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북토크 후기] 세상으로 나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을 응원하며
세상으로 나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을 응원하며
오켜니(인문공간세종)
12월 11일 오선민 선생님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이하 『일상의 애니미즘』) 북토크가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애니미즘’으로 해석한 오선민 선생님 책의 기운 때문이었을까요? 한마디로 애니미즘적 활기가 넘치는 북토크였습니다. 토토로와 가오나시 등신상과 마구로 쿠로스케 과자 간식이 등장하였습니다. 연주선생님 모녀는 키키의 빨간 머리띠를 장착하였고, 수정 선생님은 『천공의 성 라퓨타』의 파즈처럼 캐츠비 베레모 모자를 썼으며, 혜영 선생님은 『모노노케 히메』의 원령공주를 따라 털조끼를 입고 왔습니다. 가장 인기가 있던 것은 토토로와 가오나시 등신상으로 그 앞은 자연스레 포토존이 되었습니다. 이 등신상을 어디서 공수해왔는지 문의가 이어졌는데요. 인문공간세종의 기술자인 기헌선생님께서 자체 제작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다 같이 모여 찍은 단체 사진을 봤는데 가오나시가 정말 살아서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 같았습니다.
북토크 강연장인 체칠리아 홀의 입구에는 오선민 선생님께서 참고한 책들이 전시되었습니다. 미야자키의 숲과 비행과 먹음 주제의 책, 미야자키 작품들의 아트북, 미야자키에게 영향을 준 문학 작품들, 지브리 스튜디오 소개 책자,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책,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만화로 거의 백 여권에 이릅니다. 오선민 선생님께서 이번 북토크는 덕후들의 대잔치가 될 것이라 하셨는데 세상을 향한 미야자키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수많은 스케치와 작화들과 함께 하니 더 좋았습니다.
드디어 북토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일상의 애니미즘』관련 퀴즈를 풀었습니다. 난이도가 꽤 높은 문제들이어서 놀랐습니다. 저는 요즘 인문공간세종의 아침낭송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데요. 사실 저도 정답을 잘 못 맞추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맞추어보시죠^^.
– 『이웃집 토토로』에서 가장 많이 기다린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정답은 메이)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1편 중에서 가장 말이 없는 주인공은 **입니다. 오선민 작가가 가장 단조로운 일상을 살며 말수가 가장 없는 주인공으로 꼽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장 말이 없지만 가장 오랜 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 주인공입니다. 장장 30년의 인생이 나옵니다. (정답은 지로)
–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는 마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톰보에게 화를 내고 길을 멀리 돌아 빵집으로 올라오는 과정에서였지요. 왜 마법을 잃어버렸을까요? *의 시선으로, *이라는 척도로 자기 생활을 평가하게 되자마자였습니다. (정답:은 남, 돈)
문제가 쉽지 않지요? 그럼에도 덕후들의 대잔치여서 그런지 손을 들어올려 잘 맞추시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오선민 선생님께서 이 책을 쓴 일화를 말씀해주셨는데요. 처음에는 ‘글’을 읽으며 책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를 계속 보면서 책을 창작하는 일이 어색했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만화를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번뇌가 생겼답니다. 만화를 보는 일이 글을 읽는 일보다 수준이 낮다라는 무의식이 작동된 것입니다. 계속 쓰다보니 이런 생각은 없어졌지만요. 오선민 선생님은 작년 인문공간세종 친구들과 ‘달살롱’이라는 11주 특강을 통해 미야자키 작품을 같이 보고 토론하면서 이 책을 ‘몰아쳐서’ 썼다고 하십니다. 여러 가지 생각과 사유들이 날아갈까 조바심을 내면서 빠르게 써 내려갔다고요.
오선민 선생님은 미야자키 작품의 상세한 디테일에 주목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온천장은 갖가지 디테일로 넘쳐납니다. 가마 할아범이 태우고 치우지 않은 담배꽁초, 온천장 복도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여러 가지 소모품들, 온천장 직원들 숙소의 이불, 심지어 물에 젖은 후 마른 ‘불은 책’, 구석구석 숨어 있는 쓰레기 등. 그리고 전쟁, 환경문제 등 거대 서사와 더불어 격식 있게 먹는 일(『천공의 라퓨타』의 파즈는 가방에 계란 후라이와 디저트용 사탕까지 담아 다니네요), 깨끗이 청소하기, 빨래 가지런히 개기의 일상이 함께 나옵니다. 오선민 선생님은 이런 장면들을 무한반복 계속 보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신거죠. 우리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다! 인간이 아무리 거대한 명분을 향해 가더라도 거기에는 늘 우리의 일상이 있다! 잘 사는 일은 일상을 잘 챙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상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의 우글거림을 느낄 때 우리는 삶을 더 활기차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덕후들의 대잔치답게 참석자들의 질문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자신을 나우시카의 팬이라고 밝힌 어떤 분은 지브리에서 나우시카 굿즈는 만들지 않아서 늘 아쉬었다고 하시면서 나우시카처럼 사는 게 꿈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와! 나우시카처럼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일일까요? 오선민 선생님 해석에 따르면 나우시카는 연구자, 인류 최후의 전사, 생명의 끝없는 길을 위해 헌신하는 구도자입니다. 다른 분은 미야자키가 치히로의 얼굴을 뚱하게 그린 이유가 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오선민 선생님은 질문자분께 잘 관찰하셨다고 하시면서 주인공이 친밀감을 느끼면 표정이 변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 사건이 생기면 주인공의 표정이 침착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북토크 행사는 오선민 선생님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의미와 더불어 『일상의 애니미즘』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인문공간세종의 의례였습니다. 인간으로 따지면 성인식 같은 것이죠. 이 책이 세상으로 나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인연을 불러올지 기대하면서 잘 보내봅니다. 이 책을 만나는 분들이 잘 먹고, 청소와 빨래 조금 더 하고, 아주 조금의 사유가 자라나, 나를 돕는 주변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는 눈이 장착되기를. 이런 아주 큰 소망을 품고(!) 이 책을 세상으로 보내봅니다. 저자이신 오선민 선생님은 더욱 그러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