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인류학]세상이라는 나의 고향(4) 정체성과 함께 하는 삶
정체성과 함께 하는 삶
아마르티아 센의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정체성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이 책의 여러 장에서 정체성을 언급한다. 24장 케임브리지를 다시 사고하다에서도 센은 ‘우리 각자가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p.554)한다고 말한다. 24장에서 센은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을 맡기 전에 학장이었던 마이클 아티야를 언급한다. 그의 조상은 수단이다. 그는 어린시절을 이집트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는 영국 수학자로서 수학 분야 최고의 영예인 아벨상을 받고 트리니티 학장을 역임했다. 센은 마이클이 수단계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트리니티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매끄럽게 통합되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정체성이 하나여만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여러 조건과 상황에 따라 나는 다양한 모습을 띨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다 탈각시키고 하나의 무엇만이 나라고 여겼다. 이런 태도는 어떤 마음일까? 변화하지 않겠다는 마음이고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다는 마음이다.
단 하나만 있다고 여기는 정체성은 센이 강조하는 ‘설득과 협력’에 동참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배제해 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기도 어렵다.
더 나아가 센은 정의도 타인과의 접촉 범위가 얼마나 넓은가에 두고 있다. 다양하고 다층적인 정체성을 가질 때 우리는 타인을 더 가깝게 여기고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본국, 시민권, 거주지, 언어, 직업, 종교, 정치 성향, 그 밖에도 수많은 정체성은 우리 안에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고 그 정체성들 모두가 우리 각자를 자기 자신이 되게 해준다'(p.554)는 아마르티아 센의 말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