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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에세이] 커다란 욕망을 품은 자기 파괴(욕망하다)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4-12-23 23:56
조회
36

커다란 욕망을 품은 자기 파괴(욕망하다)

동화인류학 최옥현

 

한동안 내가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사실은 욕심이 없는 척하면서 욕망이 충돌하는 소소한 다툼이 있는 곳을 피해 다녔다. 라스무스는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욕망을 숨기는 일은 우울과 무기력을 불러온다. 우울과 무기력은 아무것도 안하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상태이다. 높은 자기 기준을 가진 라스무스는 여인네의 한마디에 무너지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무 가진 것 없는 요한나는 지역 공동체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나도 라스무스처럼 높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겉으로는 욕심이 없는 척했다.

인어공주의 욕망은 크다. 왕자에 대한 사랑을 말하지 못하고 왕자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인어공주의 욕망은 표현되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두꺼비의 엄마는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꺼비 아들은 우물 밖으로 나가길 원하고, 우물 밖으로 나가자 만족을 모르고 더 나은 삶을 갈망하며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누구나 잘 살기를 욕망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요한나 할머니의 이야기에 나오는 라스무스가 그러하다.

라스무스는 재단사가 되려다가 고향에 남아주길 원하는 어머니의 권유로 남의 농장일을 도우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하다. 라스무스는 엘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자신을 엘제가 받아주기를 욕망하였다. 그러다가 다른 남자에게 반지를 선물 받았다는 엘제의 거짓말에 화들짝 놀라 바로 고향을 떠난다. 한마디의 이별 인사도 없이 떠난 라스무스는 우울과 질병으로 추락한다.

다 무슨 소용이람을 외치는 그는 자신에 대한 커다란 자아상을 감추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하고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고 저기이다. 스스로는 직원을 여럿 거느린 재단사쯤은 되어야 했다. 높은 자신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라스무스는 자신의 삶을 파괴한다. 자기 파괴는 커다란 욕망을 품고 있다.

라스무스는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욕심을 내려놓은 말 같지만 실제로는 욕망을 감춘 말이다. 그 말은 아버지에게 배운 말이다. 라스무스의 아버지는 겨울 식량이 집에 가득 쌓일 때조차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라스무스 아버지에게 기쁨의 표현이었다. ‘아내와 열심히 살아가니 못난 나를 영주님 댁에서 인정해주시고 많은 겨울 선물을 보내주셨구나라는 말이었다. 라스무스의 아버지는 언어를 분화시키지 못하고 뭉뚱그려 표현한다. 아버지의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는 반복되는 말은 어린 라스무스에게 노력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결정론으로 들렸을 것이다.

소용없다는 것은 세상이 내 뜻대로만 되지 않다, 노력과 애씀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보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행동의 보답을 바라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등의 의미를 품고 있다. 라스무스가 사용하는 용법은 결과가 뻔하니 노력할 필요가 없다라는 패배주의를 담고 있다.

엘제의 라스무스에 대한 사랑도 어긋나 있다. 엘제에게는 사랑 고백은 남자가 해야한다는 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사랑 고백을 받기 위해 라스무스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라스무스에게 다른 남자에게 반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이 작전은 실패한다. 라스무스가 떠나자 그녀는 점쟁이에게 가서 라스무스가 돌아오도록 주술을 건다.

요한나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라스무스와 상반되는 요한나가 나온다. 요한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구빈원에서 생활을 한다. 어린 시절 라스무스와 친구였던 그녀는 너덜너덜 헤진 옷을 입고 항상 맨발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엘제 집의 하녀로 열심히 일한다. 거름을 실은 마차를 몰고 다니며 농장에서 소젖를 짠다.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던 그녀는 라스무스가 고향을 떠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녀는 찬송가 책을 살 돈이 없지만 찬송가를 모두 외워서 굳이 찬송가 책이 필요하지 않다. 고향에서 라스무스는 홀로 외롭지만 요한나는 관계의 그물망 안에 있다. 어린 시절에 요한나는 라스무스 엄마에게 도움을 받았고 이제는 라스무스를 도우면서 그 은혜를 갚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영주의 부인이 라스무스 엄마를 도왔다. 요한나는 구빈원에 살지만 감사하고 기도한다. 요한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아상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환경 조건 속에 스며들어 있다.

요한나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안데르센의 가난관을 엿볼 수 있다. 안데르센은 요한나를 부자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안데르센은 요한나를 금욕적으로 그리면서 아름답고 성스런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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