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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생각>에서는 만물이 하나임을 통찰하는 오강남 선생님의 ‘아하’ 체험을 매월 게재합니다. 비교종교학자이신 선생님께서는 종교란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고 의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의 연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하’ 체험이 가능하도록 깊은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요. 오강남 선생님은 캐나자 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로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의, 강연을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저서로는 『예수는 없다』,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세계 종교 둘러보기』, 『종교란 무엇인가』,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등이 있습니다.

속담으로 보는 세상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12-31 21:46
조회
65

 수단과 목적의 전도(顚倒)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



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 오강남 선생님
 

정치가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권력이 꽃과 같아서 열흘 이상 붉음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만다는 뜻이다. 특히 지금 권력을 쥐고 있지 못한 편에서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편을 향해 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권력이든 자기가 잡으려는 권력이든 권력이란 이렇듯 덧없다고 하면서, 왜 권력을 잡겠다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을까? 모두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이렇게 권력을 쥐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그 권력으로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일념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얼마전 사법고시 합격자들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본 일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 자체를 두고 자기들이 설정한 인생의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이것이 아직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떻게 사법고시 합격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심히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장한 일이고, 또 그 일을 위해 일로매진한 결과라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합격 자체가 정말로 인생의 궁극 목표인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은 이웃에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이 적어지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정의가 더욱 광범위하게 실현되도록 한다는 숭고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닌가? 사법고시 합격은 이런 원대한 목표를 향해 가는 첫걸음에 불과한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지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들이 목적으로 삼고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법고시 합격생만이 아닌 것 같다. 요즘 선거철에 돌입하면서 각종 선거에 입후보로 나서는 이들은 어떤가? 그들도 선거에 당선되는 것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태어났더라고 한 번 높은 자리에 앉아 목에 힘을 주면서 권세를 누려보는 것이 인생의 목표요 최고 가치라 보는 것이 아닐까?

너무 이상적인 공염불인지는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당선되기 원하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 내가 가진 재능을 더 효과적으로 발휘해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길 원하기 때문이라 하는 것이 정석이 아니겠는가? 당선은 어디까지나 내가 속한 공동체에 더욱 크게 봉사하기 위한 출발이요 수단일 뿐이다.

선거에 당선되는 것을 목적으로 보느냐 수단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정치 풍토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 생각된다. 내가 당선하는 것 자체가 최종 목표라면 상대방을 중상 모략하는 등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울 것이다. 그러나 당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긴다고 하는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 생각한다면, 나와 나의 상대자들 중 누가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섬길 능력의 소유자인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만은 아무튼 이론적으로라도 내가 당선되는 것보다 상대방이 당선되는 것이 사람들을 섬긴다는 나의 궁극 목적에 더욱 부합한다고 생각될 경우 스스로 사퇴하는 일까지 있을 수 있다. 물론 선거 도중 사퇴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더 큰 안녕과 유익이라는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 사퇴하는 것이다. 물론 사심 없는 마음으로 재어 보아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섬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나의 당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장자에 보면 안회가 위나라 백성들이 독재자 밑에서 신음하고 있기에 자기가 가서 돕겠다고 했다. 그의 스승 공자가 만류했다. 안회는 자기가 인격적으로 정치적으로나 국가 경영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추었는데 못 가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했다. 공자는 그래도 아직 한 가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하고, 그것이 바로 마음을 굶기는 일’(心齋)이라고 했다. 내 속에 있는 모든 이기적 욕망을 비우고 나서 정치판에 들어가야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인가장자를 몰랐던 간디도 결국은 장자와 같은 원리에서 정치에 참여했다. 그가 실천한 진리파지’(眞理把持)의 원리는 나나 우리 편만의 이익이 아니라 상대방을 포함하는 우리 모두의 공동 이익에 이바지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출세와 당리당략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이렇게 당선이나 집권이 결국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한 수단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할까?

전체 4

  • 2024-12-31 23:02

    마음을 굶기는 일. . 새해 새 날 아침에 가장 필요한 일 같습니다.
    새해 소망을 무엇으로 가질 것인가? 마음을 굶긴다. . .
    꿈은 비워진 내 마음의 크기만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2025-01-05 12:20

    정치가들의 사심은 눈에 버젓이 보이고, 그 사이즈가 거대한 것 같아서 욕을 하곤 했는데 나는 어떤가 하는 질문이 되돌아옵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 전에 사심으로부터 나를 먼저 구해야 하겠네요. 국가의 정책이 내 사심과 같은 방향일 때, 내가 얻을 이익만 생각하다보니 다른 곳에 미칠 영향은 못 보고 박수를 치기도 했지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꼭 정치가만 정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멈추지 않고 글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내는 것도 정치 활동에 참여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부가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 2025-01-06 17:50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더냐. 나와 가족의 성공을 삶의 목표로 비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요즈음, 이기적 욕망을 내려놓는 일에 대해 사뭇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음을 채우는 일만 생각했지, 굶기는 일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배도 마음도 좀 굶어도 괜찮겠다, 아니 굶어야겠다 싶습니다.


  • 2025-01-07 15:32

    돈, 지위 그 자체가 목적임을 대놓고 내세우는 드라마도 많던데요.
    화무십일홍의 홍은 돈과 지위가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또 영원하기를 꿈꾸지만 그대로 되지 않는 좌절의 의미도 포함된 것 같고요.
    화무십일홍 중 ‘무’ 즉, 없어짐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홍’이라는 목적 그 자체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는 글인 것 같습니다.
    이번 회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