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자연학 실험실

하늘과 바람, 땅에게 배우다

[고래 이야기] 범고래의 살인 혹등고래의 노래

작성자
5dalnim
작성일
2024-12-31 22:55
조회
49

범고래의 살인, 혹등고래의 노래



며칠 전 연합뉴스에 죽은 새끼를 최소 17(무려 1600km)을 업고 돌아다녔다고 보고된 엄마 범고래 탈레쿠아가 새 새끼를 데리고 미 워싱턴주 퓨젓사우드만(Puget Sound)에 다시 나타났다는 기사가 났다(https://www.yna.co.kr/view/AKR20241226046800009?input=1195m). 죽은 아기를 데리고 벤쿠버섬 주변에 나타났던 것이 2018년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아이도 탈레쿠아도 건강하기를 빈다.


2024년의 마지막 날, 한 해를 천천히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또 여러 어려움을 힘차게 타고 넘자는 마음에서 SBS스패셜로 방영되었던 고래와 나(2023)를 시청했다. 엄청나게 다정하고 빌보드에 진입할 정도로 노래 실력이 뛰어난 혹등고래(범고래에게 위협당하는 물범을 구해주기도 한단다), 물 위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져 주변을 홀리는 귀신고래, 어부들과 협업해서 사냥하는 인도네시아의 돌고래, 맘마 먹는 향고래, 천사처럼 하얗고 예쁜데 지구 온난화로 먹잇감을 잃은 북극곰의 공격에 노출된 벨루가 등 다양한 고래들의 생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들은 종류가 많고, 엄청 크고, 무엇보다 다양한 습성을 지녔다. 그리고 모두가 해양 쓰레기와 기후 변화에 직접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범고래 부족이니 만큼 범고래 이야기에도 주목했다. 놀랍고도 씁쓸했다. 범고래는 Killer whale이라고 불릴 정도로 바다에서는 최고 포식자다. 그러나 그들에게 먹잇감이 될 수 없는 인간(고기가 양도 맛도 없어 보임)에게는 의외로 상냥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이를 이용해서 전 세계 많은 수족관이 범고래를 고래 쇼에 출현시키기 위해 훈련한다고 한다.


고래와 나에서 소개하는 범고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양공원에서 47세의 나이로 죽은 암컷 키스카. 키스카는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태어나 3살 때 포획되어 여러 수족관을 전전하다가 45년이나 지나 드디어 수족관을 벗어나게 되었다. 생의 마지막에는 십 년 이상을 홀로 온타리오의 수조에 갇혀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돌고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이 온타리오 수족관에는 한때 6명의 범고래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모두 키스카의 자식들인데 하나씩 하나씩 죽고 마지막에는 키스카 홀로 남았다. 덧붙이자면 야생에서 범고래 암컷은 80세까지, 수컷은 60세까지 산다.


수족관에 홀로 남게 되었을 때, 키스카는 크게 소리를 내어 저 멀리 있는 다른 고래들과 소통하려고 시도했다. 그 노력에 보답을 받지 못하자 나중에는 수조 유리나 벽에 몸을 찧는 등 자해를 했다. 결국 극심한 우울증으로 무기력에 빠져 물 위에 그냥 떠 있게 되었다. 키스카를 죽음으로 몬 것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모계 사회를 꾸리고 일족의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며 살아가는 범고래의 본성과 전혀 맞지 않는 조건에서 키스카가 겪었을 비참함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키스카처럼 우울증에 시달리는 범고래도 많지만, 어떤 경우는 인간을 향한 노골적인 적대와 분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 범고래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는 살인을 포함해 154건이라고 한다. 모두 수족관에서 일어났다. 특히 2010년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범고래 탈리쿰이 조련사를 물고 내리쳐 끔찍하게 죽이기까지 했다. 범고래의 본성이 바뀐 것이다. 왜인가? 범고래는 하루 140마일, 환산하면 225km까지도 헤엄을 칠 수 있는데 수족관에서는 20m도 되지 않는 수조에 살아야 한다. 어떤 수족관은 수심이 자기 몸보다 얕아서 잠수도 못하는 채로 하루 종일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물에 떠 있어야 한다. 이렇게 과도하게 햇빛에 노출되면 등지느러미가 녹아서 스러진다. 게다가 범고래들은 영특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쇼에 동원될 때가 많은데, 쇼를 위한 훈련을 하려면 항상 배고픈 상태여야 한다. 바다 최상위 포식자가, 인간이 주는 먹이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것이다. 야생에서는 있을 수 없는 범고래들의 공격성은 당연하다.


인문세는 지난 가을에 서울대공원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나는 심지어 곰들 앞에서 동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때 내가 만난 곰들도 평균 행동 반경이 25~30제곱 킬로미터 정도라고 하니 그들에게는 우리가 너무나 갑갑했을 것이다. 그 곰은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동물원에는 가지를 말아야 하는 걸까? 동물원을 어떤 마음으로 보아야 할까? 갇힌 동물들에게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여야 하는 것일까? 한동안 이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듯하다.


내년에 인문세는 해양 인류학을 한다. 바다가 품은 많은 이야기들 중에는 고개 돌리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을 것이다. 바다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용기를 갖고 들어보고 싶다. 그럼 어떻게 들어야 할까? 고래와 나에는 고() 로저 페인 박사가 혹등고래의 노래를 물속에서 녹음해서 손으로 악보를 받아쓰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감동적인 악보였다. 낯선 존재를 이해하려는 페인 박사의 다정하고 인내심 많은 마음이 느껴졌다. 박사의 너머에서 바다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는 혹등고래도 그려졌다. 우리도 박사의 악보를 따라 혹등고래처럼 노래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노래할 수 있다고 해서 혹등고래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거나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의 노래를 흉내낼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종들 사이에는, 그렇게 아주 조금 공명이 허락된다. 바다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