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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무기력한 ‘기대’의 사회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07-11 17:58
조회
117

무기력한 기대의 사회

 

“‘희망이란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연의 선함을 믿는다는 뜻인 데 반해, 내가 여기서 쓰는 기대라는 말은 인간의 계획과 통제에서 나온 결과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희망이란 우리가 바라는 선물을 가져올 사람에게 바람을 갖는 것이다. 기대란 우리가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을 생산해주리라 예측되는 과정으로부터 만족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다.”(학교 없는 사회, 이반 일리치 지음, 안희곤 옮김, 사월의 책, 208)

 

이반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의 지금까지의 논의를 이어오며, 7장에서 학교화된 사회와 탈학교화된 사회를 기대희망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그가 여기에 기대와 희망이라는, 표면적 의미는 비슷하지만 기저에 깔려 있는 전제가 명확히 다른 두 단어를 가져오는 데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만 그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두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기대와 희망으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지, 그랬을 때 우리는 무엇이 달라질지 한번 따라가 보자.

원시인들에게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홍수나 가뭄, 혹한(酷寒)과 혹서(酷暑)와 같은 재앙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에서 그로부터 먹을 거리와 누울 자리를 얻기도 하는 위대한 자연의 힘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이반 일리치에 의하면 그들에게 자연은 고통과 악과 같은 재앙 속에 희망이 들어 있는 판도라 상자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감히 어떤 조작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이 위대함을 자신들의 조건으로 바라보고,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구할 수 있는 먹거리와 잠자리에 감사했다. 그들은 자연이 자신들에게 내려줄 것이라는 희망에 의지해 살았다.

이런 희망이 기대로 바뀐 것은 고전기 그리스부터라고 이반 일리치는 말한다. 그는 그들이 판도라 신화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판도라를, 인간에게 온갖 재앙을 가져온 여성으로만 기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그녀가 희망 또한 지키고 있었음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재앙에 맞서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러 제도와 건축물, 예술품들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자연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그들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명을 힘이라 여기고 이를 교육했다.

여기까지 따라왔을 때 두 세계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전자는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다가올 선물 같은 일에 희망을 갖는다면, 후자는 내 앞에 펼쳐질 거라 예상되는 많은 어려움을 제거하고 극복함으로써 삶이 더 나아지길 기대한다. 전자는 그 희망이 삶을 이끌고 자연이 가져올 혜택과 신이 베풀어줄 은총에 의지한다면, 후자는 인간의 힘이 삶을 이끌고 인간이 이룬 문명과 인간이 만든 환경에 의지한다. 전자의 세계에서 인간은 겸손해지지만, 후자의 세계에서 인간은 오만해진다.

두 세계에서 인간은 뭔가를 하긴 하지만, 그 행위를 하는 인간의 이미지도 전혀 다르고 그 행위를 이끄는 원동력도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문명을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후자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전자는 수동적이이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후자로 대변되는 학교화된 사회를 무기력한 사회라고 말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힘이 인간에게 있고, 그런 사회를 위해 인간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 무기력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이 부분을 더 고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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