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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2024년 학술제 후기] 동화 인류학, 기술 인류학 후기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5-01-06 00:55
조회
78

2024 학술제 후기/손유나

동화 인류학 : 안데르센 동화 구연

1226일 학술제에서 동화 인류학 팀 선생님들께서 동화구연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저는 식후 약간 노곤하게 풀어진 채, 동화를 들었는데요,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떠지면서 오싹해졌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썼던 안데르센은 사람을 현혹하는 마녀의 꼭두각시였나? 내 눈앞에 있는 저 여자는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던 할머니인가? 아니면 날카로운 손톱으로 치통을 유발하는 마녀인가?? 순식간에 이미지가 바뀌고,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을 의심하게 되어 저는 불안에 떨었습니다.

손수 그린 그림을 보며 들은 동화는 그림의 도움을 받아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눈을 감고 들은 이야기는 내 몸속으로 침잠하여 주인공이 느낀 고독을 뼛속까지 깊이 느꼈죠. 문자나 영상이 아닌 구술로 전달되는 이야기는 흡입력이 대단하여, 저는 이야기를 외부에서 보는 자가 아니라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었고, 주인공처럼 기쁘고, 불안하고, 외로워했습니다. 동화 인류학 팀의 동화구연 덕분에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을 알고, 나이가 들면서 무뎌졌던 온갖 감정 세포들이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답니다.

 

기술 인류학팀 : 먹다, 일하다

이어서 기술 인류학 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앞서 있었던 마음 인류학의 동사, ‘이해하다, 생각하다, 번역하다와 비교하면 조금 더 실제적인 활동과 관련된 동사가 주제어로 등장했습니다. ‘일하다, 먹다, 대화하다와 같이 삶의 바탕을 이루지만 일상적인 활동이라 한 번도 주목하지 않은 동사들이죠.

내 몸에 영양을 공급하는 개인적인 먹기를 넘어서, 먹고 싸는 활등을 함으로써 스스로가 생태계의 관으로서 기능하다니. 생태계 장기의 일부로서 건강하게 먹고 잘 싸야겠다는 책임감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내 생각을 상대에게 알리고 관철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나의 확장을 위한 대화하기, 서류 종잇장 너머에 있을 사람을 떠올리며 하는 일하기처럼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의 본질과 목표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는 제 삶을 더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유리 선생님의 농사에 어울리는 동사를 찾아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농사에는 농부가 필요하지만, 생산물을 직접 키워내는 일은 토지가 합니다. 농부가 최선을 다해도 농사의 결과는 매년 달라지고, 어떤 변수가 작용했는지는 짐작만 합니다. 이런 면이 제 직업과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합니다. 지금은 달리 생각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성적이 곧 저의 성적이라 느꼈죠. 수업시간에 어느 부분이 중요하고, 함정 문제가 출제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결과는 제 마음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똑같이 가르쳐도 아이마다 성적이 다르고, 실수하지 말라고 강조했던 문제를 틀리고 오면 차라리 제가 직접 시험을 보고 싶습니다.

농부는 가꾸고 돌보는 일을 하지요. 농사의 결과가 어떨지는 농부의 손을 떠난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도 농사가 잘 안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토지를 공부하고, 토지에 맞는 작물을 심어 키워내고, 신성한 생명을 돌보는 농부의 모습은 제가 어떤 태도로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지 일러줍니다. 아이들을 살피고,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지식을 전달해야죠. 토지와 날씨라는 변수를 수용하는 농부처럼 학생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도 수용하고 그저 최선을 다해 돌보는 일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이겠죠. 농사에 어울리는 동사, 농부가 토지와 생산물과 관계 맺는 방식, 농부의 역할과 모습은 오래도록 깊이 씹어보고 싶습니다.

전체 2

  • 2025-01-06 17:57

    농부의 작물을 돌보는 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떠올리시다니, 역시 유나쌤의 직관은 대단하십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디서든 배움은 따라오나 봅니다.


  • 2025-01-07 15:27

    그림으로 보며 눈으로 빨려들어가고, 눈을 감고 온 감각을 귀에 집중시켜보기도 하고, 동화 구연의 매력이 다시금 생각나는 후기입니다.
    키우는 것은 내몫, 크는 것은 이미 그들의 몫이네요. 키우다, 크다. 키워가다, 커가다. 동사에 대해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