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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말/호시노 미치오] 10장 인디언들의 기도(2/2)

작성자
덕후
작성일
2025-01-06 13:24
조회
51

일본어 강독팀(매주 월 오후 4-6)에서 읽은 호시노 미치오의 魔法のことば自然니다.

일본어 강독팀은 이한정 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김완수 선생님, 이종호 선생님, 오선민 선생님, 임영희 선생님, 권수현 선생님, 조혜영이 함께 번역하기 시작했으며 책의 뒷부분은 일부 선생님들이 마쳤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신 권수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마법의 말10장을 끝으로 연재가 마무리됩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알래스카에서 살기 시작하고 올해로 18년이 되었습니다. 어째서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알래스카에 있는 걸까, 그 무렵 문득 이리저리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20대나 30대쯤에는 알래스카의 자연을 동경하고 있어서 내가 왜 알래스카에 있는 걸까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쭉 달리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40대를 넘기고 제가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18년이나 지나고 보니 그런 의문이 정말 아무렇지 않은 때에 머리를 스친 거지요. 인간의 일생은 한 번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부터라도 알래스카에 계속 머무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알래스카의 생활은 저에게 있어서 뭔가 매우 큰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다지 똑 부러지게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생각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것이 떠오릅니다. 그 하나를 기요사토(清里)와의 관계를 포함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는 야구만 하고 있었지만, 집 가까이에 영화관이 있어서 3편 동시 상영 영화가 언제나 걸려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자주 칼싸움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 치코와 상어라는 영화가 온 거지요. 그것은 처음 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남태평양을 무대로 원주민 소년과 상어의 교류를 그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동시에 그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이 쇼크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자연이라는 것을 어린아이이면서도 의식했습니다. 세계라고 할까, 그런 것이 확실히 있구나하고 느꼈던 거지요. 어른이 되고 다시 한번 보니 그다지 대단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어릴 때 봤던 남태평양의 저 커다란 망망대해는 역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요사토에 여러 인연이 있어서 학생시절 열아홉이나 스물 무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니구치 목장에 몹시 신세를 졌습니다. 저의 친구도 도중에 다니구치 씨의 집에서 일하게 되고 정말 기요사토에는 자주 다녔습니다. 그 무렵은 아직 시골이라 역에서부터 아주 조용해지는 길을 언제나 걸어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 친구가 산에서 조난 당했는데, 그 정말 바로 전에 둘이서 기요사토에 갔던 때의 일을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밤늦은 열차로 도착하면 엄청나게 별 총총한 하늘로 다니구치 씨도 섞여서 별을 보면서 함께 걸었던 거지요. 그가 산에서 조난 당하고 죽어 버린 것은 그로부터 머지않아 그런 것인데 그는 어린 아이 때로부터 친구로 이제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자고 서로의 꿈을 의논할 수 있는 놈이어서 매우 쇼크였습니다. 그때 저는 스물 한 살이었는데 1년 정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던 거지요. 제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인생 속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그런 것이 정말 잘 모르겠고 몸부림치면서 그런데도 뭔가 결론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급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기가 몹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나 그 대답이 겨우 제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좋아하는 것을 해 나가자고 생각한 거지요.

  알래스카에 처음 갔던 것은 19살 무렵으로 그때는 그저 여름 한철을 에스키모 마을에서 보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거기 가고 싶구나 하고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고가 있고 1년쯤 생각했을 때 정말로 같잖은 표현으로 하면 알래스카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거지요. 아주 큰 자연과 관련되고 싶다고 하는 생각이 제 속에서 견딜 수 없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친구가 죽었다는 것으로 제 하나의 청춘이 이미 거기에서 한 번 끝났구나하는, 그런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어쩐지 저는 알래스카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만이 남았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알래스카에 가서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할까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이 되어도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만 어쨌든 알래스카에 다시 한번 돌아간다는 생각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 와중에 사진을 생각해 낸 것이지요. 찍어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보는 것은 매우 좋아했으니 알래스카에서 사진으로 뭔가를 해 나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 아주 큰 자연에 관련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 그것도 어설픈 자연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 자연과 관련되어 살고 싶었던 거지요. 그런 생각을 알래스카가 이루어준다고 하는 예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로 건너갔습니다. 처음에는 5년 정도 있고 다시 어딘가 다른 장소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그대로 자리 잡고 살다 벌써 18년이 된 셈입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알래스카가 지금까지 저를 머무르게 했을까 생각해보면 그 자연이 여전히 저를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무슨 말이냐면 알래스카의 자연은 역시 터무니없이 큰 거지요. 저는 항상 좀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백 년 전에 일찍 태어났다면 더 옛날 에스키모의 생활을 볼 수 있었겠지라든가 조금 다른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을 볼 수 있었겠지라든가 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로 말하면 버팔로가 대평원을 떠돌고 있고 거기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생활이 있어서, 그런 생활은 지금은 이미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역시 여기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바로 아주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하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알래스카를 하나하나 제가 여행하는 가운데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알래스카의 자연 중에서 카리부의 대이동을 처음 봤을 때가 그렇습니다. 북극권의 툰드라에서 계속 카리부를 기다리면서 카리부가 올지 말지도 모르는 채로 반 개월 가까이 계속 캠프를 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느날 지평선으로부터 카리부 몇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점점 지평선을 뒤덮어 오는 거지요. 그것이 곧장 이쪽을 향해 오고 이제 끝없는 무리가 베이스캠프를 통과해 지나갑니다. 예닐곱 시간에 걸쳐 모든 무리가 통과하고 다시 지평선에서 사라져 고요함이 돌아옵니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을 때는 물론 저 혼자밖에 없었지요. 장대한 풍경이 눈앞에 있었지만 그것을 보는 것은 저 혼자. 그런 때에는 늦게 태어나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까지 듭니다.

  지금은 멸종에 직면하고 있는 동물은 아마 없겠지만 물론 지금 이후 알래스카도 변해가겠지요. 늑대도 곰도 그렇게 변하지 않고, 한 시기에 멸종했다는 사향소, 빙하기부터 살아남았던 소과 같은 동물이지만 남획으로 멸종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회복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환경이 조금씩 변해가는 가운데 과연 카리부의 계절이동이 살아남을지 어떨지. 그것만으로 저는 그런 하나의 시대로 충분했다고 하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매우 강하게 느낍니다.

  저를 알래스카에 머물게 해온 것은 분명히 그러한 자연의 마력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여전히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알래스카가 그냥 아름다운 자연일 뿐이었다면 저는 알래스카에 그 정도로 길게는 있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활이 있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거기에 품는다는 것입니다. 백인이든 에스키모든 인디언이든 여러 인간이 알래스카 안에서 생활하면 저절로 갖가지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러한 문제를 껴안으면서 커다란 자연과 인간은 어떻게 관계 맺어 가는 것일까. 그 생각이 저를 알래스카에 계속 끌어당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4, 5년 사이 남동알래스카를 테마로 쭉 찍어왔는데 거기는 알래스카의 남쪽, 정확히 캐나다와 연결된 빙하와 숲으로 뒤덮인 땅으로 바다 쪽은 다도해라는 지역이지요. 거기에 클링깃 인디언과 하이다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에스키모나 내륙의 아사바스칸 인디언의 것과는 전혀 다르지요. 그런 독특한 자연관에 흥미가 있어서 그때부터 같은 세대로부터 옛 원로까지 많은 인디언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친구에 관한 것입니다.

  마침 몇 주 전에 싯카라고 하는 동네에 갔다 왔습니다. 여기는 예전부터 인디언의 땅이었는데 그 후 백인이 들어왔고 지금은 인구수로는 역전되어 버린 동네입니다. 그렇지만 클링깃 인디언의 사회는 지금도 강력하게 남아있는 것이지요. 그들이 백년 만에 토템폴을 세운다고 해서 그 세리모니에 참석했던 겁니다. 거기서 여러 친구와 재회했는데 그 중에 윌리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네다섯 살 많지만 몹시 마음이 맞는 친구로 굉장히 우습고 눈이 예뻐요. 그는 베트남 귀환병이지요. 틀림없이 여러분 중에는 베트남 전쟁과 알래스카의 네이티브라는 것은 별로 연결되지 않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많은 에스키모와 인디언들이 베트남 전쟁에 나갔습니다. 윌리도 그중 한 사람인데 그에 의하면 베트남 전쟁에서 거의 5만 명의 미국군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 후 그 3배인 15만 명 정도의 귀환병이 자살했다고 하는군요. 윌리도 또한 귀환 후 정신적으로 이상해져서 자살을 시도했던 한 사람입니다. 다만 그때에, 다시 말해 그가 목을 매달았을 때에 당시 7살이었던 아들이 쭉 자기 아버지의 몸을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자기 아들이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 되는 그 일을 계기로 그의 인생은 대단히 변화했고 그때까지 잊고 있던 생활로부터 조금씩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클링깃 인디언이라고 하는 것으로 자신의 핏줄에 눈뜬 것입니다. 저에게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것은 상당히 먼 세계였지만 그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매우 가까운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클링깃 인디언 사회란 하이다 인디언 사회도 그렇습니다만 두 개의 가계로 나뉘어 있습니다. 가계에 관한 것을 씨족이라고 하는데 큰까마귀 씨족과 흰머리수리 씨족이 있고 거기에서부터 더욱 작은 씨족, 회색곰이라거나 연어라거나 그런 가계로 나뉘어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클링깃 인디언 사람들을 만나 당신은 어느 씨족입니까라고 물으면 바로 답해줍니다. 자신은 연어입니다, 곰입니다하고. 그런 사회구성 안에서 그들은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좋은 면뿐만이 아니라 어딘지 얽매인 세계이기도 하지만요.

  윌리는 회색곰 씨족에 속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클링깃 인디언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원로이고 세리모니에는 회색곰 씨족을 대표해서 윌리가 인사하러 나갔습니다. 민족의상을 입고, 그런데 머리에는 베레모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베트남 귀환병의 심볼인 거예요. 그는 그 베레모를 쓴 모습으로 자신이 여기까지 어느 정도 긴 여행을 해 왔는지 긴 연설을 했습니다. 베트남에서 돌아와서부터 자신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마약에 알콜, 몹시 황폐해진 생활 가운데 몇 번 감옥에 들어갔는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누구인지 계속 찾아서 마지막으로 클링깃 인디언이라는 곳으로 돌아오고자 했다. 그것을 매우 진지한 말로 그는 이야기했던 거지요.

  밤에는 포틀래치라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진수성찬을 모두가 먹고 나서 춤을 추는 축하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밤중까지 각각의 씨족이 전통적인 춤을 차례로 펼치는 매우 중요한 세리모니인 거지요. 그것 자체로도 감동적이지만 특히 윌리의 춤은 아름답게 스피리추얼한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포틀래치도 끝나고 회장을 뒤로 하려고 했을 때 스웨트 롯지(sweat lodge)에 갈까하고 물었습니다. 잘 설명할 수 있을지 어떨지 불안하지만 스웨트 롯지란 비젼 퀘스트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디언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혼과 만나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 산을 여행하는 것을 비젼 퀘스트라고 부르는데, 요컨대 혼자서 산속을 겨우 물만 마시면서 여행하는 가운데 다른 무대로 들어갑니다.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혼과 만난다고 하는 나바호나 수라는 인디언을 중심으로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것인데요. 스웨트 롯지 그 자체는 사우나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저도 말로만 듣고 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윌리가 언젠가 데리고 가 준다고 약속했던 거지요.

  그 밤, 갑자기 윌리가 스웨트 롯지에 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 한 명을 포함하여 6명의 무리로 트럭에 함께 타고 교외의 숲으로 향했습니다. 머지않아 매우 큰 모닥불이 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모닥불을 지키는 할머니가 있어서 그녀에게 소개받으면 옆에 있는 나무로 짜인 캔버스가 걸린 텐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냐면…… 요컨대 자기 안의 생각을 각자 순서대로 이야기하는 거지요. 모두가 벌거벗고 불 주위에 모여서 윌리는 그때 범고래의 노래라고 하는 옛날부터 클링깃 인디언에 전해지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것은 아주 정말 멋진 노래였는데 그때 이미 그는 제가 알고 있던 윌리가 아니었지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밖으로 나와 할머니가 담뱃잎을 태운 연기를 모두의 몸에 뿌리고 독수리의 깃털로 신체를 두드려서 신체를 깨끗이 합니다. 그리고 다시 스웨트 롯지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앉으면 할머니가 모닥불 속에서 대여섯 개, 시뻘겋게 달궈진 큰 돌을 옮겨오고 스웨트 롯지 안에 놓고 입구의 문을 닫습니다. 완전한 어둠이지요. 그 속에서 재차 노래가 시작되고 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쭉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 각자가 말하고 기도하는데 이야기하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반드시 담뱃잎을 달궈진 돌 위에 올립니다. 그러면 작은 스웨트 롯지 안에 연기가 충만하고 더욱 엄청난 열기가 퍼지는 거지요. 그것이 한 바퀴 돌면 다시 텐트의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돌을 옮겨 옵니다. 그렇게 해서 점점 돌이 늘어나는 가운데 쭉 우리의 기도나 생각을 계속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만 함께 간 5명의 인디언 중 여성을 제외한 전원이 베트남 귀환병이었던 거예요. 에드라는 이름의 인디언은 자신이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죽인 아이의 일이 잊히지 않는다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런 약간 뭔가 이상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도 굉장히 신기한, 그렇지만 절실한 체험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기도한다든가 일단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자신뿐 아니라 모두가 여행을 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어둠과 같은 것을 자기 안에 갖고 있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런 모험을 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던 거지요. 모두가…… 저 자신도 포함하여 자기 안에 극복하고 싶은 어둠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뭔가를 껴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제가 알래스카에 온 것도 바로 그런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떻게 18년이나 알래스카에 있었을까. 그 답은 틀림없이 윌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내 안에 극복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되돌아보면 나는 알래스카의 자연에 북돋아져 왔구나라고, 그리고 그런 여행 도중에 내가 알래스카에 들어오게 되어 정말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스웨트 롯지에서 체험한 그 순간은 바로 내가 알래스카에 오래 머물렀던 그 커다란 이유를 체현하는 순간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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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6 17:38

    한걸음 한걸음 내딛듯이 꾸준히 번역하시고 연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글을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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