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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학 실험실

하늘과 바람, 땅에게 배우다

[명왕성 퇴출 사건 – 동광 살롱] 후기 – 방관자 아닌 참여자로 살아가기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5-01-09 16:36
조회
77

 

 수금지화목토천해명아홉 개의 태양계 행성을 외울 때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부터 이름의 앞글자만 떼어 외우곤 했었지요. 2006년에는 행성 중 태양으로부터 가장 먼 명왕성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명왕성에서는 아무일도 없었고, 명왕성을 바라보는 지구에서 일어난 일이죠. 그후 우리는 수금지화목토천해로 태양계 행성을 외우게 되었습니다. 동광살롱 12월 모임에서는 그때 그 사건을 주목한 명왕성 퇴출 사건이라는 영화를 보고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김동광 선생님께서 토론에 앞서 미니 강의를 해주셨는데요. 선생님의 뜻밖에 강의가 반갑고 재미있어서 수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김동광 선생님께서는 범접할 수 없는 과학, 불변의 진리라 믿는 과학이 끝없이 만들어지고 있고 지금도 새롭게 또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브루노 라투르의 Science in action을 인용하시며 이미 만들어진 과학지식이 아닌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과학(science-in-the-making)”으로서 바라보라고 하셨는데요. 2006년도에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과학이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사건이었지요.

  1930218일에 미국 로웰 천문대의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가 명왕성을 발견합니다. 미국은 사상 최초로 미국인이 행성을 발견했다는 기쁨에 흥분했지요. 얼마나 기뻤는지 우리가 잘 아는 만화영화 미키마우스에 나오는 강아지 이름을 플루토라고 지었을 만큼요. 하지만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던 명왕성은 갑자기 76년간 이어오던 행성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왜냐고요?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명왕성보다 30% 더 큰 에리스(Eris)가 미국에 의해 발견되자 에리스를 행성으로 인정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생겼고, 행성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냐는 큰 질문에 이르게 되었지요. 국제천문연맹(ISU)에서 행성의 정의를 세우게 됩니다. 이전부터 행성이라기엔 애매하게 여겨져 왔던 명왕성은 이번 일로 그 지위가 확실하게 결정되지요. 재미있는 것은 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방식입니다. 각국의 위원들은 이 문제를 위해 모여서 토론하고 거수로 표결하여 마침내 명왕성을 퇴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과학이 몇몇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서 결정되다니! 행성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본 적 없는 저로선 제가 안다고 하는 진실, 상식이 정말로 믿을 수 있나 하는 질문과 함께 작은 충격이 왔습니다. 어떤 존재가 정의에 의해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참 이상하게 느껴졌고요. 그렇다고 정의를 안 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김동광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고,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은 리얼리티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그것은 절대적이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고 지금 이순간에도 이런저런 논의들 속에서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겪는 상황에서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을 통해 근거를 삼고 규정을 만듭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현재 행성의 정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일어나는 일들에 어떤 것도 좋다 나쁘다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세계를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표준 가설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만 우리가 좀 더 성찰적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과학을 너무 견고한 무언가로 받아들이면 위험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그 속에 숨은 이데올로기, 이해관계 등에 의견을 내고,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하는 방식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모여 토론하는 것도 과학 만들기에 참여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회적 문제에서도 누가 만들어 놓았다고 혹은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수수방관하기보다는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득 시민들이 거리에서 흔드는 기발한 문구의 깃발들이 떠오릅니다.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참고하세요

“>

전체 1

  • 2025-01-09 19:24

    In action. 진행중, 계속 진행중, 계속 진행중이기만 할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후기네요.
    회사 송년회가 있어서 이번 회차에는 참석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는데요.
    기헌샘의 후기로 전해들으니 그래도 많은 위안이 되면서도, 동시에 엄청 그 시간이 재미졌겠다는 상상도 드네요.
    거기 늘 그 자리에 그것은 있었으나, 명왕성이었다가 토론으로 그 존재가 ‘퇴출’되기도 한다는 점이 재미있네요.
    올려주신 다양하고 기발한 시위 깃발도 재미있습니다.
    어둠의 폭력을 이기는 것은 더 큰 힘이 아니라, 저 깃발이 내세우는 기발함과 유머, 비틀어 보기에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