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2024 학술제 후기] 제다실 마음 인류학 후기
제다실 마음 인류학 후기
인문세 제다실 9시 정각이 되어 시작하였는데요. 마음 인류학, 기술 인류학, 동화 인류학 팀 순으로 발표했습니다. 올해 화요 마음 인류학은 『야생의 사고』를 시작으로 『세계 끝의 버섯』까지 여러 권의 책을 함께 읽고 글을 썼어요. 먼저 유나샘, 진진샘, 보나샘께서 발표해 주셨어요. 세 분의 글에 함께 읽었던 책이 골고루 등장했지만, 주로 『야생의 사고』가 기억이 나더군요. 실용과 과학 중심의 세계관과 주술적 세계관의 부딪힘, 내가 주술적 세계관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왜 그런지, 또 받아들일 때 어떤 의미에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할지, 세미나 중 함께 얘기 나누었던 부분이었어요.
유나샘의 발표는 실용적, 과학적 사고를 넘어 주술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고군분투기였어요. 과학의 무오류성은 깨졌지만, 주술적 사고에 대해 스스로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힘듦에 대해 차분히 글로 풀어 주셨어요. 진진샘 역시 『야생의 사고』에서 기호의 분류 체계에 관심을 가지시면서 그것이 세상을 인식하고 또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태도와 연결되지 않을까? 또 거기서부터 주술적 사고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풀어 주셨어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토론이 ‘주술적 사고’, ‘야생의 사고’에서 주술과 현대의 주술, 그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으로 그 방향이 이어졌어요. 이한정 선생님께서 덧붙여 의견을 주시길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야생의 사고’에서 주술은 공동체적 주술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주술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현대는 개인, 가족 집중하여 주술의 힘을 쓰려하죠. 국가 운을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국가 운을 방패 삼아 결국 개인의 안위를 위해 이용하려는 것 같아요. 이어 박순샘에서 던져주신 키워드 ‘소리’도 주술적 세계관과 연결했을 때 재미있었습니다. 제사에서 소리 내어 읽는 ‘축문’은 그 자체로 의례의 과정이자 주술이지요. 실제로 읽으시면서 조상과 연결된 느낌이 들게 되셨다고 하셨어요. 단지 소리를 내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또 어떤 마음으로 읽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과 소리에 담긴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강평샘과 연주샘은 ‘목적론’에 대해 다른 의견을 보여주셔서 함께 얘기할 거리가 많았어요. 목적을 설정해 두고 한 방향으로 살아가는 우리 일상들을 차분히 되짚어 주셨어요. 목적을 따고 갖지 않고 길 위에 걸음을 내딛는 산책의 순간들을 묘사해 주시면서 그 전에 목적지를 향해 가 있는 시선이 산책하는 동안 길 위에 세부적인 하나하나에 눈길이 가더라는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연주샘은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함께 소개해 주셨는데요. 연주샘은 인문세에서 오랫동안 영문 번역 세미나를 이끌어 오고 계시죠. 『세계 끝의 버섯』에서 애나 칭은 특정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버섯을 발견하는 그 자체에 기쁨을 느끼죠. 그런데 이 ‘목적’이라는 것을 놓고 생각해보면 연주샘이 작업하시는 ‘번역’이 참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아요. 번역이라는 활동은 저자를 보고 가면서 그 활동의 목적을 거부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생기더군요. 이 자리에서 명확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발표와 토론에서 다음 질문거리를 얻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해의 인류학 공부가 또 마무리되었습니다. 내년에는 화요 인류학은 바다로 항해를 떠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바다가 우리를 또 얼마나 멀리 데려갈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