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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Bronislaw Kasper Malinowski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1』 경작지에 주술을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2-11 17:54
조회
63

동화인류학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김유리 2025-2-11

 

경작지에 주술을

 

 

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1884~1942)

-폴란드 출신 인류학자, 영국 사회인류학의 창시자

 

 

관점은 늘어난다

인류학은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는 공부법이다. 여기, 트로브리안드인들이 있다. 그들은 “죽은 산호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작은 섬들”에 “흩어져서 거의 벌거벗고 살아가는 수천 명의 미개인들”이고 그들의 공동체는 작고 초라해서 무시해도 좋을 만하다고 보는 관점이 하나 있다. 이에 비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든 간에, 트로브리안드인은 스스로를 농부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땅에 진정한 농부의 열정을 쏟아붓”고 “신비한 기쁨을 경험”한다는 입장이 있다. 이런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연구자의 작업이다. 인류학의 현장 연구 방법을 제창한 말리노프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트로브리안드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얌 경작지에서, 야자숲 사이에서, 혹은 타로 밭에서 그를 만나야 한다.” 농부로서 그가 일하는 현장에서 그의 작업을 지켜보고, 그가 “주술적인 벽”으로 자기 밭을 감싸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자가 현장에서 머무는 동안 관점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자는 트로브리안드에서 발견하는 땅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경유하여 자신의 공동체의 실정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굶주림과 풍요

이분법은 인류의 기본적인 사고의 방식이다. 농경에 대한 사고의 심층에는 굶주림과 풍요을 가르는 이분법이 작동한다. 부족 전체의 굶주림(몰루)은 가뭄, 병충해와 같은 재난이 초래하는 불운한 상황이다. 이에 비해 풍요(말리아)는 “만족과 축제, 마을의 떠들썩함과 다툼을 의미”한다. 그것은 “삶을 살아갈 만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뜻한다. 부족민의 생계는 농업과 어업에 의존하며, 이 중에서 부족 삶의 중심축이 되는 것은 농경이다. 농경은 생계 문제를 넘어서 삶의 모든 풍요를 가능하게 해주는 토대이다. 풍년이 든 마을에 창고들이 가득 채워지면 그것에 의존하여 공동 사업, 축제, 구애, 모험 등 삶의 모든 가능성들이 열리고 돌아가기 시작한다.

 

계절이라는 리듬과 운율

부족민이 시간을 재는 척도는 경작 계절(시즌)이다. 한 해 한 번 재배하는 작은 얌 ‘타이투’는 그 자체로 “년(year)”을 뜻한다. 한 해는 ‘풍요로운 계절’(말리아)과 ‘배고픈 계절’(몰루)로 나뉘고, 다시 ‘농작물이 설익은 계절’(게구다)과 ‘익기 시작한 계절’(마투워)로 나뉜다. 이 시간 구분에 따라 경작 활동의 각 단계가 일정하게 결부되며, 부대적으로 경작 이외의 활동들의 시기가 정해진다.

계절, 달, 강우량, 기온의 변화와 순환은 부족민의 활동을 결정하는 리듬과 운율이다. 여기에 맞추어 인간의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계절살이는 음악적이다. 이들의 농한기가 왜 춤의 절기인지 추측해보게 된다. 박자에 맞추어 밟는 춤의 스텝은 인간이 살아가는 것을 연상시킨다. 인간은 계절의 리듬에 박자를 맞춰야 한다. 경작지 주술사는 부족 공동체가 자연의 박자를 놓치고 뒤쳐져서 풍요의 선물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때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경작을 쉬는 기간에 춤을 추어서 스텝에 리듬 싣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인가 보다.

 

실용과 비실용

부족민들이 노동에 대한 태도는 상식의 정반대다. 이들은 꼭 필요한 정도보다 지나치게 더 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노동 시간을 최소화할수록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시간을 더 많이 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쪼개고 복잡하게 만든다. 농작물은 다양하고, 밭은 소규모로 구획되어 할당되고, 밭의 기능도 분화되어 있다. 경작의 방식이 복잡할수록 인간의 관심과 노동을 더 요구한다.(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서 봐야 한다.)

트로브리안드의 경작에는 비실용적인 부분이 많다. 일단, 먹을 수 있는 이상으로 생산한다. 경작의 본론이라고 할 파종부터 수확까지의 과정 앞뒤에 있는 절차인, 밭 준비와 밭 정리에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고 세세하게 신경을 쓴다. 주술적 구조물의 재료를 선정하고 설치하는 일과, 수확물을 쌓고 세고 전시하는 일 등 경작의 효율과 직접적인 관계없는 요소에 노력을 쏟아붓는다.


경제와 경제 외부

부족민들의 생계는 농업과 어업으로 유지되며, 이중에서 농업이 중심이다. 부족민들의 농업 경제는 공동체의 친족 체계와 권력 체계의 토대가 된다. 농작물은 물고기와의 교환, 제조업의 부양, 공동체 사업(항해, 축제)의 수단이다. 농업은 이들의 삶 전체의 중심축이다.

경작은 마을의 경관을 아름답게 만든다. 부족민들은 경작지에서 심미적인 기쁨을 얻는다. 경작지에 짐승 방지용 울타리를 치거나 주술용 구조물을 세울 때는 전시회에 가듯 서로의 ‘작품’을 관람하고 감탄한다. 이들은 구조물 세우기, 깔끔한 정리, 농작물 전시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는다. 훌륭하고 보기 좋은 경작지를 소유하는 것은 예술적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고역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의 노동의 동기는 욕심이나 불안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훌륭함이다. 이에 대한 야심과 경쟁은 희소성이 아니라 풍요로 이어진다. 아름답고 훌륭한 “경작지 전체가 풍요를 상징한다.”

주술과 작업

산호섬의 경작지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 활동은 농작업과 주술이다. 이 두 가지는 인간과 땅이 연결되는 방법이다.

인간의 활동은 도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농작업 도구는 막대기, 도끼, 가뀌, 그리고 손이다. 사람들은 때에 맞게 이 네 가지 도구로 땅을 파서 작물을 심고 가꾸고 거두고 정리한다. 한편, 주요 주술 도구는 막대기와 입이라고 할 수 있다. 경작자는 장대를 비스듬히 세운 구조물(캄코콜라)을 설치하여 “주술 모퉁이”를 만들고, 주술사는 그것에 기대어 때에 맞는 주문을 건다. 경작지가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가 일어나는 현장이라고 할 때, 농작업은 만지고 두드리는 등 접촉을 통한 관계이고, 주술은 노래를 불러주는 관계일 것이다.

두 활동 모두 경작지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작물의 변화를 유발하고자 한다는 점이 같다. 농작업과 주술은 나란히 행해진다. 이 둘은 “하나로 엮인 일련의 꾸준한 노력”으로 진행되고, 그것들이 모두 합해져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경작지의 주술

경작에는 영적인 차원이 있다. 그것은 경작 활동을 둘러싼 주술 활동의 차원이다. 토착민들에게 주술은 경작의 성공에 필수적인 천연 비료로 여겨진다. 그래서 토착민들은 말리노프스키에게 그의 나라에서는 경작지 주술이 있느냐고 묻는 대신, 어떤 경작 주술을 행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제대로 된 주술을 행하지 않는 것 같기에 과연 그 나라의 얌이 제대로 싹이 트고 잎과 줄기가 솟아 올라갈 수 있을지 의심한다.

경작지 주술사가 “입으로 주문을 읊으면, 주술의 효험이 땅속으로 스며든다.” 그의 의식과 주문이 농작물을 성장을 ”돕는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는 주술의 ”공감적 연결“이라고 말하다. 감정(pathos)적으로 서로 연결이 되면 움직임이 발생한다고 여기는 공감적 연결이 주술의 기본적인 특징이다.(184쪽 하단 주석, 프레이저) 주문 걸기는 공감적 연결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수확한 작물을 잘 보존해야 한다면, 우리 같으면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지 말고 잘 보존하자’고 결심을 할 것이나, 그들은 ‘한꺼번에 먹히지 않게끔 하는 힘’을 갖도록 수확물에 주문을 건다. 주문을 건다는 것은 우리가 결심을 하듯이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 역할을 하되, 내 마음이 대상의 마음과 통할 것이며 영향력을 주고 받는다고 믿는다는 점이 다르다.

경작지 주술사는 풍요의 힘을 조절하며 인간의 작업까지도 지배한다. 경작의 리듬에서 뒤처지는 자를 책망하거나 훌륭한 경작자를 칭찬하기 위해 장황한 연설을 하는 것도 일종의 주문 걸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보전하도록 하는 사회적인 위력이다.

주술을 통해 경작 활동을 경감할 수 있는가 하면 그런 법은 없다. 주술로 농사일을 대체할 수는 없다. 훌륭한 농부로서 할 수 있는 작업을 다 한다 해도 닥칠 수 있는 불가해한 불운을 막아주는 것이 주술의 역할이다. 또한, 주술사조차도 농사일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가장 훌륭한 경작자이길 기대 받는다.

공감적 영향력에 대해 부연하자면, 토착민들은 미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작물의 성장에 공감을 통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믿는다. 농작업 단계마다 이어지는 주술 의식은 공감적 영향력을 생생하게 지속시킨다고 믿는다. 이들의 경작은 심미성, 그리고 주술 등으로 감싸짐으로써, 인간이 땅으로부터 풍요의 선물을 받았던 신화를 현재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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