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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 답사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

 

[국중박인디언] 카치나 인형, 맨얼굴의 코샤레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4-07-15 12:10
조회
322

카치나 인형, 맨얼굴의 코샤레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소리는

뭘 말하려는 건지 아나요.

그 한적 깊은 산속 숲소리와

바람의 빛깔이 뭔지 아나요

 

-<포카 혼타스 OST> 바람의 빛깔

 

내게 북미 원주민들이란 바람의 빛깔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물은 물론 식물, , 비와 바람, , 달과 별 등 모든 자연과 교감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가졌다.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회에 들어가면 곧바로 신성한 빛을 발하는 요람을 만날 수 있다. 코발트색과 노란색이 주는 화사함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요람에 살며시 올려진 아기의 모카신은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듯하다. 다시금 북미 원주민은 생명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임을 실감한다. 북미 원주민들은 모든 곳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카치나 인형은 현재 애리조나 북동부에 있는 호피 푸에블로족의 전통 인형으로 영적인 존재를 상징한다. 전시회에서는 자비로운 영혼의 존재라고 소개하는데 종류는 무려 40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카치나 인형은 미루나무 뿌리로 몸통을 조각하고, 직물, 깃털, 조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한다. 미루나무 뿌리는 물과 가까운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물이 귀한 푸에블로족에게 카치나 인형의 재료 자체가 신성한 의미를 가진다. 인형에는 각 존재를 나타내는 특징이 동물 발자국, 새 발자국, 식물, 깃털 등의 상징을 이용하여 표현된다.

카치나 인형은 아이가 놀이용이 아니라 벽에 걸어두는 신성한 인형이다. 카치나 인형은 아버지나 삼촌과 같은 집안의 남자 어른이 소녀에게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하거나 카치나 의식 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는 카치나 인형을 보며 만물에 깃든 영적인 존재를 느끼고, 교감하며,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을 배웠다.

 

그중 눈길을 끌었던 카치나 인형은 광대 모양 카치나 코샤레이다. 검은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가로줄 무늬 옷을 입고, 머리에는 양 갈래 뿔이 있는 모자를 썼다. 모자의 뿔 가장자리에는 옥수수 껍질을 붙인다. 허리춤에 가리개를 두르고, 신발을 신고 있다. 눈과 입은 주위에 두꺼운 검은색 원이 그려져 있는데, 이 눈매와 입가의 모양이 우는 듯 웃는 듯 미묘한 느낌을 준다. 전시된 1900년경 코샤레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허리춤에 주먹을 꼭 쥐고 있다. 1980년 경의 작품은 구부러진 막대기를 지팡이처럼 짚고 거들먹거리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만든이의 이름이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실제 사용하기보다는 작품으로서 만든 것 같다.

코샤레는 카치나 의식에서 풍자와 해학,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교훈을 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광대라고 해서 어리석고 다른 이들이 업신여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코샤레는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다. 카치나 의식에서 코샤레의 역할은 다른 누군가 지정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코샤레 역을 맡은 사람은 그 역할이 자신을 불렀기 때문에코샤레 역을 맡게 되었다고 말한다.

 

 현대의 카치나로 <나를 지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 광대가 눈길을 끌었다. 제목과 모습이 쉽게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걸까? 자세히 보면 모자의 뿔에 옥수수 껍질이 보이지 않는다. 코샤레를 묘사할 때 뿔에서 뻗어나 온 옥수수는 생략되어도 좋은 부분이 아니다. 신성함이 일부 떨어져 나가버린 것이다.

땅과 모든 걸음걸음에서 생명과 감사를 느꼈던 북미 원주민은 뿌리내렸던 토양에서 강제로 분리되었다. 자신들의 영적인 존재가 쇠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경험은 그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코샤레에게서 상처를 회복하길 원하는 간절함이 보인다. 웃기고, 비꼬고, 해학을 담당하는 코샤레가 진지하게 실을 꿰고 있는 모습, 상처 입고 회복하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담긴 맨얼굴은 코샤레는 보는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다행히 바늘귀에 실이 들어가 있는 모습에서 문화의 맥이 아직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전시장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토기, 바구니, 덮개 등을 볼 수 있었다. 코샤레의 뿔에서 다시 옥수수 껍질이 돋아나길 기원한다.

북미 원주민이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만물에 영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치나 인형은 세상의 모든 것과 관계 맺고, 영적인 존재와 교감하며 반듯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북미 원주민이 정착지를 둘러싼 싸움에서의 패배, 강제 이주, 미개한 문화라는 조롱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전통을 잃지 않았음에는 카치나 인형 덕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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