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국립생태원, 국립 해양 생물 자원관 답사기] 독성을 품은 삶
독성을 품은 삶
2025. 2. 26.
유현지
‘인문공간 세종’의 첫 참여를 용감하게도 답사로 시작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배짱이 두둑했다. 만약 20대 초였다면, 아마 안전한 독서모임 정도로 시작해서 차근차근 안면을 텄지 않았을까? 10여 년의 시간 동안 난 내 안의 담대함을 길러나갔다. 그건 초등학교 교사라는 안전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야생에서 고군분투하는 내가 길러낸, 일종의 독성(毒性)이다. 독성은 야생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방어기제, 즉 야생성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국립생태원>과 <국립 해양 생물자원관>에서 많은 생물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그중에서도 ‘독화살 개구리’를 곱씹어본다. 한 문장 덕분이었다. “독화살 개구리는 인공 증식하면 독이 없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독화살 개구리를 활용해 화살촉에 독을 묻혀 사용하곤 했다. 그래서 독화살 개구리의 이름에 ‘독화살’이 붙게 된 것이다. 독화살이라니, 내게는 꽤나 깜찍한 이름처럼 느껴졌지만, 이 작은 친구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야생에서 독화살 개구리는 피부에서 알칼로이드 독(Alkaloid toxins)을 분비하도록 진화했다. 위협을 느끼면 피부에서 강한 독을 내뿜어 자신을 먹으려는 상대의 중추 신경계를 마비시킨다. EBS 다큐멘터리를 보니, 자신을 삼켜버리려는 뱀의 입 안을 마비시키고 유유히 빠져나오는 게 아닌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독화살 개구리가 인공 증식하면 독이 없다고? 흥미로웠다. 더 알아보니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독화살 개구리는 자체적으로 독을 생성하지도 않고 독을 갖고 태어나지도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독을 갖게 되었을까? 독을 가진 개미나 진드기 등 곤충을 먹어서 독성 물질을 몸에 축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의해 인공 증식된 독화살 개구리는 이름에 무색하게도 완전히 무독성으로 자란다. 이들은 야생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독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
독 없이 길러지는 독화살 개구리는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잃게 된다. 천적이 없는 안전한 곳에서 증식하면, 역설적이게도 안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야생에서 내 독성을 유지하며 살고 있나? 나의 20대는 끊임없이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한 분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길 지독히 바랐다. 여자로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빠는 부산에서 교대를 가지 않으면, 학비는 물론 생활비와 그 무엇도 지원해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난 꽤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집을 벗어나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종교를 강요당하면서 무력감이 깊이 새겨졌다. 결국 방황한 끝에 임용고시를 합격했고, 임용을 몰래 경기도로 치고 나서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과 함께 억지로 다니던 교회도 안녕이었다. 결국 최근에 들어서야 난 조금씩 독성을 홀로 길러가고 있다. 내 삶은 비록 인공 증식되었지만, 다시 독성을 되찾기 위한 발버둥 정도는 허용되리라.
뱀의 입 안에서 벗어난 독화살 개구리는 어떻게 될까? 물렁하고 연약한 몸은 뱀의 입 아귀힘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틀대던 독화살 개구리는 배를 까뒤집고 죽지만, 이 죽음은 전체 종을 살리는 죽음이었다. 쓴맛을 단단히 봤던 뱀은 ‘이 작고 조그만 빨간 점액질’은 삼키면 안 된다는 걸 학습한다. 그 결과, 바로 코앞에서 독화살 개구리가 돌아다녀도 무시하는 경지에 이른다. 누군가의 야생성이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셈이다.
내가 살아남은 방식도 비슷하지 않나. 안정적인 직장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 부모의 기대를 벗어던진 채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 공부로 공동체를 이루고 작은 실험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 이들의 배짱을 보며 난 점차 야생성을 회복했다. 내게도 독성이 있다고, 물렁한 몸으로도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비록 야생에서 어떤 뱀에게 물린다고 해도, 나를 보며 누군가는 또 야생으로 뛰쳐나오지 않을까? 어떤 인생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의미겠지. 앞으로 ‘인문공간 세종’에서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과 야생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기대된다.
웰컴! 범고래부족의 세계로!
근본적으로 드는 질문은 ‘야생에서의 독’의 의미군요. ‘안정적인 직장 밖’에서 ‘작은 실험을 하며 공동체를 이루는’ 이들의 독성 즉 담대함’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인문세 활동 데뷰를 축하드립니다.
실험이 실험을 부르는 삶은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정말로!
ㅎㅎㅎ감사합니다!!! 인문세에서 달님을 만나서 참 좋습니다
실험이 실험을 부르는 삶!!👍👍😁
환영합니다. 용감한 현지샘
독을 가진 개구리, 뱀들은 보통 화려한 외모를 가진 것 같았어요. 독을 품으면 강렬해! 내 독이 종을 살려! (그 와중에 학습하는 뱀도 대단)
유현지 샘 글을 한호흡으로 몰입해서 읽었네요.
우리 안에, 표면 위로 올려지기를 기대하며 숨겨져 있는, 저마다 있을 야생성 회복을 고대하며.
유현지 샘의 실험과 도전, 그리고 글쓰기를 기다립니다. 배짱 두둑한 선생님의 다음 행보도 기대가 됩니다.
함께 하게 되어 너무 좋고요. 자주 글로, 현실로 만나요.
긴긴 겨울 쫄아든 마음이 유현지 선생님의 경쾌한 답사 후기 덕분에 확 펼쳐지는 느낌이 듭니다. 내 삶의 무기가 되어 줄 독을 천천히 씹고 소화시키며 오늘만을 기다렸다! 멋집니다.
선생님~ <종교인류학> 세미나를 통해 종교란 무엇인가를 독하게 탐구해 보시길 적극 추천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외부 환경에서 오는 압박을 거스르고, 안전을 포기하며 얻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런 현지샘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고 자극이 됩니다. 앞으로 함께 야생을 활보하는 여로를 함께 했으면 합니다. 자주 뵈어요^^
‘독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독이 누군가를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하네요.
인공적 환경에서는 독성을 갖지 못하는 독화살 개구리를 보며 스스로를 대입시켜보는 현지 선생님의 답사 후기가 야생성 회복을 위한 한 걸음으로 느껴집니다. 다른 공부에서 뵙길 고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