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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Bronislaw Kasper Malinowski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제7장 풍요의 작업과 주술 발제-풍요, 닻을 내린 귀환(歸還)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5-03-04 18:09
조회
45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7장 풍요의 작업과 주술 발제

 

풍요, 닻을 내린 귀환(歸還)

2025.3.4. 최수정

 

트로브리안드에서 경작은 절대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것은 그들의 사회적 규범인 모계제(母系制)’부거제(父居制)’와도 연관되어 보인다. 트로브리안드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체계는 신화적 토대인 모계 자연과 인간적 기반인 부계 모델이 복잡한 실제적 관계로 얽혀 있다. 토착민들은 아내의 죽은 조상들의 영향으로 임신이 이루어진다고 주장’(446)한다. 이는 토착민의 신체적 정체성이 여성의 혈통으로만 배타적으로 계승된다는 모계 신조의 토대가 된다. 남편은 이방인, 외주자(토마카바).

<그림 2> 오마라카나의 평면도(110)를 보면 족장의 얌 창고매장지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마을은 언제나 조상이 함께 있다. 족장의 오두막, 족장의 얌 창고, 매장지를 중심으로 평민들의 창고가 원형 형태로 빙 둘러쳐 있다. 나는 7브와이마(창고) 채우기를 보면서 트로브리안드인에게 조상의 무덤과 함께 있는 창고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이들은 창고와 무덤을 동시에 바라보며 생산과 죽음의 교환을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토착민들이 경작물을 경쟁적으로 분배·재분배하는 모습은 마치 어떤 명령을 수행하는 것처럼 절실하고 절박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행해야 할 절대적 의무를 이행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트로브리안드인에게 풍요(말리아)는 만족과 축제를, 마을의 떠들썩함과 다툼을, 한마디로 삶을 살아갈 만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157) 주요 식량인 타이투는 번영의 수단이고, 풍요, 곧 말리아의 상징이며, 토착민에게 부의 주요 원천이다.(213) 식량은 토착민들을 감정적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214) 전시된 식량은 경작자의 성취, 공동체의 부, 땅의 비옥함을 나타낸다. 풍요는 이들에게 증여를 상징한다. 분배·재분배를 할 수 없는 몰루’(굶주림)는 파국이다. ‘몰루는 조상의 죽음으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 상황이다. 누군가의 돌아감을 헛되게 만들어 그들이 다시 경작물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 같다. 조상이 돌아오지 못하면 그들이 잡아먹힐 것이다.

마을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고 있다. 창고를 채우는 일은 마을의 풍요를 상징한다. 이들에게 풍요번영은 조상으로 상징되는 타이투가 다시 돌아와 마을 한가운데서 함께 춤을 추는 일이 아닐까.

 

빌라말리아(마을의 풍요)

증여자들이 브와이마(창고)를 채운다. 그러나 그 전에 토워시, 곧 경작지 주술사가 다른 직함, 빌라말리아라고 불리며 새로운 역할 토빌라말라아를 맡는다. 빌라말리아는 브와이마(창고) 채우기의 주술적인 뼈대를 이룬다. 빌라말리아에서 빌라는 발루, 마을에 상응하며, ‘말리아풍요를 의미한다. 몰루(배고픔)에 비해 말리아(풍요, 번창, 초식)을 뜻하는 말리아는 또한 ()’질병과 위험한 영향력과 재난의 부재라는 폭넓은 의미도 가지고 있다.

주술사는 족장의 두두빌레 크와야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브와이마에서부터 주술을 시작한다. 이 이름은 저녁의 어둠을 뜻하며, 창고에 비축된 풍부한 농작물이 어둑한 느낌을 주는 것과 관련된다.

창고의 바닥에서 수행되는 <문구 28>의 주문과 의식은 바닥 누르기”, 툼 부부크와 혹은 카이툼라 부부크와라고 불린다. 여기서 눈에 띄는 변호사 지팡이(lawyer cane, 등나무)”의 상징인데, 토착민들은 등나무에서 다른 모든 식물의 성장을 능가하는 기세와 끈기를 연상한다. 또한 타이투의 바닥과 비나비나 (죽은 산호보다 더 무겁고, 단단하며, 쉽게 때지지 않는 수입된 현무암)동일시되며, 그 돌에 대고 주문이 읊어진다. 이 주문에서는 쌓여 있는 농작물을 안정시키고 싶은 바람이 드러나 있다.

브와이마 채우기는 하루아침에 완수되어야 한다. 더미들을 쌓을 때와 동일한 원칙으로 가장 좋은 얌들이 외부에 전시된다. 개방형의 장식된 창고들에만 과시하거나 부를 표현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시용 농작물, 타이투가 저장된다. 창고를 채우는 일이 끝나면 이방인들이 물러가고 마을 안에서 새로운 분배가 이루어진다. 타이투는 브와이마에 거의 쌓이자마자 다시 꺼내지고, 코비시타이투페타 선물이 분배된다. 코비시는 방금 받은 우리구부에서 빼내고, 작은 선물들은 직접 수확한 농작물에서 가져온다.

창고 채우기가 끝난 다음 날이나 2, 3일 뒤에 토빌라말리아는 자신의 두 번째이자 최종적인 의식인 바시 발루, “마을 뚫기를 수행한다. 주술에 사용되는 레워 나무는 매우 오래 산다고 알려져 있는, 튼튼하지만 키가 작은 나무다. 카야울로는 단단해서 부러뜨릴 수 없는 나무이다. 레야는 주술에서 사용될 때 항상 맹렬함과 강인함에 관련된다. 문구 29>를 읊음으로써, 주술사는 경작, 수확, 그리고 농작물과 관련된 모든 주문의 막바지에 다다른다.

이 문구와 첫 번째 빌라말리아 주문을 경작 주기 동안 사용되는 다양한 주술 문구들과 비교해보면, 빌라말리아경작 주술의 일부라는 사실도 명백해진다. 두 개의 주문들은 농작물이 썩게 만들고 소모시키는 모든 영향력에 굴하지 않고 강하게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명확히 표현한다.

주술사는 마을을 순회하며 주요 창고에서부터 일을 시작한다. 주요 창고 앞에서 그는 다른 재료들과 함께 마법을 걸어놓은 딤쿠부쿠부 혹은 카타쿠두라고 불리는 작은 막대기를 가지고 땅에 구멍을 판다. 그 막대기는 카야울로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는 구멍에 주문을 읊는다. 모든 행위는 사무적으로 모든 일은 조용하고도 능숙하게 이루어진다. 주술사 주의에 모여들거나 그를 응시하거나 지나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부적절한 일로 여겨진다. 아이들은 집 안에 머물러야 한다.

 

빌라말리아의 대상과 기능

빌라말리아 주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주술의 주문과 의식과 맥락을 객관적으로 분석했을 때 드러나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 주술을 집전하는 주술사 자신을 포함해서 관련된 모든 사람이 주장하는 주술의 목적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퍼포먼스는 얌 창고와 그곳에 쌓아놓은 식량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토착민들은 주술적 영향력이 발휘되는 진짜 대상은 인간 유기체.

닻 내리기와 더미 쌓아올리기는 안정성과 풍요에 관련된다. 마을 전체는 사실상 마을에 저장된 모든 식량을 의미하는데, 주문에 의해서 그것은 움직이거나 줄어들 수 없게 된다. 마을의 땅에 구멍을 뚫는 것은 명백히 주술적인 격리와 정착을 의미할 것이다.

<사진 79>와 같이 가장 큰 브와이마와 한 채가 각각 마을 한가운데에 마치 번영과 풍요를 상징하는 견고한 건물인양 서 있는 모습은, 식량을 미학적으로 교묘하게 배치함으로써 형성되는 시각적인 인상이 빌라말리아 주술의 목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이해할 수 있다.

토착민들은 주술이 식량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유기체에게, 좀 더 특별하게는 인간의 배, 혹은 식욕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대해서 일말의 의심도 품고 있지 않다. 주술은 먹히는 식량에 영향을 미쳐서 영양이 파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입과 삼키는 식도에 작용해서 그것이 나태해지고 음식을 내켜 하지 않게끔 만든다.

우리가 풍요의 주술을 행하지 않을 때, 배는 매우 큰 구멍과 같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식량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마을에 구멍을 뚫고 나니 배는 이미 채워졌습니다.” 그들에게 음식을 절제하는 것은 하나의 덕목이며, 배고파하거나 심지어 건전한 식욕을 가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브와이마의 기능

개방형의 전시형 창고는 크기가 크다. 트로브리안드인에게 크기 자체가 미학적 가치가 있다. 이들은 보통 바쿠 주위의 첫 번째 둥근 고리, 혹은 안쪽 고리에 특징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두막들이 이중의 고리처럼 배열되어 있는 마을에서는 마을 생활의 중심이면서 춤과 축제와 기쁨의 장소인 바쿠 주위를 위풍당당한 브와이마가 둥글게 둘러싸여 있으며, 트로브리안드인들은 브와이마의 갈라진 틈새들을 통해서 자신이 쌓아놓은 타이투 재산을 바라보고 흡족해할 수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고 좋은 건물이 주택이 아니라 창고다. 창고가 권력의 근원이자 상징으로서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부라쿠의 주술

오부라쿠의 빌라말리아는 오마라카나에서와 마찬가지로 수확기의 핵심적인 활동이지만, 브와이마 채우기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오부라쿠의 빌라말리아는 사실상 얌 창고나 얌 농작물의 주술이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마을의 주술, 마을 복지의 주술, 그리고 공동체의 주술이다. 오부라쿠에서도 마을 뚫기”, 바시 발루라고 불리는 의식이 있다.

오마라카나의 주술과 오부라쿠이 주술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평행 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닮지 않은 점이 한 가지 있다. 오마라카나 주술은 타이투를 수확할 때만 행해진다. 그러나 오부라쿠의 주술은 큰 얌인 쿠비를 수확할 때도 행해지는데, 쿠비의 수확은 어디서나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며 특별한 시작 의례를 수반한다. 나아가 오부라쿠의 빌라말리아는 굶주림과 질병, 혹은 재난이 닥쳤을 때도 수행될 수 있는 주술이다. 흥미로운 점은 빌라말리아를 수확과도 무관하고 창고 채우기와도 관련이 없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특히 굶주릴 때 빌라말리아를 수행하게 되는데, 오부라쿠에서 이러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배고픔이 심해지면 사람들은 쿠요빌라키 음말루. 보게 일로우시 비빌라. 이칼리포울라시 오 라 오딜라. “당신 마을을 되돌리십시오(당신 마을의 운이 돌아오게 하십시오).

수확기에 오부라쿠에서는 오마라카나에서와 똑같은 이유로 주술이 수행된다. 오부라쿠에서도 그 주술은 주로 식량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화 체계와 식욕에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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