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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해양생물 답사기] 빛과 소리, 신체를 따라 흐르는 메시지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5-03-17 17:37
조회
27

2025.3.17./해양인류학 답사기(3)/손유나

 

 

빛과 소리, 신체를 따라 흐르는 메시지

 

헬렌 체르스키는 블루 머신에서 빛과 소리를 주요 전달자로 꼽는다. 사람은 밤하늘의 별빛을 보고 먼 우주의 존재를 인식했고, 미처 해저에 도달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반향음으로 쉽사리 포착되지 않는 샛비늘칫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처럼 냄새, , 촉감과는 달리 빛과 소리는 인간이 직접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보까지 전달한다. 덕분에 인간의 인식 범위와 깊이가 크게 확장될 수 있었다. 전달자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물리적 환경에 따라 작동 방식이 달라지고, 수신자는 자신의 신체 경계 내에서 메시지를 받는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각부터 살펴보자.

빛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전달자이다. 태양에서 발산되는 빛은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 마이크로선의 스펙트럼을 이루지만 인간의 눈은 무지개색으로 보이는 가시광선만을 감지한다. 또한 빛은 모든 색을 포함하고 있지만 인간의 눈은 분자에 부딪혀 산란한 빛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똑같은 하늘이 어느 때는 하늘색으로 보이고 어느 때는 붉은 색으로 보인다.

빛이 대기가 아닌 물과 만나면 작동 방식은 변한다. 바닷속에서는 피가 붉은 색이 아니라 녹색으로 보이는데 물속에서는 파장이 긴 적색광은 금세 흡수되고 파장이 짧은 청색광이 훨씬 멀리 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액체 상태인 분자들은 규칙적으로 배열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므로 빛은 수중에서 훨씬 더 변덕스럽게 움직인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빛을 의도적으로 활용하여 관람객에게 바닷속에 있는 듯한 감각을 전달한다. 우선 자원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높은 투명한 탑을 마주하게 된다. 탑을 따라 녹색과 청색 조명이 빙글빙글 올라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해류가 위로 솟구치는 듯하다. 자연스레 보는 사람을 바다 밑바닥에 있다는 위치감을 창조했다. 이 의도는 전시 관람이 1층에서 시작해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라 높은 층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관 내부로 들어서면 해안가 바위에서 서식하는 게와 조개를 보게 된다. 이후 해초류를 보고, 어류와 플랑크톤과 심해어로 이어지는 순서로 전시가 이어지면서 마치 바닷속에 천천히 입수하여 해양생물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높은 천장과 곳곳에 설치된 조명은 바다가 점점 깊어진다는 인상을 부추긴다. 빛이 들어오는 구역에 서식하는 해초, 해조류, 어류를 전시할 때는 초록색으로, 심해어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에서는 짙은 푸른색을 뒤에 배치하였다. 더욱이 빛이 들어오는 구역의 초록색 세로 조명은 위에는 흰색이고 아래쪽으로 향할수록 점차 짙어지는 점층효과를 주어 전시관 곳곳에서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전시된 해양생물 표본은 작은 더듬이와 미세한 털, 오돌토돌한 돌기까지 재현하여 마치 심해에서 살아 유영하는 바다 생물을 보는 듯했다. 전시관 전체의 배경과 조명, 전시된 해양생물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어우러져서 바닷속 영롱하고 신비한 분위를 자아냈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조개껍질, 등껍질의 무늬가 선명한 거북이, 물속에서 흔들리는 해초류와 해조류, 몸을 세로고 길게 세우고 사냥을 준비하는 은빛 갈치의 무리, 심해의 어둠 속에서 자체 발광하는 초롱아귀까지. 선명한 색깔의 모형과 사진은 해양생물을 직접 만나는 듯 생생했다. 전시관은 바다의 특징인 녹색과 청색을 주로 활용하고, 점층적으로 배치하여 천천히 얕은 바다에서 깊은 바다로 이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바다에서 해양생물을 봤다는 만족감은, 국립생태원수족관에서 헤엄치는 화려한 열대어를 보았을 때 어리둥절함으로 바뀌었다. 양떼목장에 가서 양의 울음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할 수 있는가? 만약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양이 모형은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리 없이도 바닷속 해양생물을 생생하게 보았다고 느꼈다. 지금껏 해양생물이 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의 단절은 체르스키가 양면 거울 효과라고 설명하는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물은 압력을 가하면 압축되는 대신에 앞에 있는 분자를 차례로 밀면서 위치를 조정한다. 물 분자의 진행 방향을 따라 소리가 함께 이동하는데, 대기에서보다 물속에서 소리는 훨씬 멀리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음파는 수면을 넘어가지는 못한다. 공기의 밀도가 낮아 압력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중 음파는 다시 해수면으로 반사되어 아래로 내려가고, 수면 위의 소리는 밀도가 높은 수면에 부딪혀 위로 반사된다. 인간이 물속으로 직접 뛰어들어도 듣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귀는 외이중이내이로 구조화되어 있는데, 외이와 중이 사이는 공기층이고, 중이와 내이 사이는 액체로 채워져 있다. 이 구조는 수면처럼 양면거울 효과를 일으켜 소리를 차단한다. 대신 귀가 아니라 파동이 턱뼈나 머리뼈을 통해 우회로로 파동을 감지하여 먹먹하게나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맨몸으로는 호흡을 오래 참을 수 없고, 산소통을 이용하여 잠수한다고 해도 호흡하면서 생긴 거품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려서 해양생물이 내는 소리를 듣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다가 침묵하고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신체 구조로 인해 소리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수신하지 못해서 생긴 착각이다. 해양생물은 바다 밑에서 다양한 소리를 발산하고 있다. 어류 대부분은 몸 안의 공기주머니(부레)를 순환시켜 소리를 낸다. 혹은 뼈를 두드리거나 근육을 사용해 북을 치듯 내부 기관을 진동시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청어는 포식자가 다가오면 다른 청어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항문에서 독특한 소리를 내는 방귀 방울을 뿜어낸다. 바닷가재는 몸 표면의 털을 이용해 저주파 소리를 감지하고 돌고래는 초음파를 이용하여 의사소통한다. 이 모든 소리를 인간의 귀는 잘 포착하지 못한다.

음향탐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해양생물의 소리를 채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해양생물이 내는 소리를 찾아보았다. 피그미 열대어, 곰치, 흰둥가리, 카디날 피쉬의 울음소리 혹은 몸을 두드리는 소리. 해양생물이 가진 다채로운 색깔만큼이나 수중에는 각기 다른 종이 내는 특색있는 소리로 가득했다. 인간의 귀는 수중 소리를 듣기 어렵지만 기술의 도움을 받을 때 신체는 확장되어 더 많은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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