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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수요종교인류 글바다] 이매진 데어 이즈 노 컨트리, 노 릴리전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3-20 18:02
조회
40

수요종교인류학 글바다(‘내 안의 신을 찾아서’ 순례기 쓰기) 2025-3-20 김유리

 

 

상상해 보라, 국가도 신도 없는 세계를

(피처링 스피리트들)

 

어려운 것은 (4장)

종교인류 수업에서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의 발명-인류의 지(知)와 종교의 발명』(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2005)을 읽고 있다. 세미나를 이끄는 달님샘은 전에 없이 ‘어렵다’는 말을 여러 번 하신다. 선생님 입에서 책이 어렵다는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이다. 책이 어렵다는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라 안 하시나보다 하고 생각해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신이치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막연히 아는 척하며 ‘스피리트와 함께 생활하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온 셈이지만, 사실 그 세계 속에 살아 있는 감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 세계 사이에는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이쪽에 있는 우리가 커튼 너머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은 마치 전혀 다른 성분의 지층이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101쪽, 밑줄은 필자)

 

이 책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어떤 곳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구나. 그것을 막연히 아는 척 한다고 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겠구나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책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무엇이 무엇이냐고? 그것은 “신도 국가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를 넘어선 것은 오로지 “스피리트밖에 없는 세계”를 뜻한다.

아니, 그런 세계가 있다고? 스피리트들의 세계를 현실이라고 상상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커튼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인간은 노력해왔다. 그 세계가 어디에 있기에? 무슨 수로? 우리의 현실 세계 너머로 가는 통로를 찾을 수 있도록 자연에 실마리 끝이 여기저기 남겨져 있다.

 

스피리트란?

종교적인 신이 알려지기 전까지 신(神)이라고 하면 스피리트들을 뜻했다. 물질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에너지처럼 비정형의 것이기도 하다. 물질의 원형이자 유동하는 힘이기도 하다.

 

초월로 가는 통로

스피리트가 사는 세계로 가는 입구는 어디에 있을까? 특별한 바위, 나무, 호수, 강 같은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스피리트들이 무리지어 있어, 인간과 교류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생명이 있는 모든 곳이 ‘초월’로 통하는 통로다. 접촉할 수 있는 초월이라는 형식이 참 모순적이긴 하다.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적인 신은 인간이 몸을 입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있다거나, 접촉도 감지도 할 수 없는 추상적이인 존재라는 사고에 우린 더 익숙하다. 그러나 신의 등장 이전의 스피리트들의 세계는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초월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는 인간의 마음 속에도 열려 있다. “스피리트만 있는 세계”란 지금은 없는 ‘고대연구’의 영역일 것이지만, 나카자와 신이치는 현대과학의 빛을 비추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 뇌의 뉴런 조직 속을 유동해가는 자유로운 순수지성이 초월과의 접촉점을 열어준다. 통로를 확실하게 열기 위해 유동적 지성의 활동을 확장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은 실로 유장한 역사를 통해 이어져 왔다. 샤먼의 트랜스 기술, 명상, 환각성 식물의 작용 등을 이용하면 유동적 지성을 순수한 형태로 의식의 전면으로 부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두꺼비 등짝에서 나오는 액체라든가 균류(버섯)도 환각 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동물의 직업』, 『돈 후앙의 가르침』 참조)

“마음의 내면에도 ‘초월’로 통하는 출입구는 열려 있으며, 마음밖에 펼쳐진 자연 곳곳에서도 그것은 발견됩니다. 그 세계에는 특별한 ‘초월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은 채 ‘현실’과 초월‘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103)

 

위 인용문의 핵심은 아마도 ‘이어져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 이해하기 어렵다는, 그리고 두꺼운 장막이 쳐져 있다는 그 세계가 현실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가 모르는 ‘그 세계’를 수만 년간 살아 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참조해 도움을 얻도록 해보자. 오스트레일리아 애보리진과 같이 최근까지도 국가를 갖지 않은 사회 형태를 유지해온 사람들의 사냥 장면을 신이치는 예로 들고 있다.

104-5쪽을 읽어 보자. 눈앞에 캥거루 한 마리가 나타난다. 애보리진은 사냥감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는 현실세계에서의 이 동물의 행동양식을 잘 알고 있다. 다음 순간 캥거루가 어느 방향으로 달아날지도 경험을 근거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이 애보리진은 눈앞에 있는 동물 내부에서 유동하는 에너지체가 활동하는 것도 ‘바라보고’ 있다. 이 에너지체로서의 캥거루는 현실에 나타난 동물의 ‘원형 原型’에 해당한다. 에너지와 형태 정보가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스피리트로서의 캥거루이다. (흐물흐물한 캥거루다.)

현실의 살아있는 동물이자 에너지체인 이 캥거루는 주위의 자연과, 동일한 유동체의 레벨에서 수많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 (흐물흐물한 캥거루에서 실이 마구 뻗어 나와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끄러지듯 흐르는 에너지의 바다 속에 캥거루=스피리트의 덩어리가 떠 있는 것과 같다.

애보리진의 ‘현실’과 ‘드림타임’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활동하고 있다. 또한, 캥거루도 지그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드림 타임 시공에서 활동하는 에너지체로서 캥거루는 에너지 연속체에 발생한 강도의 고조에 의해 긴장을 전달한다. 이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이 제대로 된 사냥꾼이다. 동시에 보는 사냥꾼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이해한다. (의미가 출현한다.)

애보리진은 똑같은 현상이 자기 체내에서도 진행중이라는 것을 안다.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본다.) ‘내부시각’을 통해 유동해가는 에너지로서의 마음의 움직임을, 시신경다발 내부의 가상공간에 있는 스크린에 비친 아름다운 패턴들의 운동으로서 바라본다. (사이키델릭하다.) 내부시각에 의해 펼쳐진 이런 레벨을 사이에 두고 인간의 마음 내부에서 유동하는 에너지는 외부세계를 유동해가는 드린 타임 레벨의 에너지와 수많은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다. (내부시각에 펼쳐진 아름다운 패턴들을 통로로 마음 내부 에너지와 외부세계의 에너지가 실로 연결된다. 인간도 흐물흐물해지고 실이 마구 뻗어 나와 캥거루와 같이 떠 있다.)

 

드림 타임이란?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애보리진은 통과의례를 통해 비밀의 지식을 부족의 어른에게서 전수받았다. 제3의 눈, 또는 지혜의 눈으로 다차원을 동시적으로 보는 의식 상태를 계발한 것이다. 그 의식 상태를 애보리진은 드림 타임이라 부른다.

드림 타임에서 동물이나 식물은 에너지장에 담긴 원형 상태로 살아간다. 에너지의 흐름 속에 형태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에너지장과 형태소(形態素)가 일체를 이룬 것이 드림 타임을 살아가는 생물의 본질이다. 본질을 에너지와 형태 두 가지로 본다는 점이 흥미롭고 친숙하다. 왜냐하면, 빛이란 에너지 파장이면서 물질적 입자라는 모순적인 과학적 사실에 대해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태계의 기능을 물질의 순환과 에너지의 이동이라고 하는 것과도 상동이다.

 

에너지란 무엇인가?

그러고 보면 옛날부터 에너지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에너지란 무엇인가? 에너지만큼 흔한 말도 없는데 말이다.

 

유동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흐른다는 뜻이다.

 

‘본질을 안다’는 것은, 애보리진의 말로 바꾸면 ‘드림 타임을 통해서 본다’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란, 사물이나 사건이 생겨나는 다이내믹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현실을 본다는 것은 무엇이 생겨나는 역동적인 과정을 본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에너지 속을 물질이 비고정형으로 ‘흐르듯’ 변하면서 움직이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의식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드림 타임을 통해서 볼 때, 마음의 내적 체험과 물질로 이루어진 현실세계가 일체가 되어 움직이고 변화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신이나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의 사회에 자연적으로 출현한 사고법이다.

드림 타임을 통해서 본 현실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들소와, 들소가 있는 사막, 여러 자연물들과 중첩된 유동적인 선과 점,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선과 동심원등이 겹쳐져 있다. 이렇게 표현된 것은 사막의 들소가 키워주는 풍요로운 생명의 모습이다. 내부시각으로 본 역동적인 빛의 에너지가 유동하는 상태가, 에너지로 충만한 형태 형성의 장에 생명체나 지형 등이 출현하는 상태, 이 두 상태가 하나로 종합하는 사고가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가 스피리트들로 충만해 있다는 사고에서 발달한 시야다. 뇌 안에 살고 있는 스피리트가 내부 체험과 외부 현실을 잇는 통로로 왕래하는 존재이다. 뇌 안에 스피리트가 머물 장소가 없으면 이 능력은 사라진다. 시야가 협소해진다.

 

시야 협착

 

협착된 시야로는 할 수 없는 것(73)

존재론의 위기를 맞이 한 현대 인류

 

 

전체 1

  • 2025-03-20 21:16

    심하게 핵심을 찌르는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