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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佛陀  

[유쾌한 불교] 불교의 ‘승가’와 ‘무상’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5-03-23 01:13
조회
14

불교의 승가僧伽

불교의 승가는 재가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다생의 번뇌로부터 해방(해탈)되기 위해 생의 번뇌를 짊어지고 사는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깨달음에 도달하려면 재가의 도움 없이는 안 된다는 역설이 생기게 된다이에 대해 이 책의 대담자 하시즈메는 승가를 불교의 본질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했다.

인도사회에서 고행은 생이 반복되는 윤회의 세계관에서 인과론의 선행 같은 역할을 한다지금의 고행이 과거나 미래의 업을 만회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하지만붓다는 생의 고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고승가는 붓다와 같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다출가는 깨달음을 위한 수단과 같은 것이라고 하시즈메는 이야기한다즉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하고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번뇌를 일으킬 만한 거리가 무수한 속세를 벗어나는 것이 편했기 때문에각 개인이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 출가했고 그들의 집합으로 승가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이다적어도 최초의 승가는 이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승가가 부동산기원정사라고 하는 건물(승방)-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변질되었다고 한다. {*기원정사祇園精舍는 고대 중인도의 코살라국의 수도 슈리바스티(사위성남쪽에 수닷타(수달·급고독장자가 석존과 그 교단을 위해 세운 승방의 이름.} 재가의 불규칙적인 보시에 기대던 승가가 재가의 정기적 기부로 인해 안정화되자 여기에 기생해서 지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승가는 속세화되었다이런 의미에서 소승불교는 변질되었으며대승이 출현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변화였다고 하시즈메는 이야기한다.


일체가 무상하다는 인식, ‘무상無常

생성하는 모든 것은 소멸한다. 生者必滅는 관점(불교)과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인 원자는 영원하며 태어나지도 소멸하지 않는다는 관점(루크레티우스)이 있다. 즉 일체의 현상이 무상하다고 보는 감수성과 거기에서 영원한 것을 보게 되는 감수성이 있는 것이다. 불교는 왜 일체의 현상이 무상하다고 볼까.

하시즈메는 그 이유를 인도의 윤회사상과 카스트제도에서 찾는다. 생을 거듭하는 윤회에서 존재는 이전의 생에 의해(인과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하고 거듭되는 생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카스트제도이다. 카스트에서 깨달음, 즉 사회 너머에 있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자는 브라만만 가능했다. 하지만, 붓다는 수행한다면 진리에 누구나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카스트에 반하며, 이 사회의 모든 것이 결국에는 사라지고 마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카스트제도를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하시즈메는 불교의 무상이라는 것은 변화/불면을 통틀어 이르는 말’(116)이라고 정리하며, ‘인도 사회의 특징에 기인한 사고방식’(116)이라고 말한다.

아래 사진은 다람살라에서 공부 중인 이윤하 선생님께서 지난 겨울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남인도의 어느 사원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승가에 대해 공부하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나 지금의 승가는 이런 모습이 아닌가 하여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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