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인류의 대항해] 포세이돈의 바다
그리스–로마 시대 지중해 바다의 모습은 전쟁 기록, 서사시를 통해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 지중해를 누비던 초창기 선박을 비롯한 바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암석 조각, 점토 도기에 새겨진 카누, 바다 밑에 가라앉은 난파선 발굴을 통한 자료로 짐작해볼 뿐이다. 키클라스제도는 강수량이 일정하지 않은데다 경작에 적합한 토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농경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다른 섬과의 교류가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섬으로 가는 모험은 밀로스라는 화산섬에서 나오는 흑요석, 그 흑요석으로 만드는 예리한 도구 제작의 필요라는 자원 개발의 성격이었을 것이다. 필요한 자원을 구하는 것에 비해 그곳으로 사람, 가축을 이동시켜 영구적으로 사는 문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작업이다. 물고기를 잡거나 다른 이유로 정기적인 섬 방문이 장기에 걸쳐 영구적 정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항해는 단순한 모험이라기보다는 누구도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절박한 생존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지중해는 태평양과 달리 섬간 거리가 짧아 지형지물로 거리와 방향을 식별할 수 있다. 하지만 지형지물이 가까이 있더라도 시계(視界)가 확보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지중해에서도 별, 태양으로 방위를 알아야하는 것은 같다.
지중해는 앞뒤가 아니라 위아래로 파도가 요동을 친다. 이곳은 포세이돈이라는 광폭하고 변덕스러운 신이 있는 곳이다. 지중해인들은 교역 기회를 따라 바다로 향한다. 기원전 2600년 무렵부터 레바논, 비블로스는 삼나무 목재가 교역되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이집트의 신전, 피라미드 등 대형 공사장이다. 삼나무는 무게와 부피상 육상의 나귀가 나르기 어렵고, 육상에는 나무를 노리는 강도가 상존하기 때문에 육로보다는 해로가 선호되었다. 사각 돛의 무거운 상선에 순풍이 불지 않을 경우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를 저어야 한다. 바람을 거슬러 노를 젓어 전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니 순풍의 패턴을 반드시 알아야 했을 것이다.
울루부룬 난파선은 터키 인근에서 1984년 발견되어 10년간 발굴되었다. 이 난파선은 그야말로 보물선이자, 그 시대 교역로, 물품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길이 15~18미터, 사각돛이 있더라도 추정 속도는 시속 7~9킬로미터, 순풍이 필요한 묵직한 선체이다. 선적된 짐은 구리, 주석이 대부분이었고, 이 원자재는 군대의 청동 투구, 갑옷을 위한 것이다. 출발지에서 도착지를 곧바로 향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아홉 곳에서 온 화물이 있었으니, 경유지가 많았다. 침몰 원인은 날씨 오판에 따른 해안에 너무 가깝게 접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해적도 성행했을 것 같은데 이를 포함한 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무역이 위축되지 않았던 것은 수요가 지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치품, 목재, 올리브기름, 포도주, 금속이 주 수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