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인류의 대항해] 인도양 항해의 변화
인도양 항해의 변화
육지와 바다의 기온 기압차가 만들어내는 계절풍은 아프리카에서 중국까지의 먼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바다에 비해 빨리 가열되고 냉각되는 육지는 여름이면 바다보다 기온이 높고 겨울이면 기온이 낮아진다. 이로 인해 여름 바다의 대기에는 고기압이 형성되어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불고, 겨울에는 반대로 육지에서 바다로 분다. 이 예측 가능한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인도양의 항해는 이루어졌다. 광활한 인도양은 아프리카, 홍해, 지중해, 페르시아, 인도, 중국까지 여러 나라를 연결하는 무대였다. 수천 년 전부터 인도양 항해는 계절풍을 이용해 이뤄졌는데 처음에는 연안을 따라 시작되었다가, 기원전 120~110년 즈음 이집트에서 인도까지 직항로가 시도되었다.
그렇다면 처음의 항해는 어떻게 왜 시작되었을까. 저자는 책에서 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던지는데, 그는 호기심이 아닌 ‘필요’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인도양 바다에서 대양의 비밀이 해독된 것은 억누르기 힘든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중략) 다양한 범위의 기본 상품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인류의 대항해』,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229쪽) 초기 대부분의 무역은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소규모 무역상들에 의해 번창했고 그들의 배가 실은 것들은 식량이나 옷감, 목재, 도끼, 낫과 같은 평범한 물건이었다. 우리는 종종 인류가 어떻게 망망대해의 아득한 공간을 이동할 생각을 했으며 그럴 수 있었을까 질문한다. 그가 이에 항해는 연안으로부터, 필요에 의해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의 교역이 필요에 의해서라는 것은 항해가 시작된 도시를 보고도 알 수 있다. 물자가 풍부한 인도의 경우는 창조 설화에서도 바다가 별로 부각되지 않는데, 인도인에게 대양은 “검은 물”이었고 바다 일은 하층민의 영역이었다. 반면 선박 건조의 목재도 충분하지 않은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연안에서 항해가 먼저 시작되었다. 초기 도시나 국가의 지배자들은 교역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일상적인 항해가 지속되고 장거리 상업으로 인해 도시가 교역이 확대되자 이를 통해 유리구슬과 황금과 같은 보석과 상아, 도자기와 같은 귀중품들, 노예까지도 계절풍을 타고 동과 서로 오가게 되었고 권력자들에 그 힘을 더 받게 되었다.
필요에 의한 소규모의 거래가 연안을 따라 시작되고, 각 지점들을 연결하며 교역은 확대되었다. 배의 건조 또한 이러한 필요에 따라 사용되는 재료나 용골과 돛, 이물과 고물의 모양 등이 변해갔을 것이다. 배가 연결하는 지점이 확대되고 교역하는 물품들이 다양하고 많아짐에 따라 배의 모양도 변화했다. 항해의 초기에는 소규모 상인들이 거래하던 일상품의 교역 속에 희귀한 물건들이 섞여 있었다면, 14~15세기에 이르러서는 제국의 대규모 상인들이 권력자를 위한 사치품과 희귀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게 된다. 이때 중간 무역상들은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들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신뢰로 양쪽을 연결하고 사람과 물품을 통해 이제는 건축 양식과 미술 양식, 생활방식과 같은 문화, 도덕적 가치까지 공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