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인류의 대항해](2) 에게 해 초창기 항해자
에게 해는 빽빽한 섬들로 북적이는 바다로 지중해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삼면은 그리스와 튀르키에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는 크레타섬이 위치해 있다. 에게 해와 크레타섬 사이에 일렬로 늘어선 키클라데스 제도는 항로를 연결하는 징검돌이 되었다.
빙하기 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키클라데스 제도는 해수면의 높이가 오늘날보다 91미터까지 낮았던 키클라디아라는 이름의 거대한 섬이었다. 가까운 밀로스 섬에는 모든 도구 제작용으로 쓰이는 최고의 석재인 흑요석이 풍부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사람들은 그리스 본토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았지만, 강력한 해양 지향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연결되어 살았음을 나타내는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두드러진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항해하기 좋은 날씨를 골라 섬에서 섬으로 건너갔다. 흑요석 산지에 대한 지식, 고기잡이, 사람 등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는 대륙 본토와 섬, 대양을 아우르는 생활 방식의 일부로 지속적으로 움직였다. 그러한 지식으로 대략 기원전 6000년에 농경이 자리 잡기 오래전에 섬에서 섬으로 상당한 거리를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었다.
키클라데스 제도 전역에 영구 정착민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들에게 선호되는 섬은 대규모나 중간급 크기의 섬이었다. 정착민들은 본토에서 큰 배로 양과 염소를 실어 날랐고, 보리, 밀, 콩류를 주요 작물로 재배했다. 에게 해 섬들은 건조했기 때문에 늘 가뭄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갔다. 농사의 불확실성은 식량 저장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낳았고, 이런 과정에서 이웃이나 섬들 간의 분담이 필요했다. 척박한 지형, 적은 인구 등은 섬들 사이의 고도의 상호 의존성을 키웠다. 식량과 상품의 교환, 이동성이 유일한 장기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동은 꼭 농경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활동성과 지속적인 이동은 농경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일이다. “이동은 닿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수평선 위로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앞바다로 향했다. 여기에 대양의 비밀을 해독하는 작업은 어떤 커다란 수수께끼가 바다 풍경 안에 잠복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속적인 이동에 익숙한 사람들이 바다와 그곳의 섬들을 자신들의 일상적 풍경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간주했기 때문”(170)이다. “에게 해 항해는 흩어진 섬에서 섬으로 건너가는 식으로 기준 가시선 항해를 통해 이루어졌다. 항해자들은 눈에 금방 들어오는 곶과 멀리서도 보이는 산봉우리, 독특한 색깔의 절벽이나 동굴과 커다란 “가지를 뻗은 올리브 나무” 같은 지형지물에 대한 지식도 직접 경험으로 얻었을 것이다. 전설적 영웅들의 무덤 같은 인간이 만든 눈에 띄는 지형지물도 때때로 항해의 지표로 기능했다.”(175)
에게 해의 항해자들은 누구나 자기 주변의 바다와 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장기간에 걸친 경험, 집중적인 해독 작업은 바다와 섬, 정박지와 해변, 바람이 물보라를 일으킬 때 찾아가는 기슭 등을 표시한 마음속 해도를 얻는 일이었다. 그들이 늘 마주하는 바다와 섬들의 풍경은 삶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