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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신의 발명] 3/19 후기 “상상해 보라”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3-25 18:05
조회
31

수요종교인류 『신의 발명』 후기 2025-3-25 김유리

 

 

상상해 보라, 국가도 신도 없는 세계를

(피처링 스피리트들)

 

 

어려운 것은 책이 아니라

 

종교인류 수업에서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의 발명-인류의 지(知)와 종교의 발명』(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2005)을 읽고 있다. 세미나를 이끄는 달님 샘은 전에 없이 ‘어렵다’는 말을 여러 번 하신다. 선생님 입에서 책이 어렵다는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이다. 책이 어렵다는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라 안 하시나보다 하고 생각해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카나와 신이치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막연히 아는 척하며 ‘스피리트와 함께 생활하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온 셈이지만, 사실 그 세계 속에 살아 있는 감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 세계 사이에는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이쪽에 있는 우리가 커튼 너머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은 마치 전혀 다른 성분의 지층이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101쪽, 밑줄은 필자)

 

이 책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어떤 곳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구나. 그것을 “막연히 아는 척”한다고 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겠구나 깨닫게 된다. 달님이 한 “어렵다”는 말의 의미가 이제야 이해된다. 그러니까 책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무엇이 무엇이냐고? 그것은 “신도 국가도 없는 상태”(101)를 말한다. 우리를 넘어선 것은 오로지 “스피리트밖에 없는 세계”(101)를 뜻한다.

아니, 그런 세계가 있다고? 스피리트들의 세계를 현실이라고 상상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스피리트들과 함께하는 세계”가 인류 역사상 더 길었지만, 신과 국가의 출현과 함께 스피리트들은 현실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인간은 그 커튼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왔다. 그 세계가 어디에 있기에? 무슨 수로? 우리의 현실 세계 너머로 가는 통로를 찾을 수 있도록 자연 여기저기 실마리 끝이 남겨져 있다.

 

초월로 가는 통로

 

스피리트란 무엇인가? 종교적인 신이 알려지기 전까지 신(神)이라고 하면 스피리트들을 뜻했다. 물질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에너지처럼 비정형의 것이기도 하다. 물질의 원형이자 유동하는 힘이기도 하다. 영이라고도 영력이라고도 칭할 수 있다.

스피리트가 사는 세계로 가는 출입구는 어디에 있을까? 특별한 동굴이나 바위 뒤, 나무, 호수나 강, 심지어 빈 방 같은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스피리트들이 무리지어 있어, 인간과 교류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생명이 있는 모든 곳이 초월의 영역으로 통하는 통로다. 왜냐하면 생명이란 비물질적인 힘인 영이 물질의 형태로 출현하고 조건 속에서 변화하고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힘은 몸이라는 옷을 벗으면 다시 초월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인간은 산 채로 스피리트들의 세계에 다녀오려고 한다.

초월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는 인간의 마음 속에도 열려 있다. “스피리트만 있는 세계”란 지금은 없는 “고대연구”의 영역일 것이지만, 나카자와 신이치는 현대과학의 빛을 비추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 내부의 자연”이라고 할 뇌의 뉴런 조직 속에 대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지성이 흐른다. 그것은 특정 대상에 대한 사고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고들의 사고다. 어떠한 사고가 탄생하는 족족 그 사고를 뛰어 넘는 유동적 사고다. 구체적인 이미지에 묶이지 않는 추상성, 뇌 내부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역동성, 온갖 사고가 이 유동적 지성으로부터 탄생하는 근원성을 특징으로 한다. 구체적인 사고를 초월하는 유동적 지성 자체를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고 내부에서 그 사고를 바라보자면 오히려 자기 밖에 존재하는 초월의 작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초월적 본성을 갖는 것이 마음의 근원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종교적 사고의 탄생 기반이다.(67)

초월 영역과의 통로란, 사람 마음의 활동의 “밑바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 속에서 의미가 일어나기 이전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인, 뇌 신경망의 물질적이고 기본적인 과정 자체를 저자는 마음의 “밑바닥”이라고 칭한다. 마음의 물질적 기본 과정을 “밑바닥”이라거나 “마음 속”이라는 장소 개념으로 사고하게 된다는 점이 포인트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곳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는 그곳을 스피리트와의 접촉 장소이거나 스피리트의 힘의 원천인 “은하” 공간이라고 인식해왔다.(52)

“은하”를 여행하는 통로를 확실하게 열기 위해 뇌 속의 유동적 지성의 활동을 확장하는 기술들이 실로 유장한 역사를 통해 이어져 왔다. 명상, 샤먼의 트랜스 기술, 환각성 식물 이용법 등은 유동적 지성을 순수한 형태로 의식의 전면으로 부상시키는, ‘초월’과 접촉하는 고대기술들이다. 덧붙여, 두꺼비 등짝에서 나오는 액체라든가 균류(버섯)도 환각 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동물의 직업』, 『돈 후앙의 가르침』 참조)

매직 아이 같은 동시 시각

 

“마음의 내면에도 ‘초월’로 통하는 출입구는 열려 있으며, 마음밖에 펼쳐진 자연 곳곳에서도 그것은 발견됩니다. 그 세계에는 특별한 ‘초월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은 채 ‘현실’과 초월‘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103)

 

위 인용문의 핵심은 아마도 ‘하나로 이어져 있다’일 것이다. 그 이해하기 어렵다는, 그리고 두꺼운 장막이 쳐져 있다는 그 세계가 현실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가 모르는 ‘그 세계’를 수만 년간 살아 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참조해 도움을 얻도록 해보자. 오스트레일리아 애보리진과 같이 최근까지도 국가를 갖지 않은 사회 형태를 유지해온 사람들의 사냥 장면을 신이치는 예로 들고 있다.

104-5쪽을 읽어 보자. 눈앞에 캥거루 한 마리가 나타난다. 애보리진은 사냥감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는 현실세계에서의 이 동물의 행동양식을 잘 알고 있다. 다음 순간 캥거루가 어느 방향으로 달아날지도 경험을 근거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이 애보리진은 눈앞에 있는 동물 내부에서 유동하는 에너지체가 활동하는 것도 ‘바라보고’ 있다. 이 에너지체로서의 캥거루는 현실에 나타난 동물의 ‘원형(原型)’에 해당한다. 에너지와 형태 정보가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스피리트로서의 캥거루이다. (흐물흐물한 캥거루다.)

현실의 살아있는 동물이자 에너지체인 이 ‘캥거루 중첩체’는 주위의 자연과, 동일한 유동체의 레벨에서 수많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 (흐물흐물한 캥거루에서 실이 마구 뻗어 나와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끄러지듯 흐르는 에너지의 바다 속에 캥거루=스피리트의 덩어리가 떠 있는 것과 같다.

애보리진의 ‘현실’과 ‘드림타임’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활동하고 있다. (다음이 제일 무섭다.) 또한, 캥거루도 지그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드림 타임 시공에서 활동하는 에너지체로서 캥거루는 에너지 연속체에 발생한 강도의 고조에 의해 긴장을 전달한다.

여기에 서술되는 것은 에너지의 바다 속에 떠 있는 두 덩어리가 사냥꾼과 사냥감으로 만나 서로를 바라보는 무시무시한 순간이다. (왜 나는 무섭다고 느끼는 것일까?) 사냥꾼은 우리가 말하는 현실과 애보리진의 드림타임 양쪽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동시 시각으로 보는 사냥꾼만이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는 제대로 된 사냥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애보리진은 똑같은 현상이 자기 체내에서도 진행중이라는 것을 안다. (그는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본다.) ‘내부시각’을 통해, 유동해가는 에너지로서의 마음의 움직임을, 시신경다발 내부의 가상공간에 있는 스크린에 비친 아름다운 패턴들의 운동으로서 바라본다. (사이키델릭하다.) 내부시각에 의해 펼쳐진 이런 레벨을 사이에 두고 인간의 마음 내부에서 유동하는 에너지는 외부세계를 유동해가는 드림 타임 레벨의 에너지와 수많은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다. (내부시각에 펼쳐진 아름다운 패턴들을 통로로 마음 내부 에너지와 외부세계의 에너지가 실로 연결된다. 인간도 흐물흐물해지고 실이 마구 뻗어 나와 캥거루와 같이 떠 있다.)

 

드림 타임이란?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애보리진은 통과의례를 통해 비밀의 지식을 부족의 어른에게서 전수받는다. 비밀이라서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마음 내부와 외부 현실 두 차원을 동시적으로 보는 의식 상태를 수만 년에 걸쳐 계발했다. 그 의식 상태를 애보리진은 드림 타임이라 부른다. 위 사냥꾼의 장면은 드림 타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드림 타임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적 체험과 외부 자연 세계를 연결한다. 드림 타임에서 현실은 사람들 각자의 마음 상태와 외부 현실이 뒤섞인 중간적인 대상 같은 것이고, 대화적인 작용을 통해 공통의 인식을 형성할 정도로 유연한 것이다.(73) 애보리진에게 세계는 마음과 물질이 하나로 연결된 것으로서 끊임없이 짜여가는 것이다.(73) 내적 외적 체험이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세계를 역동적으로 창조하는 과정을 그들은 드림 타임이라고 부른다.(73)

드림 타임에서 동물이나 식물은 에너지장에 담긴 원형 상태로 살아간다.(76) 에너지의 흐름 속에 형태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다.(76) 에너지장과 형태소(形態素)가 일체를 이룬 것이 드림 타임을 살아가는 생물의 본질이다.(76) 이러한 생물들은 스피리트와 같은 본질을 가진다.(76)

‘본질을 안다’는 것은, 애보리진의 말로 바꾸면 ‘드림 타임을 통해서 본다’라고 할 수 있다.(77) 현실이란, 사물이나 사건이 생겨나는 다이내믹한 과정을 의미한다.(77) 그러니까, 현실을 본다는 것은 무엇이 생겨나는 역동적인 과정을 본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에너지 속을 물질이 비고정형으로 ‘흐르듯’ 변하면서 움직이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의식 상태에 있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77) 드림 타임을 통해서 볼 때, 마음의 내적 체험과 물질로 이루어진 현실세계가 일체가 되어 움직이고 변화해가는 현실 창조의 장면에 입회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를 혼자 창조한 신이나 세계를 법에 따라 주조하고 개조하는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의 사회에 자연적으로 출현한 사고법이다.(77)

드림 타임을 통해서 본 현실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들소와, 들소가 있는 사막, 여러 자연물들 위로 유동적인 선과 점,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선과 동심원등이 겹쳐진다. 이렇게 표현된 것은 사막의 들소가 키워주는 풍요로운 생명의 모습이라고 한다.(77) 내부시각으로 본 역동적인 빛의 에너지가 유동하는 상태와, 에너지로 충만한 형태 형성의 장에 생명체나 지형 등이 출현하는 상태, 이 두 상태를 하나로 종합하는 사고가 높은 수준으로 구현된 것이 드림 타임의 사고다.(77)

 

시야 협착

 

모든 것이 생겨나지만, 아무 것도 고정되지 않은 에너지 장이란, 스피리트들로 충만해 있는 세계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의미를 포함해) 아직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채, 어떤 존재도 물질적인 형태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스피리트들은 유동하는 마음 내부와 외적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를 왕래한다. 인간의 뇌의 초월적 지성은 신과 국가를 창조해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스피리트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현대인에게 시야 협착이 발생하면서, 그들은 이제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세계,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는 세계만을 본다. 시야가 좁아진 세계 속에서 현대 인류는 존재론적 위기(__쪽)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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