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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인류 대항해](3) 꿰맨 보트, 상류층 지도자의 상징물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5-03-31 14:01
조회
17

꿰맨 보트, 상류층 지도자의 상징물

 

 

1만 년 전 잉글랜드 북부 스타카 지역은 불규칙한 온난화가 반복됐다. 기후가 따뜻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얕은 계곡, 갯벌, 모래톱이 얽히며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는 지역이 되었다. 온난화로 인해 발트 해와 북해까지 진출하며 해안 지대에 정착했다. 북대서양 사람들은 육지와 바다 모두를 자신들의 사냥 영역으로 생각했다. 여자들은 식용 식물을 채취하고 남자들은 숲에서, 물가에서 고기를 잡았다.

짧은 통나무배는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는 연안 습지대와 소택지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사냥꾼들은 이전에는 접근하지 못했던 지형을 이 통나무배로 지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물고기가 풍부했다. 북대서양 사람들은 통나무배를 타고 발트 해와 북해의 좁은 유입구와 작은 호수 사이를 누비며 이곳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바다 풍경을 해독해 갔다.

그러나 더 멀리 더 많은 물건을 실어 날라야 하는 연례행사를 위해서는 통나무배로는 한계가 분명했고 그렇게 가죽 보트가 사용되었다.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구조가 간단했고, 풍량이 짧고 가파른 바다를 잘 가로지를 수 있는 튼튼하고 유연한 선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가축을 실어 날라야 하는 상황이 되자 널을 꿰매어 잇댄 대형 선박이 출현한다. 선체 길이가 18m에 최대 20명의 사람을 실을 수 있었다. 이 꿰맨 보트로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싣고 더 멀리 나아가 교역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었다.

저자 브라이언은 꿰맨 보트가 가죽 보트와 비교할 때 이점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제한적인 것에 비해 제작 과정에서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는 이 보트를 왜 사용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실용적, 현실적 이유 외에 제작 과정에서 요구되는 엄청난 노동력, 커다란 널판, 숙련된 장인 등의 조건을 고려하면 이 배의 소유주가 배타적 해상 집단의 일원임을 드러내기 위한 의식적이고 과시적인 행위였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 꿰맨 보트를 이용하는 시대는 활발한 교역의 시대로, 부유한 상류층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멀리 떨어진 동족 간의 교환 활동이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 사회 내 상류층 지도자의 위신은 위부 사회들과 교역하는데 더욱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와 높은 지위를 획득은 더 많은 추종자들을 모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밖으로 나가 다른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부와 사회적 권위 없이는 외국 사회와 교역이 어려웠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외부와의 교역을 위해 꿰맨 보트를 제작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했다.

기원전 2250-1950년경이 되면 영국 해협과 북해를 가로지르는 이들의 접촉의 강도는 더 강해졌다. 멀리 떨어진 각 사회는 경제적, 정치적 교류를 하면서도 제의적으로도 서로 엮였다. 이 대서양 북쪽은 바다를 해독하려는 이들에게 해독이 가장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바다는 늘 변덕스럽게 바뀌는 곳이었고, 갑작스럽게 돌풍을 동반했다. 예측 불가능한 바다로 그들이 들어갈 수 있기 위해 그들은 선택한 방법은 이미 이 바다를 경험한 그들의 조상을 기리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바다에 있는 신에게 심해 봉헌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각 사회는 제의를 동반한 상호작용 패턴을 만들며 예측 불가능한 바다의 위험한 힘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끈끈하게 엮어 갔다.

이때 죽은 조상들은 상류층 지도자들로 한정되었으며 죽으면 의례 사치품들과 함께 무덤에 매장되었다. 살아서 상류층 지도자가 되는 것은 바다를 건너 교역하는 자가 되는 동시에 죽어서는 그 사회에서 공경받는 조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꿰맨 보트는 자신이 이 같은 상류층 지도자임을 증명하는 상징물로 역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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