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신의 발명] 에세이 주제문 – 바둑으로 자발적 대칭성을
바둑으로 자발적 대칭성을
아침부터 퀘퀘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지럽힌다. 처음에 필리핀에 왔을 때는 단순히 자동차와 공장 매연 냄새 인줄 알았다. 그러나 현지인에게 들어보니, 쥐가 썩는 냄새라 한다. 날씨가 더워 4모작이 가능해서 그런지, 음식과 과일, 생선등이 매우 풍부해서 만물이 빠르게 자란다. 개미와 바퀴벌레, 쥐 등을 쉽게 볼 수 있고, 도심에 인구가 몰려 살아서 서민들이 사는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있다. 그렇다. 빠르게 만물이 확장되고 그만큼 많이 죽는다. 죽음과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낀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가렵게 한 화두가 있었다. 자발적 대칭성이 깨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박박 긁어서 알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아슬아슬하게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피해 가는 뉘앙스를 주는 듯했다. 마치 독자 네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듯이 알 듯 모를 듯 교묘하게 힌트를 주는 듯 했다.
대칭성이 높다는 의미는 스피리트 세계 내부에서 스피리트와 그레이트 스피리트가 자유롭게 왔다 갔다가 하면서, 자유자재로 변용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고정할 수 없고, 스피리트들은 위치나 성질을 변화시켜 변신을 자유롭게 한다. 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자연스러운 사고가 가능케 하고 모든 우주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더욱더 큰 그림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공존의 삶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자발적 대칭성’이 깨졌다. 도대체 왜? ‘자발적’이라는 뜻은 ‘스스로 알아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알아서 대칭을 이루고 있던 세계가 무너진 것이다. 물리학에선 어떤 ‘압력’이 가해졌을 때, 고차원 대칭을 이루던 구가, 저차원 대칭을 이루는 원으로 바뀐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에서 커다란 대이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예로부터 모든 힘의 원천은 자연에 있었다. 그 원천에 접근할 수 있는 샤먼이나 전사들은 위험하다고 여겨졌고, 사회 중심에서 소외당했다. 그런데 샤먼처럼 특출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 자신이 권력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든 힘의 원천과 접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왕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점점 인간을 위한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여기서 사면과 전사들은 왜 마음을 바꿨을까? 사유재산과 선남선녀를 독식하며,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면 자연과 불균형을 가져오고, 이것이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동양의 모든 사상의 근본인 ‘음양오행’에서는 양이 다하면 음이 온다고 한다. 봄과 여름에서 만물이 태동하고 성장하면, 반드시 가을과 겨울의 수렴하는 기운을 맞게 된다. 음과 양이 그 기운이 절정을 다해 극에 이르면, 그 기운이 바뀌는 것이다. 그것이 조화이고 균형이다. 뫼비우스 띠도 앞면을 양, 뒷면을 음이라고 보면 이치가 동양의 음양 사상과 잘 어울린다. 뫼비우스의 보이는 앞면이 극을 다하면, 안 보이는 뒷면으로 자연히 이어진다. 삶이 다하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근데 그 뫼비우스의 띠가 절단되었다. 안팎의 경계가 철저히 나뉘었고, 서로 자유롭게 연결되기 힘든 구조가 되었다. 그래서 지고신이 생겼고, 변하지 않는 순수한 빛으로서 인간 삶에 군림하여 기준이 생겼다. 이러한 기준이 너무나 견고하고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답답하다. 마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 각자의 창조성을 가지고 태어난 70억 인구가 오직 돈과 권력으로 인생을 평가받는 느낌이다. 후진국은 아직도 먹고살기 힘들어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고 있고, 선진국은 지나친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 공허함을 느끼며 뭔가 색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국가 간, 인종 간의 대칭성이 무너진 것이다. 인류의 진정한 증식을 위한 교류가 사라지고, 자국 이기주의가 판친다.
그럴수록 대칭성을 회복하는 노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오히려 지고신에 가려서 God에 눌려서 찌그러진 내방신과 요괴로 전락한 잔여 스피리트가 더더욱 약동한다. 그 중의 좋은 예가 대칭성을 회복하려는 예술이다. 현대 환경문제를 풍자하는 각종 그림,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힙합, 기존의 인간 본위의 과학을 뒤엎는 불교와 양자역학의 결합 등등
그중 나의 대안은 ‘바둑 수련’이다. 바둑은 음으로 지킬지, 양으로 움직일지 매 수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창조적인 생각을 펼치는 인생 드라마이다. 그러면서 점점 상대의 변화에 리듬을 맞춰 대응해야 하는 3중주 하모니와 같다. 음양중, 천지인, 내땅과 상대땅과 경계. 여기서 경계는 사피엔스의 야생적 사고이다.
경계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둘 수 있음을 말한다. 음과 양의 적절한 흐름을 탈 수 있는 선택이다. 이는 그레이트 스피리트와 일반 스피리트의 조화이기도 하다. 바둑 고수가 그레이트 스피리트라면, 초보자는 일반 스피리트이다. 고수가 초보자 돌을 다 잡아먹으면, 고수는 시시하고 초보자는 절망에 빠진다. 마치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착취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고수가 하수에게 미리 바둑판의 경계에 핸디캡을 주고 바둑을 두면, 신기하게도 집의 균형이 맞춰진다. 하수는 고수의 돌을 잡으며 배울 수 있어 즐겁고, 고수는 지혜를 전수하기 때문에 뿌듯하다. 내 지혜를 증식하는 공간인 경계에서 고수와 하수가 만나 신나게 리듬을 타며, 돌을 서로 먹고 먹힌다. 땅을 서로 빼앗고 지킨다. 그렇게 섞이면서 한 판을 두면 그 자체가 인생 드라마 1편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렇게 두 판, 세파는 쌓이며 점점 균형 잡힌 바둑이 태어난다. 그러면 우주의 대칭성은 자연히 회복될 것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몸으로 느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