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4부 수업후기, 말의 마법
4/2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3』 수업 후기
말의 마법
우리는 4월 4일 11시 22분 말이 현실에 신비한 위력을 발휘하는 현장을 경험했다. 그 시간 대한민국 전역에 울려 퍼진 헌법재판관의 말은 마법과도 같았다. 헌법재판관의 말이 발화된 이후 대한민국의 현실은 바뀌었다. 판결의 주문主文(‘피청구인 대통령 윤**을 파면한다’)은 주문呪文과 같았다. 온 국민과 미디어가 한마음으로 낭독된 판결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도 놓치지 않고 집중하였다. 이날의 동영상을 다시 보기 위해 유투브에 들어갔다가,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니 판결문이 너무 쉽고 간결하여 10번 이상 들었다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필사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국회와 정부에서 시행되는 법들도 모두 말로 선포되었을 것이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성혼선언문에 신랑과 신부가 말로써 대답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 대답을 이후로 신랑과 신부는 혼인신고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혼의 관계에 돌입한다.
말은 수단이자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말을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사람들과 노동을 하고 친교를 나누면서, 말과 행동은 하나가 되어 내가 상대에게 영향을 주고, 상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계속 진행된다. 타인과 공동 행동을 할 때 말이 없이 진행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없다. 응급 상황에서 말의 위력은 더 커진다. 정확한 말을 하고 그 말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누군가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다. 말리노프스키는 언어의 화용론적(pragmatic) 측면을 강조한다. 그리고 말의 마법적인 힘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트로브리안드인들이다. 그들은 주술로서 경작지를 일구고 공동체를 이끌어 나간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부모를 행동하게 만들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각인된 본성으로 울음과 비분절적 언어로 부모를 조정하는 언어 행동을 한 적이 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지만 이때 이미 우리는 말의 전능한 힘을 경험했고 무의식 어딘가에 말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화용론적 언어관
말리노프스키는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의 1부에서 트로브리안드 지역의 경제와 사회문화, 경작지와 주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2부에서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반성이 이어졌다. 그리고 3부는 주로 트로브리안드인들의 언어에 대한 연구이다. 1부와 2부는 3부를 위한 전주곡에 불과했나 싶을 정도로 3부의 언어론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3부가 양도 제일 많다.
말리노프스키는 언어를 의사소통 모델로 보는 것에 반대하며 화용론적 언어관을 주장한다. 거의 화용론의 선구자라 할만하다. 말리노프스키는 언어를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에 반대한다. 언어를 의사소통 모델로서 생각하는 것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고 말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를 오고 가는 정확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말은 단순히 정보나 이야기가 아니다.
언어는 인간 행위에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화용적인(pragmatic) 역할을 담당한다. 말은 발신자와 수신자를 오가며 지시하고 행동을 요청하고 중단없이 현실을 일으킨다. 말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언어에 대한 오해
언어는 정신적 과정과 나란히, 그것에 정확히 대응해서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다. 언어가 생가을 그대로 반영하거나 되풀이하는 기능을 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위험하다. 언어의 주요 기능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도 아니다.
언어가 말하는 사람의 머리에서 듣는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옮겨 붓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그릇된 이해가 만연하고 있다.
신체적 활동의 일부이자 신체적 활동과 동등한 말
모든 일은 말과 신체 활동이 조화를 이루면서 진행된다. 실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체적 움직임과 말과 몸짓이 동원된다. 토착민들은 나무나 산호 노두나 돌무더기 등의 대상을 찾아서 그것들의 적절한 이름을 상의하고, 가리키며, 다툰다. 마침내 그들은 결정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대화하고, 돌아다니고, 가리키고, 도구를 사용한 결과이다. 여기서 말은 몸짓이나 동작과 동등하다. 여기서 말은 생각을 표현하거나 관념을 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력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말의 화용적 힘이 최고점에 달하는 경우
말을 성스럽게 사용하는 경우
주술 문구들, 신성한 발화들, 액막이, 저주와 축복, 기도 등의 성스러운 말은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움직임으로써, 보통 간접적으로, 창조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혹은 신성한 문구들이 준(準)법적으로 작용하면서 사회적 인가(認可)를 요구할 경우에도 그러하다.
말의 역동성이 최고점에 달한 두 번째는 말의 직접적인 화용적 효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투에서 내려진 명령, 항해하는 배의 선장이 내린 지시,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은 다른 어떤 신체적인 행동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과정을 변형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강력한 언어행동, 주술
토착민 자신에게 주술 문구는 한 편의 민간전승이 아니며, 더군다나 민족지 자료는 확실히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힘을 풀어놓는 언어행동이며, 토착민의 믿음 속에서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행동 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행동이다. 나아가 주술은 강력한 사회 조직화의 힘으로 작용한다. 모든 주술 의식의 핵심인 주술 문구의 발화는 토착민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성스러운 행동이다. 주술 문구를 단지 흥미로운 언어학적 사례들을 담고 있는 한 편의 장황한 이야기로 다루려는 민족지학자는 주술에 대해 가장 중요한 점을 정말로 놓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주술의 문화적이고 사회학적인 의의를 놓치게 될 것이다.
맥락의 중요성
말은 말해진 단어들뿐 아니라 표정, 몸짓, 신체 활동, 발화를 교환하는 동안 참여한 사람들의 무리 전체, 그리고 이 사람들이 속해 있는 환경의 일부를 포함한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