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불교] 세속제와 승의제
불교에서 윤회한다고 말할 때 윤회하는 주체는 무엇인가. 동일성을 유지하는 그 실체는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존재의 실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이 윤회한다고 할 때 동일성을 유지하는 주체가 없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을 인과관계의 네트워크로 해소해 버리고, 연속되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세계관과 여러 차례 윤회전생을 반복하며 포인트를 쌓아 깨달음의 경지에 가까워지고 있는 주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세계관이 충돌한다. 이 둘 사이의 모순에 대해 하시즈메와 오사와의 대화를 살펴보자.
인간은 생명이 가지고 있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의 방식이 있다. 살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규칙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인과의 소용돌이인 전체로서의 이 세계를 인식한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회 상식의 가치를 인정한다. 인간은 일단 상식 속에 살고 있고, 일단 나한테는 고타마, 당신한테는 아난다라고 이름이 붙어 있어 동일성이 있다. 거기에 질서를 만들어 선악이 있고, 착한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 그 안에 인간적인 방식, 올바른 삶의 방식이 있다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가르친다. 살생은 안된다는 살생계는 인간만이 지킬 수 있는 규칙이다. 사회의 근저에 있어서 인간이기 위한 조건을 지탱하는 규칙이다.
부파불교는 계의 이런 작용을 인과론으로 설명하기 위해 계체라는 것을 생각했다. 계를 받으면 계체라는 것이 깃들어 그 사람이 악을 행하기 어렵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계체가 원인, 행위가 결과라는 인과론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도 순순히 인간은 인과론의 세계에서 올바른 인간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인간은 사회 상식을 지킬 가치가 있고, 그것이 부처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동일성이나 사회상식을 일단 무화한 뒤 다시 복원하는 것이 불교의 중요한 핵심이다. 불교는 잠정적인 진리(세속제)와 궁극의 진리(승의제)를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