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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물과 인류](2) 몸에 새긴 기억으로 항해하다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5-04-21 22:02
조회
30

몸에 새긴 기억으로 항해하다

 

 

 

지도 없는 바다

어떤 목적이든, 긴 여행 혹은 탐험을 위한 길을 떠난다고 할 때 나에게 바다는 육지보다 더 무모한 공간으로 보인다. 육지 위에는 건물, , 물건 길 위에서 눈에 잡히는 것이 많다. 눈에 걸리는 그 대상들이 인간에게 안정감을 준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정표가 되고, 이 이정표들 덕에 나의 자리를 가늠하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정표들로 지도 그리기가 가능하다.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내가 가야 하는 길에 지도가 없을 때 또 지도를 그릴 수 없을 때 인간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바다 위에서는 눈에 잡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어디로 가야 다음 행선지로 도착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 혼돈과 미지의 영역인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해양 인류학 세미나에서 만난 고대 항해자들은 무모하지 않다. 그들은 바다를 알지 못한 채 그저 호기심과 모험심만으로 배를 타지 않는다. 그들은 바다를 안다’. 바다에 대한 충분한 정보, 지식과 지혜를 통해 항해에 최소한의 안정을 보장받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돌아올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바다를 해독하며 이 지혜를 키워갔다. 그런데 바다 해독 시에는 육지와는 조금 다른 눈이 필요한 듯 보인다. 바다 위에서는 당장 눈앞에 확인되는 선명한 대상들이 없기 때문이다. 육지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3의 눈이 요구된다. 간혹 드러나는 섬들을 제외한다면 그들은 계속 변하는 대상들을 읽는다. 별의 움직임을 보고, 바람의 방향과 세기, 바다의 색깔과 온도의 변화를 온몸으로 보고 읽는다, 느끼고 감각한다.

바다 인류에 소개된 항해자인 미크로네시아마우 피아일루그는 이 해독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는 별도의 항해 도구 없이 오직 별, 바다와 바람의 움직임, , 섬들을 관찰하는 것에 의지해 항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 이 자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는데, 카누 바닥에 책상 다리를 하고 앉거나 누워서 바람이 일으키는 파도를 느끼고 해류 밑의 소리를 통해 먼 곳의 폭풍우를 감지했다. 지도가 아니라 의 감각에 의지해 해독하고 방향을 잡는다. 항해자의 몸은 어떻게 지도 없이도 바다를 해독하며 항해 할 수 있는 것일까? 지도 없는 해독이 어떻게 가능할까? 만약 몸이 바다를 해독하는 기준이 된다고 해도, 문제는 이 몸이 하나의 고정 값으로 위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준이 계속 바뀐다면 측정하려는 거리와 방향 또한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마우 피아일루그와 같은 전통 항해사들은 떠도는 몸으로 어떻게 바다를 읽을 수 있었을까?

 

팔루(palu), 몸에 지혜라는 기억을 새기다

바다 인류에서 저자 주경철은 정통 항해술은 엄선된 사람들에게만 전수하는 비밀의 과학이었음을 알려준다. 마우 피아일루그의 고향 캐롤라인 제도헤서는 1930년대까지도 선발된 5세 아이에서 할아버지가 구술로 항해술을 전하는데, 16세에 이르면 돌이나 나뭇가지로 항해용 별자리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합격했으며, 이후 Pwo라는 입문 의례를 통과해 최고 항해인이라는 뜻의 팔루(palu)’라는 직위를 얻어야만 한다.

팔루는 단순히 배를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다 다층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존재로 거듭난다. 앞서 말했듯 현대적인 나침반이나 GPS없이 기억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별의 움직임, 해류, 파도의 패턴, 바람의 방향, 새들의 비행, 구름의 모양, 해양 생물의 습성 등을 종합적으로 읽어내어 항로를 설정하고 유지한다. 자연의 변화 주기를 읽는 이 특별한 능력은 선대를 통한 전승 없이, 한 세대에서의 배움만으로는 부족하다. 해독 기술은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되며 재차 확인되어야 한다. 오래전부터 자연을 해독한 조상의 지혜는 구술로 후대에 이어진다.

예컨대, ‘스타 컴퍼스(Star Compass)’라 불리는 항법은 가상의 원형 나침반처럼 하늘을 32~36개의 방위 구역으로 먼저 나누고, 항해사는 자기가 항해할 방향과 관련된 별들이 어느 시점에 어느 위치에서 뜨고 지는지를 정확히 외워야 한다. 새벽, 저녁, 자정 각기 다른 시간에 나타나는 특정별을 기준으로 현재 위치와 경로를 파악한다. 별들은 계절마다 위치가 달라지므로, 항해자들은 1년 주기의 별자리 이동 패턴을 완전히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나침반은 조개껍데기나 산호 조각을 모래 위에 배치하여 별의 위치를 시각화하고, 이를 통해 항해 지식을 구술로 전수한다.

팔루는 이 같은 지식을 구전을 통해 체화하면서 Pwo라는 입문 의례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 의례는 단순한 기술적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준비가 완료된 자만이 참여할 수 있다. 의례는 며칠 동안 진행되며, 노래, 기도, 침묵, 선포, 몸짓 등 다양한 의례적 수행이 포함된다고 한다. 팔루는 Pwo를 통과하면서 은유적 언어, 기호 체계, 신화적 이야기, 천문학 지식 등을 포함한 복합적인 항해 지식 체계를 구술로 함께 전수받는다. Pwo는 지식의 계승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성, 공동체에 대한 책임, 존재 방식 자체를 새롭게 하는 전환점이다.

태평양의 전통 항해술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신성한 지식이자 문화적 유산이기 때문에, 팔루는 이를 기억하고 전승하는 자로서 공동체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팔루의 항해는 육체적 능력뿐 아니라 정신력, 영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바다 위에서 샤먼적 역할도 수행하면서 바다의 기운을 읽고, 공동체의 안전을 기도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능력에, 그것도 몸에 새겨 완전히 체화해야 하는 이 지혜 공부에 수년 혹은 수십 년간의 구술 학습과 실제 항해 경험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미지의 바다를 친밀하게 전환하기

팔루와 그의 조상들이 해독 기술을 체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막무가내로 변할 것 같지만 감사하게도 그 변화 속에서 해독이 가능한 주기나 규칙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이 순환과 반복으로 변화한다는 말이다. 항해자는 바다의 변화를 보면서도 그 가운데 일정한 규칙이나 법칙을 읽어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읽기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능력, 변화 가운데 주기와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이 항해자들의 진짜 능력이다. 바다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 주기와 규칙을 통해 미지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다를 예측 가능한, 친밀한 대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가 예측 가능해지면 항해자의 머릿속에 지도와 좌표가 그려진다. 해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또 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하는지를 판단하며 내 위치를 가늠한다.

예컨대, 인도양 항해자들은 이곳 바다가 여름과 겨울의 강수량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을 읽어냈다. 겨울 몬순은 대체로 11-3월경 북동풍으로 부는데,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대륙에서 해양으로 불어간다. 반면 여름 몬순은 5-9월 남서풍으로 불어 습한 바람이 해양에서 대륙으로 불어와 많은 강수를 유발한다. 인도양의 항해자들은 바람을 읽고 그 방향에 맞춰 순항하는가 하면, 역풍을 돛으로 이용해 전진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해안가 육지에 정박에 휴식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이 몬순 바람의 변화 주기에는 큰 예외 없이 예측 가능하다는 특성 덕분에 인도양 장거리 항해가 가능했으며 바람에 대해 알기만 하면 일 년 내로 귀환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서 항해했다.

마우 피아일루그가 누볐던 태평양은 무역풍(Trade winds)이라 불리는 남동풍이 분다. 이 이름은 무역에 이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늘 규칙적으로 분다는 의미이며 그런 뜻에서 탁월풍(일정 시기에 특정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라고도 한다. 탐험에 나선 사람들은 이 바람을 거슬러 동쪽으로 항해하다가 필요하며 탁월풍을 타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항로를 잡았다.(바다 인류36)

바다를 포함한 자연의 순환은 부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단편적인 듯 보이는 눈앞의 변화도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전체 움직임 위에서 가시화된다. 바다를 해독하는 것은 눈앞의 작은 변화를 감지해 우주 전체 흐름과 다음에 연속될 움직임을 예상하는 일이다. 이는 몸에 총체적 기억을 새기고 몸의 감각과 직관을 통해 실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항해의 지혜를 기억하는 몸은 지금 여기서 어디로 얼마만큼 더 가야 할지, 언제 돌아와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며 스스로 항해의 나침반이 된다.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로 가고 있으면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를 안다면 항해는 무모하거나 두려운 길이 아니다. 내가 그 대상을 이해하고 아는 순간은 그 대상에 맞물려 있는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이며 그 대상과 내가 함께 서 있는 지도가 그려지는 순간이다. 그때 미지의 대상은 나에게 친숙한 존재가 된다. 바다 위 항해자들은 몸으로 바다를 읽고, 그 지혜를 몸에 새겨 항해한다.

이 기억의 항해술은 문자나 디지털 기술 없이, 신체화된 기억과 감각의 반복 훈련을 통해 바다를 해독하는 능력으로, 여기서 기억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몸과 환경이 함께 움직이며 새겨낸 리듬, 패턴, 방향성 그 자체이며 이들이 몸에 각인된 상태이다. 이는 지도 없는 항해로 별, 바람, 파도, , 해류 등의 자연 현상을 감각하고, 그것이 반복되는 패턴을 기억하여 항해하는 기술이다. 마우 피아일루그 같은 전통 항해자들은 떠도는 몸에 이 기억을 새긴다. 몸이 움직일 때 그 기억도 함께 이동한다. 현대 GPS가 제공하는 순간의 위치와 달리, 기억의 항해술은 흐름 속에서 위치를 감각한다. 이들에게 항해란 물리적 경로를 찾는 게 아니라, 조상이 알려준 신화 속 존재들과 조응하면서 우주의 운행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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