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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물과 인류 에세이(2)] 안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5-04-22 02:11
조회
19

 

안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

 

두렵고도 먼 바다

나는 바다를 두려워한다. 블루머신(헬렌 체르스키 지음, 김주희 옮김, 남성현 감수, 쌤앤파커스)을 읽으며 나는 이 두려움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궁금해졌다. 나와 달리 책의 저자는 인간의 정체성을 바다로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내가 바다로부터 왔는데, 나의 근거가 되는 바다를 두려워한다니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바다와 면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 번도 내가 바다와 친밀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깝지 않으니 바다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내가 바다 인류라는데, 바다와 먼 존재로 두려워만 하고 있다니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헬렌 체르스키는 바다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바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바다가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고, 그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서로가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 알게 되었다. 단단한 땅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다는 인류에게 삶의 조건이자 배경이었으며,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해왔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바다는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눈 한 번 질끈 감거나 고개 한 번 돌리면 모른 척하고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알고 싶은 정도만 알면 되는 바다는 실체가 없는 바다였다. 바다와 가깝지도 바다의 실체를 알지도 못하며 바다를 두려워하는 내가 어떻게 바다를 내 정체성의 일부로 여길 수 있단 말일까.

바다를 알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생각했는데, 해양 인류학의 두 번째 책 인류의 대항해(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는 바다에 대한 불안감은 바다의 무자비함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무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49). 아는 것이 두려움 극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두려움이 무지에서 온 것이 아니라니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나는 난감해졌다. 브라이언 페이건은 바다에 대한 경험이 바다에 대한 감정을 불러온다고 했다. 바다를 안다고 해서 두려움이 극복되는 게 아니라 바다를 친밀하게 경험해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안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고, 머리가 하는 게 아니라 몸이 하는 것이다.

나는 두 책을 통해 바다에 대해서 안다는 것, 바다를 경험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로부터 내가 바다 인류임을 이해하고, 두려움에서 조금 벗어나보려고 한다.

 

지구의 푸른 시스템

책의 저자 헬렌 체르스키는 바다를 엔진으로 정의하고 바다의 여러 요소들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보여주었다. 해양 엔진의 영향 아래 있는 지구의 존재로서 인간은 해양 생명이었고, 바다와 연결된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바다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나는 바다와 어떤 상호적인 관계도 맺을 수 없었기에,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책의 마지막에서 바다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바다에 관심을 갖고 바다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했고, 자신의 저서도 그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들려준 바다 이야기를 통해 바다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전과 달리 바다와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고, 바다에 관심도 더 생겨 바다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되었기에, 바다와 관계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풍경으로서 바다

인류의 대항해의 저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수만 수천 년 전 인류의 항해의 시작을 고고학적 자료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유추해간다. 나는 그가 인류의 항해의 시작을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연안 항해와 기준 가시선 항해를 통해 바다 풍경을 거의 전부 해독했다(44)”. 반대로 이야기해서 연안 항해의 경험 없이는 대양의 항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연안의 바다가 말하는 것을 잘 읽을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이 바다를 읽는 첫걸음이라고 한다. 연안의 풍경을 해독하고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바다의 탐험은 시작되고 바다와 가까워질 수 있다. “모든 대양을 해독하는 작업은 오랜 경험과 냉정한 현실주의, 조심스러운 항해 그리고 깊은 바다 풍경과 얼마나 친숙한가의 문제였다(49).”

이 책에 의하면 안다는 것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그 대상과 실질적으로 어떤 경험을 했느냐로부터 앎은 따라나오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친숙함은 긍정적인 친밀함이라기보다는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관계 맺음일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바다를 떠올려본다. 어렸을 때 가족과 바닷가에 자주 놀러갔지만, 장난을 좋아했던 아빠는 바다에 내 머리를 집어넣거나 나를 바닷물에 빠뜨리며 놀았고 겁이 많았던 나는 그때마다 좀 오버하자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성인이 되어 물과 좀 친해지려 수영을 배웠을 때는, 과음을 한 다음 날의 수업에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경험만 하고 나는 다시는 수업에 가지 않았다. 그 후 바다는 세월호라는 사건으로 다가왔고, 두려움에서 떨었을 그들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는 내가 경험한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한 연안의 경험처럼 내가 직접 연안을 항해할 수는 없지만, 나의 방식으로 바다 연안의 첫걸음을 어떻게 시작해보면 좋을지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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