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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노 카츠미] 곤마리는 정리 계곡의 나우시카인가?(2/2)

작성자
덕후
작성일
2025-05-10 16:20
조회
45

 

일본어 강독팀에서 함께 읽은 오쿠노 카츠미 モノも死者きている世界から人類學者わったこと(물건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 있는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류학자가 배운 것)을 연재합니다. 이한정 선생님의 지도 아래 오선민 선생님, 김미향 선생님, 조혜영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애니미스틱한 수법은 곤마리 방법의 다양한 국면에 나타난다. 그것은 남아 있는 물건, 즉 설레었던 물건들의 수납에도 이용된다. 옷의 수납법에는 옷걸이를 사용해서 거는 거는 수납, 하나하나 접어서 서랍 등에 진열하는 접는 수납이 있다. 곤마리는 접는 수납쪽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접는 수납은 귀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은 접는 것의 진정한 위력을 모릅니다”(곤도 2019:101).

 

양복을 접는 것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의 손을 사용해서 양복을 만져주는 것으로, 양복에 에너지를 쏟는 데에 있습니다. (곤도, 2019:101-2)

 

  ‘처치가 상처 난 부위에 치유를 촉구하듯이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는 핸드파워 같은 것이 의복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것이라고 곤마리는 말한다. “그러니까 깔끔하게 개켜진 옷은 주름이 쫙 펴져서 옷감이 확실히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곤도 2019:102-3).

 

옷을 개킨다. 그것은 단지 수납을 위해 옷을 작게 접는 작업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옷을 위로하고, 애정을 표하는 행위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곤도 2019:102-3)

 

  ‘위로하다’란 위로받는 상대의 기분을 상상하고 행해지는 행위이다. 위로해 주는 일로 인해 옷의 기분이나 감정이 정돈되고 옷이 생생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거는 수납에 관해서도 곤마리는 흥미로운 점을 말하고 있다. 같은 카테고리의 옷은 옆에 나란히 한데 모아서 거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한다. 그에 관한 설명으로서,

 

자신과 같은 타입의 사람과 함께 있으면 무조건 안심해 버리는 것은 사람이나 옷이나 동일. 카테고리별로 나누는 것만으로 옷들의 안도감이 다릅니다. (곤도 2019:109)

 

  사람이나 옷이나 같은 카테고리의 사람이나 옷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게 차분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곤마리는 사람과 의류가 똑같은 기분이나 감정을 안고 있다는 견해로 말하고 있다.

  그것들이 다섯 살 때 주부용 생활 잡지를 읽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열다섯 살부터 본격적으로 정리정돈의 연구를 시작하고 열아홉 살부터 정리정돈 컨설턴트로서 생활을 시작”(곤도 2019:4)한 그녀 자신의 경험에서 얻어진 수법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21세기에 지금 그야말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 애니미즘에 입회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호들갑스럽게 애니미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일종의 필요예컨대 물건의 증식을 어떻게든 억누르고 쾌적한 생활공간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현대인에게는 피할 도리가 없는 필요에 따르는 과정에서 출현한다고 하는 가능성을 곤마리는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건의 기분이나 감정을 짐작하거나 물건을 위로하거나 물건들의 안도감을 생각한다거나 하는 애니미스틱한 수법은 곤마리의 정리 컨설팅 문맥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들은 만인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그녀의 성공이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수법은 그녀의 종교나 무언가 특수한 경험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말하자면 우리 인간이 공통으로 가지는 물건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에 그 원천이 있는 듯하다.

  똑같은 경험은 예를 들면 내가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종교인류학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레포트 중에서 뚜렷하게 간파할 수 있다. 레포트에는 수강생들의 구체적인 애니미즘 경험이 쓰여 있었다. 몇 개 소개하겠다.

 

나의 애니미즘적 즉자체험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당시, 집에 있는 가구와 머릿속으로 대화했다. 예를 들어 자려고 침대에 올라갈 때 나도 모르는 올라가는 타이밍이 존재하고 있어서 그 타이밍을 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침대였다. 타이밍이 나쁘면 침대로부터 다시 한번이라고 들은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올라가거나 했다.

 

……이름 붙였든 붙이지 않았든 인형을 버리게 되면 격하게 반대하고 아무래도 내놓게 되면 누군가 다른 사람 곁에서 행복해지길 바래라고 빌었던 적이 있다. 완전히 더러워진 타월을 세탁할 경우에도 손에서 내려놓는 것을 거부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엄마가 타월이라고 해도 더럽혀져서 슬퍼하고 있어요라는 말에 꺾인 기억이 있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인형도 타월도 무기물이고 동물과 다르고 거기에 생명은 없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 무기물의 행복을 빌고 걱정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꽃과 같은 식물을 좋아해서 관엽식물이 집에 많이 있고 물을 줄 때 말을 걸려고 한다. “커졌네. 물 마시고 좀 더 자라라라고 하거나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식물 가까이에 틀고 좋은 곡이야라고 말해 보거나 한다. 그러자 다음 날이면 말 걸었던 때보다도 예쁘고 곱게 자랐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세 개의 레포트에는 올라가는 타이밍을 명령하는 침대, 행복하길 바란다고 기원하는 인형이나 더럽혀져서 슬픈 타월, 말 걸거나 보살피거나 하는 일에 의해 예뻐지는 식물 등과의 대화가 쓰여 있다.

  침대, 인형, 타월, 식물이라는 물건들은 어느 것이나, 인간과는 외견상은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 인간과 같은 성질의 기분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물건이나 식물 등이 인간과 모습이나 형태는 별개라지만 명령하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한다(어쩌면 그 결과, 예쁘게 되기도 하는)라는 마음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직관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애니미즘이다. 인간과 물건의 대화 과정에서 애니미즘이 생겨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니미즘이란 인간과 사물·대상·객체와의 대화 속에서 마음의 측면에서 서로 관계가 맺어진다는 상정 아래 생기는 일종의 경험이라는 것을, 여기에서는 재확인해 두고 싶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후 몇 번이나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곤마리도 정리를 할 때 자신이 가진 물건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레는가, 어떻게 느끼는가, 정중하게 마주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물건을 통한 자기와의 대화”(곤도 2019:83)라고 하거나, “가끔 음악을 틀어놓고 기분 좋게 해버리자라는 정리법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모처럼 물건과의 대화가 음악으로 얼버무려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곤도 2019:84)라고 말하고 있다.

곤마리 방법에서는 자신과 물건이 마주하는 대화 과정이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편성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써오면서, 그 때문에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방금 말했듯이 곤마리 방법은 자신과 물건과의 순수한 대화가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를 목표로 삼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건이 아니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면 그것은 과연 애니미즘일까? 애니미즘이 이미 말했듯이 지구나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 가운데에서 인간만이 반드시 주인인 것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라고 한다면, 자기와의 대화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인간에 관한 것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 밖에 머릿속에 없다는 의미여서 진정한 애니미즘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대량소비시대에서 아무리 물건이 주변에 넘쳐나 자기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고는 하나, 심지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물건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애니미스트라면 자진해서 물건과의 관계를 끊고 단순한 쓰레기로 폐기한다는 행위를 그리 간단하게는 할 수는 없을 거라고도 생각된다. 학생들이 레포트에 썼듯이 물건과의 사이에서 특이한 관계성이나 물건에 대한 애착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서 쉽게 버릴 수 없었다든지 소홀히 취급할 수 없었다든지 하는 것이 애니미즘인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분리되어 쓰레기가 된 물건은 돌고 돌아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현대 자본주의 특유의 문제를 발생시켜 자연을, 심지어 자기 자신, 즉 인간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그러한 인간중심주의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제멋대로인 세계 이해를 아우르는 것을 과연 애니미즘이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이 책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곤마리 방법은 자신과의 대화일까, 자신과 물건과의 대화인 걸까? 전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을 확장하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니미즘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그와는 반대로 후자야말로 애니미즘의 이름에 걸맞는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단정해도 되는 걸까, 아니 그렇지 않은 걸까. 이러한 점이 이 책을 통하여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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