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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1] 10장 제우스와 그리스 종교

작성자
이성근
작성일
2025-06-03 16:18
조회
25

종교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1483~87절 발제 2025-06-04 이성근

 

비극 속에 피어난 인간의 성화(聖化)

 

그리스 고대 역사

그리스 암흑기(BC 1100년경~750년경)

그리스 상고기(BC 750년경~480년경)

미케네 문명이 붕괴하고 도리스인의 침입이 있었던 시기로, 문헌 기록이 거의 없고 고고학적 유물만 남아 있음. 이 시기에는 철기 사용이 시작되었으며, 사회 구조가 변동했음.

도시 국가(폴리스)가 형성되고, 아테네 민주주의가 시작. 예술과 문학이 발전하며, 호메로스가 서사시를 창작.

그리스 고전기(BC 500년경~323)

헬레니즘 시대(BC 323~146)

아테네가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 파르테논 신전 등 고전적 예술이 꽃피었으며,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이 일어남.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그리스 문화가 중동과 이집트까지 확산. 알렉산드로스의 죽음부터 로마의 그리스 정복까지 이어짐.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렸을 적 만화로 보았던 그리스·로마 신화. 그때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풍요와 증식, 사랑을 위한 전투와 싸움이 뇌리에 박혀있다. 그리고 한결같이 우람한 몸매와 풍만한 자태의 신들이 온몸의 육감을 매혹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리스인들은 어찌하여 수많은 신화를 창조했을까. 그리고 인간의 삶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 이러한 지적 정신문화가 그리스 제국을 이끌었을까.

 

83. 신통기와 신들의 세대 간 갈등

그리스 시인 해시오도스는 신통기에 수많은 서사시를 남겼다. 우주의 기원과 구조, 신들의 계보 등으로 구성돼 있다. 거기서 압도적으로 거론된 것은 역시 제우스이다. 그는 인도유럽 민족의 천신으로 무한한 하늘을 다스렸다. 그러나 그는 우주도 인간도 생명도 창조하지 않았다. 심지어 원초적 신도 아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태초에 단지 혼돈과 심연만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 넓은 가슴을 가진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태어났다. 그녀는 처녀 생식으로 자신의 땅을 뒤덮을 수 있는 하늘신 우라노스를 낳았다. 그리고 그와 결혼하여 총 18명의 자손을 낳는다. 바로 원초적이고 거대한 티탄신족의 탄생이다. 그러나 우라노스는 처음부터 자식들을 미워하여 가이아 몸속에 자식들을 숨겼다. 이에 화가 난 가이아는 자식들과 모의하여 아버지를 벌하기로 결심했다. 그 중의 아들 크로노스는 과감히 낫으로 아버지 성기를 제거하고 후계자가 된다. 이럴 수가. 하늘과 땅의 이야기가 이토록 폭력적이다니. 그러나 우리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후리아, 히타이트, 가나안 신화 속에 이미 아들이 낡은 전통과 문화를 상징하는 아버지를 추방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숱하게 실려있다.

크로노스는 누이인 레아와 결혼하여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와 제우스를 낳는다. 크로노스 역시 자식들에게 타도될까 두려워 자식들을 삼켜버린다. 이에 격분한 레아는 갓 태어난 제우스를 크레타섬 동굴에 감춘다. 그리고 제우스 대신 포대기에 바위를 싸서 크로노스가 삼키게 한다. 이후 제우스는 성장하여 형제자매 복수에 성공하고 우라노스 할아버지가 가둔 삼촌들(티탄 신족)을 풀어준다. 그러나 기존 기득권들의 세력권은 강력하여 할머니 가이아의 만만치 않은 저항을 받기도 한다.

84. 제우스의 승리와 지배권

제우스는 괜히 제우스가 아니다. 삼촌을 구해줘서 선물 받은 번개와 천둥의 엄청난 화력을 동원해서 기존 세력을 물리치고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바다와 지하의 지배권을 각각 형들 포세이돈과 하데스에게 맡기고 본인은 하늘을 다스린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결혼을 통하여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다른 신들과 공생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때 그리스는 식민지를 정복하여 다스려야 했으므로 각기 다른 지역의 신들과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줘서 적절한 관계를 맺어야 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사려의 여신 메티스와 결혼했지만, 그녀와 낳은 딸 아테나를 삼킨다.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예언 장차 난폭한 아들이 태어나 신과 인간의 왕이 될 것이다를 들었기 때문이다. ! 이토록 아버지가 자식들을 두려워서 하는가.

 

85. 최초의 종족에 관한 신화. 프로메테우스. 판도라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최초의 신과 인간은 같은 가이아(대지)에서 태어났다. 신들의 세대가 바뀌는 것처럼 인간도 다섯 종족의 세대교체가 일어난다. 황금종족백은종족청동종족영웅종족철종족. 중요한 것은 황금종족 때 인간은 신처럼 축제와 환락을 즐기고, 생로병사의 고통이 없었으나 를 지어서 완전성을 잃게 되고 점점 쇠퇴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지막 전승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인간을 만든다. 그는 인간을 무척 사랑하여 희생제의 때 황소의 맛있는 살코기와 내장을 위장 주머니 안에 숨겨 인간의 몫으로 남긴다. 그리고 질 낮은 뼈를 달콤해 보이는 지방질 안에 숨겨서, 제우스를 속였다. 여기에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는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회향 줄기 안에 불을 숨겨 인간에게 선물한다. 두 번이나 속은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쇠사슬에 묶어 낮에는 독수리가 그의 간을 쪼아먹도록 하고, 밤에는 재생시켰다. 다행히도 영원할 것 같은 고통은 추후 헤라클레스에 해방된다.

여기서 잠깐! 왜 하필 간일까? 고대 그리스 신화시대, 동양에서는 위대한 황제내경이 편찬된다. 동양의학의 성경으로 불리는 황제내경에 의하면, 간과 담은 목기(木氣)에 해당한다. 목의 기운은 봄에 무슨 씨앗을 뿌릴지 지식과 정보를 찾아서 1년 동안 수확을 책임지는 과감한 전략을 짜는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담대(담이 크다)하다라고 말한다. 설마 그리스인들은 이 사실을 알아서 굉장히 꾀가 많고 전략적인 프로메테우스의 담 큰 결정을 주의하라고 이런 신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인간 최초 여성 판도라를 보낸다. 이 상자에는 모든 신들로부터 선물이라는 뜻 이면에는 무려 1,000가지의 재난이 담겨있었다.

86. 원초적인 희생 제의의 결과

판도라를 통해 인간 세계에서 최초의 여성이 등장했다. 음의 세력이 출현한 것이다. 이는 온갖 종류의 고난, 불행을 의미했다. 악의 새로운 등장이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만 하더라도 출산과 양육, 협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여성의 역할이 지대했는데, 왜 여성은 청동기, 철기로 들어서면서 어둠과 혼돈으로 격하되었을까?

청동과 철기를 통한 생산량 증가는 거대 문명을 발동시켰다. 사유재산이 증가하고 왕권이 커지고, 부족에서 왕국으로 제국으로 점점 치달았다. 그에 맞춰 수많은 각기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가진 신민과 부족을 묶으려면 하나의 기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끝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신봉했고, 태양에 반하는 어둠은 공공의 적이었다. 더구나 제국의 팽창은 끝없는 전쟁이 강요되었으므로 체구와 근력이 비교적 큰 남성에게 더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을까. 이렇게 인류는 죄를 뒤집어쓰고, 여성이라는 혼돈이 생겨났으며 점점 인간의 운명은 비관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로메테우스가 준 선물은 인류에게 희망 자체였다. 그가 불을 선물하면서 동굴에 처박혀 계절도, 농경도, 가축 사육도 몰랐던 인간이 엄청나게 문명화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BC 5세기 아테네에서는 매년 프로메테우스를 위한 축제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렇게 원초적 희생 제의는 신과 인간을 분할시켰고, 둘 사이 거리가 생겼다. 인간은 죄를 짓고 점점 쇠퇴하고, 심지어 혼돈의 여성도 생겼지만, 프로메테우스에 의해 더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장단점의 영향 속에 제우스는 인간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지혜와 자비를 베풀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이 정의의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과거 인도에서는 이러한 희생제의에 대한 사변이 우주 창조 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고, 다양한 요가 기법을 통한 형이상학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 인류는 더 큰 어떤 가치를 위해 희생을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더 개선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그 가치와 신의 정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87. 인간과 운명: “생의 환희의 의미

강력한 일신교를 주창했던 유대기독교적 관점에서 그리스 종교는 상당히 비관주의처럼 보인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작가였던 호메로스는 인간을 바람에 흩어져 땅에 떨어지는 잎사귀에 비유하며 빈곤, 질병, 슬픔, 늙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슬프게 노래했다. 이 외에 시모니데스는 인간은 하루살이 목숨이라 했고, 테오그니스, 핀다로스, 소포클레스 등 당대 지식인들은 심지어 인간 최상의 운명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최종적인 소멸이 아니라 기억을 소멸하고 힘없이 비참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당시 그리스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수많은 식민지를 통해 상류층과 지식인들은 온갖 풍요와 쾌락을 누렸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수많은 노예와 이방인들의 고통과 희생이 수반되었다. 아마도 여기서 깨인 일부 지식인들은 엄청난 환락에서 오는 허망함, 덧없음을 느꼈으리라. 자신이 아테네 귀족 가문이 아닌 타국의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상당도 하기 힘든 끔찍한 고통을 상상도 하기 싫었으리라. 결국 모든 것이 한쪽으로 극에 치달으면 새로운 반대의 변화가 태어나는 법. 그렇게 인생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사유는 점점 깊어만 갔다.

호메로스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현재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젊음, 건강, 육체적 즐거움, 덕을 드러내는 기회 등등. 신들이 인간에게 한계를(불사, 불로 등등) 넘지 못하게 선을 그었다면, 역설적으로 그 한계 안에서 인간은 무한한 창조력을 발휘하라! 특히 그리스인들은 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인체의 완벽함이었다. 그래서 행진, 유희, 무용, 노래, 스포츠 등을 꽃 피웠다. 이때, 최초의 올림픽이 기원전 776년 올림피아에서 열린 그리스 제우스 신전에서 탄생했고, 종교·예술·체육이 결합한 고대 그리스 문명의 대표적 행사였다.

저자 엘리아데는 말한다. “현재에 종교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 속에 사는 것이다. 여기에 성스러움이 숨어있다. 우리가 매 순간 선택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명의 자율성”, 끝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펼쳐지는 별들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무한한 우주”, 끝을 모르는 놀라운 성장을 이끄는 인체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소우주는 숨겨진 기운이 표출되어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가치를 서로 토론하고 나누고 함께하는 기쁨을 가지고, 이러한 풍요로움을 충분히 맛본다. 그때 그리스인들은 이것이 시간 속에 찾아오는 노병사의 고통에서 탈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배웠다. 이렇게 인간의 한계에 맞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성화(聖化)를 꽃 피우고, 찬란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했던 예는 기원후 1000년 동안 중국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나는 엘리아데에게 불끈한다! 중국이야 워낙 대국으로서 차후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문화의 연결을 이끌었으니 그렇다 쳐도, 한국이 아닌 일본은 무엇인가? AD 0~1000년은 한국이 일본에 선진 문명을 전수했다는 사실을 엘리아드는 모르는가. 아니면 그렇게도 한국에 역사적 사료가 미미하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인가.

사실 고대 동양의 음양오행은 고대 그리스 시대와 맞물려 BC 5세기 전후 중국에서 대부분 정리되었지만, 그 기원을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하도(河圖)5600년 전 고조선 이전의 배달국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아 용마(龍馬) 등에 나타난 바둑알 모양의 ()’을 그린 것이고, 4000년 전 하나라 우임금이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등의 상을 기록한 것이다. (하도 낙서란? 월간 개벽) 결국 중국과 한국 역사는 동북아를 대표하는 문명 강국으로 역사를 같이하고 서로 협력하고 겨루며 발전했다. 지금까지도 음양의 문명을 태극기로 간직하며 K 문화를 이끈 독자적인 한국 문명이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것이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체의 완벽함에 숨겨진 자연미

그리스 인체의 완벽함은 이상적 비율과 조화로 표현되었다. 흔히 지금까지도 적용되는 이야기는 피타고라스의 황금비(1:1.618)일 것이다. 이는 그가 우주 자연에서 별 모양을 보고, 정오각형의 변과 대각선의 길이 비율을 측정한 것이다. 참고로 파르테논 신전도 위 비율을 따랐다. 여기서 우리가 짚어봐야 할 것은 그들이 자연미를 최고의 이상적인 형태로 여겼다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운 비율을 관측하고 인류의 문명을 건설한 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이 지극히 자연환경과 조화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 공존해야 함을 시사한다. “선성함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 특별히 발견하고 그 영광을 특별히 누리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일상의 곳곳에 숨겨져 있다.

나는 여기 뜨거운 태양이 일년내내 작열하는 필리핀의 전투 개미를 보고, 그들의 놀라운 증식력에 감격한다. 첫째, 먹이를 발견하는 속도가 엄청나다. 조금만 밥알을 흘리거나, 바퀴벌레가 죽으면, 그들은 귀신같이 몰려든다. 둘째, 뜨거운 협력 정신. 자신보다 30배가 넘는 덩치의 사체를 같이 옮긴다. 안내자, 옮기는 자, 감시자 등 각자의 역할이 매우 충실하다. 셋째,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 간만에 새우탕면을 먹으려 하는데 개미 떼들로 뚜껑 주위가 바글바글한 것이 아닌가. ! 새우탕 안에 건조된 새우를 발견하고 옮기려고 모인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이중포장으로 비닐로 겹겹이 쌓여있는 새우탕면인데! 그들은 새우탕면이 있는 저 위 냉장고 위 꼭대기까지 따라 올라가 라면 용기 안에 건더기스프 냄새를 맡았으리라. 냄새가 어떻게 비닐을 뚫고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몇 놈이 힘을 합세해서 비닐을 물어뜯는다. 그리고 단단하게 포장된 뚜껑 껍데기까지 관통한다. ! 인간이 뜨거운 물을 부으면 그들은 용암에 빠져 바로 변사체로 죽음의 길로 갈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개미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이렇듯 개미들 사회에서는 어마어마한 협력이 존재한다. 이것은 반드시 희생을 통해서 이뤄진다. 인간에 밟혀서, 불에 데서, 물에 빠져서 죽을지 모르는 험난한 상황에서 그들은 공동체의 증식과 번영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받친다. 마치 인류가 희생 제의를 통해 더욱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간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희생에는 무모한 도전과 전투, 죽음이 함께 한다. 고난과 역경 없이는 영웅도 없고, 신도 없다. 당연히 짜릿하고 흥분되고 스토리를 알고 싶어 궁금해 죽을 것 같은 재미있는 신화도 없다.

우리 현대 사회는 극도의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함을 향해 달려간다. 그럴수록 인생은 느슨해지고, 나태해지고, 귀찮아진다. 결국 그러한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적인 모험과 게임, 자극적인 영화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지치고 목마르다. 우주를 위한, 지구를 위한 사회를 위한 의미 있는 나만의 진정한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인들에게 배워야 한다. 그들은 죽음과 질병, 고통에 대한 인간의 비극적 한계를 초월하고자 했다. 그래서 몸에 대해서, 자연에 대한 보고 또 보고 관찰하고 탐구하고 연구했다. 이를 통해 풍요롭고 새로운 창조를 향해 끝없이 달려간 것이다!

지금 당신의 일상은 인류를 위한 창조적인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가?

전체 1

  • 2025-06-03 17:25

    매우 훌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