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답사기] 어촌의 바다 민속 : 멸치 잡는 마을
훔볼트 8차 답사. 20250530
거제도 외포리 / 거제 조선해양문화관 / 거제 어촌민속전시관 / 가덕도 장항 유적지
오송역에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창원중앙역에서 내려 쏘카를 빌렸다. 쏘카라는 사업 아이디어는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 속으로 감탄하며 거제 방향으로 운전을 했다. 첫 목적지는 가덕도 《장항 유적지》였다. 너무 먼 곳이라 올 엄두를 못내던 곳인데 이번 기회에 지나면서 잠깐 들리기로 했다. 8000년 전 공동묘지가 발견된 곳이라니 기대가 컸다. 하지만 한눈을 팔았는지 어느새 지나치고 말았다. 달님은 대안으로 외포항에 들르자고 하셨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외포항을 찾았다.
이번 답사의 주제는 ‘어촌의 바다 민속’이다. 주제를 기억하면서 답사를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도 답사지에 가면 늘 이것저것에 마음이 끌려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번 답사는 좀 달랐다. 처음 찾은 외포항이 주제를 생각하기에 찰떡이었기 때문이다. 마을 전경을 둘러 보면서 한쪽에 주차했다. 이 마을은 바다에서 바라보면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으로 해안에 배가 여러 대 정박해 있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5~6대의 멸치잡이 배에서는 선원들이 한창 멸치 터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멸치 터는 장면을 관찰하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묵직한 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물에서 떨어지는 멸치를 노리는 갈매기들도 많이 바빠 보였다. 물론 제일 바빠 보이는 곳은 멸치 터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배였다.
배들은 항구에 가로로 길게 정박해 있었다. 배들마다 멸치를 터는 작업이 약간씩 다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배는 구호에 맞추어 신나게 멸치를 털었다.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일렬로 선 선원들이 리듬을 맞추어 따라 외쳤다. 힘든 작업에 신명이 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입으로 내는 구호가 리듬을 타고 팀워크를 맞추니 서로의 목소리가 서로에게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팀웍이란 저런 것인가!’ 하며 그 배가 작업하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반면 전혀 구호를 하지 않는 배도 있었다. 보기에도 작업의 진행 속도도 느리고, 합이 잘 안맞아 보였다. 누군가는 힘겹게 노동하는 현장에서 구경꾼이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고된 작업 속에서 멸치가 우리에게 온다니 앞으로는 멸치를 달리 보게 될 것 같기도 했다.
마을에는 곳곳에 천막이 있었는데, 달님에게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은 아주머니가 앉아서 멸치 목을 따거나 내장을 바르는 곳이라고 했다. 그렇게 멸치들은 손질을 거쳐 식당이나 다른 곳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나는 문득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청어잡이 배를 따라다니며 청어 내장 손질을 담당했던 청어잡이 소녀들이 생각났다. 소녀들은 1분에 50마리의 청어를 손질했다고 했는데 멸치는 작으니까 더 오래 걸릴까? 한번에 여러 마리씩 손질할까? 싱거운 생각에 웃음도 났고, 새로운 직업을 알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답사라는 공부가 주는 생생함이 있다. 그 생생함이 계획하고 계산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날 때 더 실감 나는 것 같다. 이번 외포 답사는 그런 생생함을 제대로 체험한 날이 아닐까 싶었다.
정말 재미있었지요. 멸치 한 마리가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누군가가 멸치를 ‘털어야 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바다 노동의 어려움과 숭고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요. 그리고 함께 외포항에서 멸치 탕, 멸치 튀김, 멸치 무침, 멸치 전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깜짝 놀랐지요. 답사는 생생하게 공부합니다. 발로 눈으로 혀로. . . 외포항과 친해져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