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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학답사-주제탐구](2) 걷는다면 순례다
6장 종교인류탐구 (2)
걷는다면 순례다
오 선 민
1. 기도의 힘
이번 답사는 일본 철학사상의 원류를 공부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공부의 내용도 워낙 많았고 움직인 거리도 상당해서 답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엄청 피곤하고, 결국 일상으로의 복귀가 늦어질까 두려워하며 출발을 했다. 어렵게 시간과 돈을 만들어서 하는 일이다보니 어떻게든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다가 답사는 24년 12.3의 계엄과 6.3의 선거 사이에 있었기에 뭔가 안정되지 못한 기분도 들어 전체적으로 몸도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고 난 지금, 나는 몸과 마음이 훨씬 더 가벼워졌음을 느낀다. 인류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 주제가 워낙 방대하니 오히려 여유도 생겼다. 그 뒤로 우연히 동학사(공주)나 명동 성당(서울)을 들를 일도 생겨서, 답사라고 작정을 하고 떠나지 않아도 길 위에서 공부가 계속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다. 나의 답사는 끝나지 않는다.
강행군이었던 일정에도 불구하고 매일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방식의 기도 때문이다. 첫 번째는 손 기도이다. 나는 특별히 믿고 있는 종교도 없고, 어쩌다 종교 시설을 방문할 때에도 특별히 눈길을 두지 않고 관광객처럼 스윽 돌아다니다 나온다. 이번에도 같은 태도로 ‘절이 절이네~’하면서 돌아다녔을 뻔했다. 하지만 함께 답사를 하시는 다른 선생님들이 절마다 기도를 하시기에 혼자 안하면 튀어 보일까봐 그냥 따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매일을 사찰을 방문하고, 사찰 안에서도 또 작은 절들이 다 있어서 방문하고, 절만이 아니라 길가나 사찰 뒤뜰 여기저기에서 놓여 있는 신물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하루에도 몇십 번씩 계속 절이 이어졌다.
절이라고 해도 오체투지처럼 힘들지는 않았고 그냥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경우, 뭔가 기도하는 바도 없이 대충 고개만 숙이는 일의 반복이었다. 의미도 없고, 성의도 없었던 것이 나의 기도였다. 나중에는 ‘일본’ 신도의 본산이랄 수 있는 이세 신궁과 이소노카미 신궁에서까지도 기도를 했다. 일본인도 아닌데 말이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교토의 혼간지를 보고 나오면서 잠깐 두 손을 모으게 되었는데 갑자기 ‘아, 계속 기도를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뭉클해지기도 했다.
두 번째는 공부 기도다. 우리는 이 절에서 저 절로, 이 유물에서 저 유물로 거의 쉬지 않고 차로 움직이거나 걸으면서 계속 수업을 들었다. 구카이 스님이나 사이초 스님의 생각에 대해 뭐라뭐라 비평을 하거나 할 엄두는 내지도 못했고, 전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에서 출발해서 정말 열심히 허남린 선생님과 이연숙 선생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다. 뭘 남기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일단 들어야 한다는 결의밖에 없었다. 나만 그렇지 않고 답사원 전부가 그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알아서 화장실 가고, 서 있을 때는 무조건 공부를 했다. 내용은 둘째 치고 공부 형식은 걷다가 멈추고 듣기, 걷다가 멈추고 듣기의 계속이었다. 배우는 자세를 만드는 일의 반복이었다.
거의 아무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손을 모으고 몸을 굽히는 일. 그리고 쏟아지는 지식의 폭포 밑을 계속 걸어 다니는 일. 이 두 가지 기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자체로는 대단하지도 않은 동작이다. 뿐만 아니라 그 동작 하나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문제는 그 무의미한 행동의 집중적 반복에 있다. 그렇다면 두 손을 다른 아무 일도 못하게 붙여 버리고 하늘을 향하던 눈을 바닥으로 내리게 하기(손 기도). 귀를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향해 무조건 열어 두기(답사 공부)의 반복이 주는 효과는 무엇인가? 바로 자기 비움이다. 내가 추구했던 어떤 가치도 고집하지 않고, 그저 할 수 있는 만큼의 반복과 주변에서 전달되는 것을 향한 무비판적 수용이다. 손기도나 답사 수업은 나를 계속 겸손한 자세로 있도록 해주었다.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했지만 사실 지금 머릿속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강렬한 비워냄의 시간을 통해 나의 마음과 몸은 가벼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비워내진 상태가 되었다보니 돌아와서 처음 책을 읽는데 참으로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많이 채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조금씩 더 덜어 내는 공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기도로서의 공부가 아닐까? 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은 어느 날, 달라진 나를 느끼면서 기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2. 성과 속을 잇는 순례
거듭 기도를 하면서 본원의 장소로 돌아가는 일을 순례라고 한다. 순례란 근본에 대해 묵상하는 일로 우리가 잘 아는 세계의 큰 종교들은 모두 이 형식을 중시한다. 그런데 나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일이므로, 알아서 잘 하면 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종교가 여기에 엄격한 형식을 부여한다. 각성에 단계를 둔다든지 스승의 절대적 지도를 따라야 한다든지 말이다. 가장 중요한 형식으로 몸 움직이기도 들어간다. 바로 길게 걷는 것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이용할 수도 있는 모양인데 순례객들 사이에서는 권해지는 바가 아니라고 한다(리 호이나키,『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참고). 깨달으려는 자는, 궁극에 이르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 두 발로 그 길에 서야 한다.
그런데 ‘걷기’라면 정말 단순하지 않은가? 두 다리를 옮기는 것일 뿐이고, 일상적으로 하는 동작이다. 여기서도 문제는 반복이다. 엄청난 거리를 계속 그 동작만 반복하라고 하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리 호이나키는 걷는 일이 거듭될수록 발이 까지고 짐이 무거워지면서 매일 누적되는 피로 때문에 정신을 잃을 뻔한 적이 많았다. 그도 왜 이렇게 평범한 걷기가 순례의 형식인지, 신은 왜 이런 방식으로 고통을 얻고 해탈에 이르라고 하는지를 자문했다. 나도 바로 이 부분이 궁금하다.
영산 고야산에 가보니 일본 전역에서, 멀리로는 유럽에서(주로 프랑스에서) 엄청난 순례객이 산을 오르고 절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길 위에서 그저 걷는 자로서 각자의 처지는 별로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순례객은 그런 사람들 속을 함께 움직이면서 결국 나라는 존재가 다른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무상한 모든 뭇생명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나도 내가 다른 언어를 쓰면서 경내의 굿즈샵을 서성이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왜 일상적 동작인가? 여기에서 이번 답사를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순례의 형식을 하나 더 정리하면서 답을 찾아보고 싶다. 일본 이세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현재에도 신관이 제사를 드리고 있는) 곡물의 신, 그리고 의식주의 모신 신궁이 있다. 중세부터 일본 도처의 사람들은 신궁으로 순례를 다녔다고 한다. 앞서, 순례에는 단순한 반복적 신체 행위가 있다고 했는데 그런 행위 이전에 순례를 떠난다고 하는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단지 어쩔 수 없어서 긴 길을 걷게 되는 것과 순례가 다른 이유다. 다시 일본 중세로 돌아오면, 워낙 길이 멀고 또 외지를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계를 만들어 순번을 정해 삼삼오오 순례를 다녀온다고 한다. 순례란 결국 자기 두 발로 하는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도 같이 걷는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 일인 것이다. 마침내 신궁에 이르게 되면, 어쨌든 각자가 뭔가를 깨우치고 가게 되는데 사실 순례에서 꼭 뭔가 이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순례를 통한 영적 깨달음에 대해서는 진언종도 천태종도, 이세 신궁의 신들도 합의문 같은 것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저 신을 향해, 근원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각성뿐이다.
그런데 순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세 신궁 앞에는 길게 쇼핑 거리가 늘어서 있었다. 중세 때에도 도처에서 온 순례객들이 묵고 먹고 쉬고 사고 놀다 가는 곳이었다고 한다. 즉 순례는 근원처에 이르고 난 다음에는 다시 지극히 속된 일들 속으로 다시 사람들을 내모는 형식을 갖고 있었다. 중세부터 일본의 순례객들은 성스러움의 극한에 이른 뒤, 왜 곧바로 속세의 환락에 몸을 담갔는가?
나는 순례객들이 사찰이나 신궁 앞에서 아껴 두었던 돈을 쓰며 그동안 금욕했던 것들을 일순 풀어버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들이 막 마약을 하는 등 환각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림은 떠오르지 않았다. 답사를 하는 가운데 나의 발걸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듯이, 그들 역시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서 보다 편한 마음으로 물건도 사고 잘 먹기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이들은 성소까지 오는 과정에서는 같은 마을에서 출발했더라도 엄숙했을 것이다. 하지만 순례가 끝난 뒤에는,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과도 격의 없이 술잔을 주고 받으며 허물없이 세상사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자타를 가르던 많은 경계들이 스르르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순례–뒷풀이 장에서는 걷는 일만이 아니라, 밥을 먹고 농담을 하는 등의 일상적 활동 전부가 걷는 일처럼 마땅하고 신성해졌을 것이다.
다른 종교의 순례도 마지막에 이런 질펀한 여흥을 마련하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이세신궁을 향한 순례는, 어떤 깨달음도 일상의 차원을 넘어서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렇게 먹고 잠자고 노래하는 일상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존재다. 죽음 앞을 향해 가는, 이 궁극의 미션을 수행하는 가련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3. 영성의 공부
최후의 르네상스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괴테는 30살 생일에 공무원 생활을 버리고 가족과 친구들 몰래 이탈리아 기행을 떠났다. 위대한 고대 로마의 유산을 배워 우주에 대해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본질적으로 통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이 위대한 탐구자는 실제로 움직이면서 도처에서 선생님을 모셔서 배우고 직접 관찰하면서 연구하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극작품을 쓰고 기행문을 남겼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그 전체 과정의 보고다.
엄청난 지식을 흡수하고 금위환향하게 되는 괴테가 자기 여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 의 마지막을 사육제로 끝낸다. 이세 신궁의 순례자들처럼 말이다. 고대의 지식, 심오한 철학 이런 것들을 많이도 배우고 익혔지만 최종적으로 그의 마음을 끄는 것은 로마 시내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즐기는 축제객들이었다. 진리가 다시 돌아가야 될 자리도 먹고, 마시고, 숨 쉬는 오늘의 일상이다. 위대한 지성도 평범한 농부도 모두가 같은 존재로 한 삶을 산다. 괴테는 격의 없이 흘터졌다 모이는 군중 속에서 참으로 편해진 마음을 안고 북쪽으로 돌아갔다.
여행도 좋아하고 박물관이나 유적지는 더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답사를 만들어볼 수 있을까? 단지 가야할 곳을 도장깨기 하듯 헉헉 대며 뛰어다녀야 할까? 이세 신궁 앞 거리를 보면서, 또 계속 손을 모으고 귀를 열었던 경험을 되새기면서, 하나의 답사 형식을 만들어본다. 기본은 기도하는 마음이다. 일단은 어떤 배움터를 방문하든지 간에 출발하면서는 손기도부터 하자. 우리를 그 자리까지 오게 한 세상의 모든 인연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실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감사 몸짓을 반복하고 싶다. 두 번째는 답사지에서 찾아보아야 할 중요한 지식에 집중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그 장소에서 들리는 모든 것에 귀를 열기이다. 무엇이든 듣고 배우겠다는 의지로 활짝 마음을 열어야겠다. 그렇게 많은 답사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무엇을 얻게 될까? 모른다. 비워지고 비워질 일만 계속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