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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학사상답사] 천리교
◎ 천리시(天理市)의 천리교(天理敎) 본당
271 Mishina, Tenri city, Nara pref.
1. 천리교(天理教)
1838년 10월 일본인 나카야마 미키(中山美喜)가 창시한 신도(神道) 계열의 신흥 종교이다. 천리교는 에도 시대인 1838년 나라 현(奈良県)의 농민 여성인 나카야마 미키에게 천리왕명(天理王命)이 내려 츠키히노야시(텐리교 교조의 별칭)로 화하여 이후 포교에 힘쓰게 되었다. 신토의 일종으로 자리매김하는 의견도 있으나, 교리나 신앙생활에 있어 차이가 크다(사실상 불교에 가깝다고 보는 입장이 많다). 전 세계에 약 200만 명가량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그중 일본 내에 150만 명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1893년 이래로 포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7만여 명의 신자가 있다. 또한 천리교의 특징은 1838년을 원년으로 삼는, 릿쿄(입교, 立敎)라는 연호를 사용한다.
어버이신은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생명을 주시고 수호해 주시는 신으로, 기원을 할 때에는 “천리왕님“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어버이신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월일(月日)’, ‘어버이’ 등이 있다. 어버이신(이하 ‘신’)은 “즐거운 삶을 누리는 것을 보고 함께 즐기고 싶다”는 의도에서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였으며, 세상의 물, 불, 바람의 섭리, 사람 몸에서는 온기, 윤기, 호흡의 수호 등, 온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섭리와 그 균형을 수호하며, 이 수호를 ‘십전의 수호’라고 한다. 1838년 10월 26일, 교조 나카야마 미키님을 통해서 세계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하강했다고 선언, 이때 천리교는 시작되었다.
천리교는 만물과 인간의 창조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마음 이외에 육체를 비롯한 모든 것을 신(천리왕명)에게 빌렸으나 사욕 때문에 온갖 불행을 겪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이 마음의 티끌을 제거하고 형제애로서 남을 위하면, 신이 의도한 즐겁고 풍요로운 세상이 온다고 설명한다. 원죄(原罪)나 업(業)과 같은 가르침은 없으며, 먼지처럼 눈에 띄기 어려운 마음속의 조그만 잘못을 나날이 털어내는 것이야말로 구제받는 근본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천리교에서 인간의 몸은 신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것이며, 마음만이 각자의 것이다. 따라서 그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도 불행도 나타나게 된다. 마음을 제멋대로 쓰면, 신 수호를 충분히 받을 수 없게 되며, 끝내는 몸의 장애로 나타나거나, 사정의 원인이 된다. 제 몸, 제 가정의 이익만이 아니라, 남을 구제하는 데 마음을 씀으로써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즐거움이 넘치는 세계를 만들어 가려는 신앙이다. 즐거운 삶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에는 질병이나 괴로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를 계기로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남을 구제하는 마음으로 바뀌기만 하면, 누구든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천리교는 온 세상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사는 ‘즐거운 삶’의 세계를 강조한다. ‘즐거운 삶’이란 신의 수호에 감사하고, 그 수호로 살고 있는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우리 인간들이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우면서 사는 삶이다.
즐거운 삶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근행(천리교 예배의식)’과 ‘수훈’을 강조한다. 근행은 천리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제의로, 매월 26일에는 ‘신악근행’을 올리고, 매일 해가 뜨는 시간에는 아침근행, 해가 지는 시간에는 저녁근행을 올린다. ‘신악근행’이란 10명의 근행인원이 각각 다른 손짓으로 태초 인간세계 창조의 신의 섭리의 모습을 춤으로 나타 내서, 인간 세계 창조의 진기한 수호를 현대에 재현하는 근행이다.
수훈은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회복의 수호를 기원하는 것이다. 별석(터전에서 듣는 신의 말씀)을 아홉 번 듣고, 사람을 구제하고 싶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출원함으로써 ‘수훈의 리’를 받을 수 있다.
2. 덴리시(天理市)
일본 나라현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6만 5천 명이다. 1954년에 나라현에서 4번째로 시로 승격되었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종교 단체의 명칭을 자치단체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시의 중심부에는 천리교 관련 시설이 집중하는 등 종교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인구 절반 이상이 천리교 신자라고 한다. 천리교 신자들이 히노키신(천리교에서 종교적인 목적으로 행하는 포교 및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매일 덴리역 광장을 청소한다. 도시 내에 천리교단 소속 시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시 입장에서도 천리교단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하다고 한다. 일본은 종교 시설에 대해 재산세를 부과할 수 없다. 그래서 덴리시는 세수가 적은 편인데, 그 대신에 천리교단이 덴리시 지방세 수입에 맞먹는 막대한 금액을 시에 기부하여 재정을 꾸린다. 이 기부금은 일본 법률에 따라 사용처에 제한이 있는 ‘지정 기부‘이기 때문에, 덴리시에서 이를 사용할 때 천리교단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종교와 지방정치의 유착이라며 문제시하는 의견이 없지는 않다. 일단 천리교는 이런 문제를 회피하고자 덴리시 지방선거(시장 선거, 시의회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천리교단은 덴리시에서 서기로 1의 자리가 6으로 끝나는 해마다 ‘교조(敎祖) 〇〇〇년제‘를 거행한다. 천리교 교조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가 1887년에 사망했는데, 그 해를 1년으로 삼아 10년째 되는 해마다 큰 행사를 벌인다. 2016년에 교조 130년제가 있었다. 이렇게 10년마다 열리는 행사 때면 천리교 신자들이 너도나도 덴리시로 몰리기 때문에 시의 재정도 풍족해진다고 한다.
3. 기행문(종교,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
이소노카미 신궁을 답사한 후, 가까운 곳의 천리교에 가보자는 답사 일행 김문용 선생님의 제안으로 우리는 천리교의 본거지를 찾았다. 그 종교의 이름을 덴리시의 명칭으로 그대로 사용할 만큼 천리교의 본부는 아주 넓었는데, 차를 타고 다녀야 곳곳을 구경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이곳이 마치 명문 대학의 캠퍼스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기와지붕에 건축 양식이 동양적이어서 그렇지 건물들의 모습은 꼭 단과대학과 기숙사 같이 보였다. 천리교가 어떤 종교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들어섰기에 그랬을까. 천리교를 방문한 느낌은 처음부터 매우 강렬했다.
그 넓은 곳 중 우리는 천리교의 본당을 방문했다. 일본의 여느 신사나 우리나라의 절처럼 본당은 여러 개의 돌계단 위에 올라서 있었다. 신발을 벗고 본당에 들어서니 곳곳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신자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들 중 몇몇은 방향을 조금씩 바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본당의 사방이 뚫려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사원은 입구 맞은편에 제단이 있어 뒤는 막혀 있거나, 오픈되어 있다고 해도 그 뒤에는 섬기는 신의 상징 같은 것이 모셔져 있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가 들어선 문의 맞은편에도 마찬가지로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있었고, 이런 문은 네 방향으로 비슷했고 모두 열려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자리에서 일어나 본당 안을 조용히 둘러보았다. 본당의 가운데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중심이 아래층까지 내려가 있고 한쪽 면이 약 30~50m 정도는 되어 보이는 정방형으로 보였다. 당시는 그곳이 비어져 있었지만, 중요한 때에 어떤 의례나 의식 같은 것이 열리는 곳 같이 보였다. 아래로 내려가 있기도 하고 어두워서 그때는 뭔가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곳에서 의례가 치러질 모습을 상상해보니 제단이 위로 올라가 있는 것보다 오히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천리교의 본거지 안에는 초, 중, 고, 대학과 대학원, 병원 등이 갖춰져 있고, 이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이 안에서 배우고 서로 돕고 생활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실제로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스포츠백 같이 생긴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은 활기가 있어 보였다. 하나의 마을 안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과 제반의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이라니, 이곳이 세상의 시작이자 끝이라면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까지가 아무런 정보 없이 천리교를 방문하고 든 느낌이라면, 답사에서 돌아와 천리교에 대한 자료와 기사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내용은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신흥종교들이 그렇듯이 천리교 또한 사이비나 이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고, 나 또한 생각해 보니 길을 가다 그들의 포교활동을 눈살을 찌푸리며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실제로 천리교가 어떤 종교인가는 내 앎의 수준으로는 판단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둘째로 하고, 먼저 드는 생각은 19세기라는 근대에 한 여성이 신내림을 받은 일로 시작된 종교가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을까였다. 덴리시에서 봤던 천리교의 본거지는 여느 종교의 회당 못지않게 컸고,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천리교가 이단이냐 아니냐도 그 기준은 기존의 종교에 있다. 지금은 세계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도 처음에는 신의 말씀을 대리하는 자의 모습으로 시작된 걸 생각하면, 천리교에 대해 이단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도 근시안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을 뒤로 미루어두고서, 나는 천리교를 보며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종교에 이끌릴까 질문해보게 되었다. 천리교 홈페이지를 통해 내가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천리교가 강조하고 있는 교리는 ‘즐거운 삶’을 위해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천리교는 신체는 신의 것으로 인간의 임시 거처라고 했고, 오직 마음만이 자신의 것이라고 했다. 그 마음의 욕심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형제애로 타인을 위하면, 천리교의 신이 말하는 즐거운 삶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이븐 바투타 지음, 정수일 역주, 창작과 비평사)의 한 주석에 의하면, 불교가 자비를 기독교가 박애를 종교적 이념으로 한다면, 이슬람교에서는 형제애라고 했다. 바투타의 순례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슬람교에서는 서로를 형제라 부르며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환대로 맞이하며 자기의 것을 선뜻 내주었다. 반면, 불교에서는 윤회의 삶에서 공덕을 쌓아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즉, 구원, 깨달음, 즐거운 삶처럼 삶의 목표는 다를지 몰라도 각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아닐까.
출처 :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
나무위키(https://namu.wiki/),
https://www.tenrikyo.or.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