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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학답사- 기행문] 내 안의 영성을 찾아서
답사팀은 첫날 고야산을 시작으로 4박 5일 여정 동안 여러 사찰, 신사, 성지, 묘역 등을 방문했다. 각각의 장소들은 종파에 따라 건축물이나 제단이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고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배가 가능했다. 그리고 어느 곳이나 참배객이 동전을 봉헌을 할 수 있도록 수납함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첫날 방문한 고야산 자존원(高野山 慈尊院)부터 참배하는 나 자신이 몹시 어색했다. 남들은 진지하게 기도하는 것 같은데, 나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믿지도 않았던 신께 갑자기 무엇을 해달라고 기도해도 되는지 양심상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했는데, 왠지 모르게 날이 지날수록 기도하는 일은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히에이산 엔랴쿠지 : 비와 소리
답사 내내 날씨가 좋았는데, 마지막 일정인 교토에서의 아침은 비로 시작했다. 제법 많이 내리는 빗속에 우리는 계획대로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히에이산 엔랴쿠지(比叡山 延暦寺)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동탑(東塔) 지역 버스 정류장. 여러 대의 버스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바로 옆엔 제법 큰 기념품 가게가 눈에 띄었다.
여행 중 비는 종종 불편한 손님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날의 비는 조금 달랐다. 성지를 찾아가는 답사는, 그곳에 깃든 신성한 존재를 만나고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머뭇거렸던 참배에서 점점 솔직하게 내 안의 나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기도할수록 탁했던 내면이 조금씩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히에이산에서 내리는 비가 내 안에 불안과 번뇌를 씻어주는 것 같았다.
각자의 우산을 든 우리는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대강당(大講堂)을 향해 걸었다. 길에는 사이초(最澄)를 소개하는 다양한 그림과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이초는 천태종의 창시자로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귀국 후 엔랴쿠지를 창건한 인물이다. 사이초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었지만 일본어를 알지 못하기에 그림의 의미를 내 마음대로 해석하며 걸었다. 대강당이 가까워질수록 승려들의 불경 독송인지 혹은 노래인듯한 소리와 종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이곳은 승려들이 학문과 수행을 하는 시설이라 법회나 의식이 자주 열린다고 한다. 우리는 보라색 천으로 입구가 가려져 있는 대강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의식을 관람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 소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모든 것을 한 곳으로 모으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 우리는 대강당 바로 앞 ‘개운의 종’이라고 불리는 종에 닿았다. 재미있게도 종 아래에 ‘1타 100엔’이라고 팻말에 가격이 적혀 있다. 이연숙 선생님께서 종을 꼭 쳐보라고 하셨는데 지나쳤다는 것이 아직까지 좀 아쉽다. 운이 좀 더 팍 트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트일 운은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길을 따라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우리는 콘폰추도(根本中堂)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도 건물 외벽과 지붕은 여전히 보수 중이었다. 흰색 조립식 외벽이 사찰을 감싸고 있었고, 그 위에 큼직하게 ‘根本中堂’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조립식 건물을 통과해 어둑한 본당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답사 오기 전, 엔랴쿠지에 대해 공부하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불멸의 법등이었다. 사이초가 직접 밝힌 등불, 1200년 동안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는 그 불은, 단지 불빛이 아닌 생명력과 염원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등불 모습이야 특색이 있을리는 없겠지만, 나는 그 불꽃에 담긴 의미, 끊임없이 지켜낸 수행자들의 번뇌를 태워내는 정진의 불꽃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천 년 넘게 타오른 그 불을 마주하면 어떤 기운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기대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앞에 섰을 때 특별한 감흥은 들지 않았다. 다만 사이초의 염원을 1200년 지켜온 승려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촛불을 밝히는 것 만으로도 수행이 될 수 있다. 빛을 밝힘으로써 길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의 길 : 걷기
교토에 위치한 철학의 길(哲学の道)은 약 2km 정도 이어지는 산책로다. 난젠지(南禅寺)에서 시작해 은각사(銀閣寺)까지, 잔잔히 흐르는 비와호 수로(琵琶湖疏水)를 따라 걷게 된다. 이 길은 봄이면 벚꽃이 만개해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고 들었지만, 우리가 찾았을 때는 초록의 나무들이 길을 푸르게 덮고 있었다.
산책에 앞서 우리는 길 중간에 자리한 노무라 미술관을 방문해 관장님께 고려 다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뜻밖에도 다소 두껍고 묵직한 박물관 도록 10권을 선물 받았다. 답사를 다니며 도록의 가치를 아는 우리로서는 반가우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받았다. 몇 명이 나누어 가방에 넣고, 본격적으로 철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철학의 길은 작고 아담했다. 수로에는 물고기가, 길 위에는 고양이들이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일인 것 같다. 발바닥으로 땅과 만나고, 호흡으로 이곳의 공기와 만나며 신체와 공간의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철학의 길에 온 만큼, 풍경 속에서 나의 걸음과 호흡에 집중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방이 엄청 무거웠다. 어깨가 아프고 잡념에 사로잡혔다. 아까 박선생님이 가방 들어주신다고 했을 때 그러자고 할 걸 그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산책이 끝날 무렵 나는 나에게 질문했다.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은 무거운 가방 때문이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내 손에는 촬영 도구도 있었고, 머릿속은 남을 신경 쓴다고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국 내 안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뭐가 문제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나쁘지만은 않았다.
불교에서 수행자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계율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꾸고, 명상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정리하고, 어리석음에서 회복되려 애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되돌리는 정화(淨化)의 작업이라고 여긴다. 나는 문득 이번 답사가 일종의 정화 의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사를 준비하고, 길을 걷고, 부딪히고 생각하며 우리는 고요하고 성스러운 곳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기도였지만, 기도가 반복될수록 그 어색함은 서서히 흐려지고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느낌이 있을 뿐, 내가 정화되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번 영성 체험 답사를 통해 뜻밖의 나를 발견하고 돌아보게 된 이 여정에 참여하는 일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